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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재숙 Monica Shim Oct 05. 2023

10. 대서양 연안의 보석 알카숑Arcashon

알카숑 파리 프랑스 7.29

 보르도의 De Borea saint Jean역에서 Arcachon 가는 1시 04분 기차를 탔다. 역에 콩시어즈가 있다 해서 짐을 맡기러 갔더니 벌써 다 찼단다. 토요일이라서인지 기차가 만석이다. 일찍 올라 다행히 자리를 잡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입석으로 갔다.


 역을 벗어나자 와인산지답게 포도밭이 끊임없이 펼쳐진다. 소박하고 아담한 보르도의 집들이 봉쥬 Bonjour 하고 인사한다. 아침부터 많이 걸어서인지 남편과 아들은 이내 잠들었다. 우리 가이드를 맡은 딸은 쉬지 못하고 알카숑의 볼곳과 식당을 찾느라 바쁘다. 직장일을 하는 딸에게 부담을 안 주려고 오기 전 프랑스에 대해 열심히 읽고 정리까지 해왔는데 함께 움직이는 날은 딸이 안내하는 데로 따라다니게 되었다.


 옆에 곰돌이 인형을 안은 꼬마와 할머니가 정답게 대화를 나눈다. 할머니 품에 안긴 아이 조잘조잘 쉼 없이 얘기를 하고 할머니는 연신 손자에게 뽀뽀를 하고 을 맞춘다. 내리사랑은 어느 나라나 같다. 근데 꼬마가 어찌 저리 불어를 잘할까. 미숙한 영어 때문에 힘들게 출장 다녀온 선배가 미국에는 거지도 영어를 잘하던데 라며 부러워했었다. 프랑스에는 남자아이도 머리를 길러 키우니 남녀구분이 잘 안 된다. 곱슬머리에 예쁘장한 얼굴의 사내아이가 생떽쥐베리의 어린 왕자를 꼭 닮았다.


 알카숑은 대서양 연안의 바닷가 마을이다. 보르도에서 기차로 한 시간가량 떨어진 곳인데 풍광이 아름다워 인기가 많다. 프랑스인은 여름에 가게를 한 달씩 문을 닫고 바캉스를 간다. 7월과 8월의 파리시내는 정작 파리지엥보다 관광객이 가득한 셈이다. 키 만한 배낭을 멘 젊은이들이 많이 보인다. 자전거 뒤에 큰 짐을 두 개나 매단 중년 아저씨가 기차를 탄다. 그의 아내도 자전거에 배낭 두 개를 싣고 큰 개까지 데리고 탔다. 자전거로 여행을 한단다. 대단하다.


 알카숑역에 내리니 신선한 바닷바람이 얼굴을 간지렀다. 중세 분위기의 중후한 보르도와 다르게 도시가 세련되고 깔끔하다. 바닷가 휴양지답게 사람들의 옷차림도 가볍다.


 안타깝게 알카숑 역에도 짐 맡길 곳이 없었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다니기엔 부담인데 걱정이다. 역 앞길을 따라 걷는데 딸이 호텔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잠깐 들어갔다 나오더니 호텔에서 짐 맡기는 서비스를 해준단다. 가방하나에 5유로씩이다. 구세주를 만난 듯 짐을 맡기고 화장실까지 해결하고 홀가분하게 거리로 나섰다.


 모퉁이를 돌아서니 멋진 성이 가로막는다. 유적지인가 싶어 보니 카지노다. 꽃으로 가득한 고급 부티크 거리가 이어지며 바다가 나타났다. 대서양이다. 흐린 날씨 때문인지 해변이 조용하다. 피어가 길게 바다로 뻗어있고 바다는 잔잔하다. 구름이 먼바다에서 피어나듯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요트와 세일링 보드가 푸른색도 회색도 아닌 바다색과 어울려 몽환적인 풍경을 만든다. 우리는 한동안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대서양바다는 태평양과 달리 프랑스처럼 말랑말랑해 보였다. 모래가 밀가루처럼 곱다. 모래사장에 모래로 여러 동물 모양을 만들어 스프레이로 색을 칠한 작품이 늘어서 있었다. 작가는 스프레이를 뿌리며 다른 작품에 열중이다. 모래를 쌓아 만든 동물이 어찌나 정교한지 해변에 동물원이 있는 것 같다. 악어 호랑이 사자 곰들이 알카숑 해변에 휴가를 나왔다.


 알카숑은 바다가 만으로 깊이 들어온 곳에 튀어나온 곶이다. 바다 건너는 반도모양의 땅이 길게 이어져 있어 대서양의 큰 파도를 막고 있는 천혜의 항구다. 배를 타고 건너편 반도인 Cap Ferret 쪽으로 가기로 했다. 굴과 해산물이 맛있기로 유명하단다.


