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류재숙 Monica Shim Oct 06. 2023

11. 파리 생트 샤펠, 셰익스피어&컴퍼니

파리 프랑스 7.30.23

 처음 오는 아들을 위해 노틀담 대성당 쪽을 다시 찾았다. 지난번엔 날씨가 흐려서인지 사람들이 많지 않았는데 화창한 날씨 탓에 방문객으로 가득했다. 시테섬 서쪽으로 생트 샤펠을 향해 걸었다. 파란 하늘과 흰구름이 기분을 더 가볍게 한다.


 생트 샤펠 Saint Chapel은 14세기까지 프랑스의 왕들이 살았던 시테궁 안에 지어진 왕실 성당이었다. 루이 9세가 십자가 조각과 가시관 등 성유물들을 보관하기 위해 지었다. 이곳은 아름다운 스테인드 글라스로 유명하다. 온라인으로 티켓을 사서 가면 좋은데 그렇지 않으면 30분마다 입장을 시켜도 대기줄이 길다.


 안에 들어서자 스테인드 글라스를 통해 들어오는 오색찬란한 빛의 잔치에 눈이 부셨다. 성전과 벽이 온통 스테인드 글라스로 장식되어 있었다. 구약 성경의 창세기부터 열왕기까지의 내용을 소재로 약 1천 여장의 성경이야기가 스테인드 글라스에 새겨져 있다. 성경 필사를 스테인드 글라스에 한 셈이다. 하느님을 경배하고 그분께 의탁하려는 인간의 간절함이 읽혔다. 그러나 한편으론 성유물을 비싼 값으로 매입해 소유함으로써 정치적  우세 優勢를 점유하려던 인간의 나약함이 또한 보였다.


 이 공간은 소리의 울림도 좋아 저녁엔 음악회도 열린다. 일몰이 늦은 여름날, 지는 해의 빛이 창을 통해 깊이 굴절되어 들어오면서 영롱한 빛의 향연과 더불어 소리의 향연이 펼쳐진다. 저녁 음악회 공연을 예약하려다 만 게 아쉬웠다.


 더 아쉬운 것은 미사가 없는 거였다. 주일 미사 시간을 찾으니 파리 시내 몇몇 성당만 주일미사가 있었다. 나머지 성당은 거의 관광지로 쓰이고 있는 건지. 신자가 없는 성당을 유지하려면 비용이 들겠지만 원래 목적이 상실된 성당은 더 이상 성당이 아니다. 그저 멋진 건축물에 불과하다.


  옆건물은 법무부로 쓰인다는 Palais de Justice건물이다. 입구에 자유 평등 박애라 쓰여있다. 프랑스 국기의 파랑 하양 빨강 세 가지 색을 상징하는 자유와 평등 박애의 나라, 모든 사람을 지위나 직업의 귀천에 상관없이 평등하다 여기기에 프랑스에서는 식당 웨이터에게도 대접받으려 하기보다 정중히 부탁하는 자세로 대한다고 한다. 그래서 손짓으로 불러 이것저것 시킨다든가 손님이라고 갑질을 하면 프랑스인에게 이해받지 못하는 행동이 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손님이 왕이란 의식으로 살아온 우리의 가치관에 경종을 울리는 말이었다.


 다리를 건너 Shakespear and company 서점을 찾았다. 1919년 파리에 거주하던 미국인 출판업자인 실비아 비치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귀한 판본들을 판매하는 서점을 개점하면서  이 서점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영어 서적을 주로 판매해 파리에 거주하던 미국인과 영국인들이 주로 방문하였는데, 제임스 조이스 어니스트 헤밍웨이, TS 엘리엇, 스캇 피츠제럴드 등이 이곳을 자주 찾았다. 유명한 문인들이 드나들며 서점에서 문학 토론의 장이 열리면서 인기를 끌었다.  책을 팔기도 하고 빌려주기도 했다 한다.


 서점 안은 작지만 공간마다 책이 가득했고 종이 냄새가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이층엔 오래된 타자기가 있고 작은 공간에 과거 문인들이 이용하던 책상과 의자가 있었다. 벽에는 이 서점의 고객이었던 작가들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소녀시절 선망하던 작가들이었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 활동하던 작가들이 책을 읽고 토론을 하던 그 자리에 미래의 내가 앉았다. 이 작은 공간에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문학으로 면면히 이어지고 있었다.


 어디선가 피아노 선율이 흘렀다. 정숙해야 할 책방에서 피아노 연주라니. 놀라서 돌아보니 한 남자가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다.  피아노는 누구나 연주할 수 있다고 되어 있었다.  연인과 앉아 곡을 감상하는 사람,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는 사람, 함께 곡을 흥얼거리며 책을 고르는 사람, 문학과 음악이 한 공간에서 어우러지고 있었다.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이 지적 공간이 주는 분위기에 나는 깊이 매료되었다.


 우리 동네에 두 곳만 있던 서점이 팬데믹 중에 모두 문을 닫았다.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자주 드나들던 곳인 데다 종일 이 책 저 책을 뒤적이며 시간을 보내곤 했던 공간이었다. 오랜 친구가 갑자기 곁을 떠나 버린 것 같아 허허롭기 그지없었다. 서점이 하나도 없는 도시라니, 미래는 어디로 향하고 있는 걸까.


 세계적으로 서점이 점점 사라져 가는 요즘에 의외로 프랑스에는 작은 서점들과 헌책방이 많이 보였다. 공원이든 바닷가든 기차 안이든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프랑스가 더 매력적으로 보이는 큰 이유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