 피어 입구에서 배표를 끊는데 아줌마가 곧 비가 쏟아질 거란다. 돌아보니 먹구름이 가득 몰려오고 있었다. 표를 받고 돌아서자 갑자기 굵은 소나기가 퍼부었다. 비 피할 곳 없는 피어에서 배를 향해 달리는 잠깐 사이에 완전히 젖어 버렸다. 모두들 비에 젖은 생쥐 꼴로 배에 올랐다. 승선한 승객들은 서로의 몰골을 보며 깔깔 웃었다. 비에 젖으니 인물의 평준화가 되버렸다. 이렇게 소낙비를 흠뻑 맞아본 적이 언제였던가.


 소나기가 퍼붓는데 사내아이들은 피어에서 바다로 점핑을 하며 수영을 하고 있다. 어린 시절 비 오는 날 수영을 했던 기억이 났다. 꽃 달린 비닐수영모 위로 비가 푸득푸득 소리를 내며 머리를 간질였고 우린 신이 나서 수영장으로 뛰어들었다. 빗방울이 물 위에 수없이 동그라미를 만드는 동안 튜브에 누워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보았다. 하늘에서 혜성이 떨어지듯 줄을 그으며 떨어지는 빗줄기가 몸을 두드렸다. 입을 벌려 떨어지는 빗방울을 받아먹다가 추우면 다시 물로 뛰어들곤 했었다.


  파도와 비를 가르며 배가 속력을 내며 달렸다. 배가 일으키는 물보라와 굵은 빗줄기가 뒤섞이며 물보라가 위로위로 피어올랐다. 잠시 후 언제 비가 왔었냐는 듯 하늘이 맑아지며 해가 났다. 젖은 옷이 바람과 햇살에 금세 말랐다.


 피어 옆 식당 L'Escale는 손님으로 붐볐다. 삶은 홍합과 구운새우파스타 대구요리 피쉬수프를 시키니 잔치상이 되었다. 싱싱한 해물에 시장기까지 더해 맛있게 먹었다. 새우구이는 먹어본 중에 최고라 할 만했다. 머리까지 바삭해 고소한 내장까지 남김없이 먹었다. 바다 건너 해변에 높이 쌓인 샌드듄 Dune du pilet이 지척에 보였다. 호수같이 잔잔한 바다 위에 고깃배와 요트가 있는 풍경이 실제 같지 않고 마치 꿈속이나 그림 속 장면 같았다.


 해변에 가족한가로이 휴가를 즐긴다. 아이들이 까르르 대며 해변을 뛰어다니고 부부는 돗자리를 깔고 앉아 아이들을 바라본다. 그들에겐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것 같았다. 사내아이가 커다란 쌍안경으로 먼바다를 보며 아빠에게 뭐라 뭐라 소리쳤다.


 배를 타고 다시 바다를 건너 샌드듄 Dune du pilet을 보고 가기로 했다. 이 모래언덕은 바다와 숲 사이에서 바람이 모래를 차곡차곡 쌓아 사구가 형성된 독특한 곳이다. 그러나 배 타는 시간이 지연되 파리로 돌아가는 기차시간이 빠듯해 마음을 접어야 했다. 하선하자마자 택시를 불렀지만 도통 잡기가 힘들었다. 알카숑에서 보르도 가는 기차가 7시인데 30분 전까지 발을 동동 구르다 결국 지나가는 3번 버스를 탔다. 마침 알카숑역을 지난다 했다.


 딸은 이 기차를 놓치면 이미 예매해 둔 보르도에서의 파리행 기차를 놓치게 된다며 애가 탔다. 게다가 알카송 역 앞에 가방까지 맡겨둔 터이니 더 속이 탔다. 기차시간에 도착하지 못할 경우 딸이 혼자 남아 가방을 찾아 다음 기차를 타고 오겠다 하자 아들이 누나 나도 남을께 하며 든든히 나섰다. 우리가 뒤차로 가겠다 하니 그나마 불어를 조금이라도 하는 자기가 더 낫단다.


 기차 발차 시각 10분 전에 버스가 알카숑역 앞에 섰고 내리자마자 둘은 쏜살같이 짐을 맡겨둔 호텔로 달렸다.  우리에게 기차를 타고 있으라 당부했지만 애들만 남겨두게 될까 애가 타서 자꾸 아이들이 달려간 길만 보였다. 승선 위치만 확인하고 아이들이 얼마나 갔을까 출구로 나가보려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것처럼 아이들이 눈앞에 나타났다. 두 녀석이 어찌나 빨랐던지 몇 분 사이에 돌아와서 깜짝 놀랐다.


  기차에 올라 숨을 고르고 가족이 무사히 파리까지 함께 돌아가게 됨을 감사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가이드를 해 온 딸아이가 마지막 계획이 어긋날까 얼마나 가슴 졸였을지. 부모와 동생을 위해 쉼 없이 챙기고 계획을 하는 아이를 지켜보면서 맏이의 마음 씀은 하늘에서 내리는 거구나란 생각을 하게 했다.

보르도에서의 이틀이 꿈같이 지나갔다. 차창으로 이틀 간의 즐거웠던 순간순간이 스쳐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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