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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재숙 Monica Shim Oct 02. 2023

9. 프랑스 와인의 자존심 보르도와 물의 거울

보르도 파리 프랑스 7.28

 보르도 생쟝Saint Jean역을 빠져나오니 파리와 다른 공기가 느껴졌다. 도심과 다르게 사람들의 표정도 걸음걸이도 느긋하다. 역에서 20분을 걸어 재래시장 Marche des Capuchins에 먼저 들렀다. 해물과 농산물 등 갖은 물건을 파는 시장인데 딸은 거기서 프랑스 보르도음식을 맛볼 거란다. 보르도는 대서양과 갸롱강을 끼고 있어 각종 해산물 요리가 풍부하다. 프랑스 음식은 거의 보르도지역에서 온 게 많다고 한다.  보르도사람들은 왜 우리 지방 음식을 파리지엥은 자기네 것처럼 선전하는지 불만이란다. 보르도의 명물인 홍합찜을 드디어 맛보았다. 한국의 홍합탕과 다르게 여긴 홍합을 와인에 삶고 치즈와 각종 야채를 넣어 찐다. 짭짤한 치즈맛이 돌았지만 먹을만했다. 그래도 우리나라 홍합찜의 시원한 맛과는 차원이 달랐다.    


  보르도 Bordaeux는 프랑스 남서부에 위치한 항구도시로 세계 최대의 고급와인 생산지다. '보르도'라는 이름은 'Au bord de l'eau' '물 eau 가 bord'라는 뜻에서 유래한다. 따뜻하고 온화한 해양성 기후를 갖추고 있으며 이곳의 와인은 갸롱강과 도르도뉴강이 합류하여 대서양으로 흘러가는 지롱드강 지역에서 대부분 출하된다. 프랑스 식민제국시대에는 관문 역할을 하며 식민지에서 들어오는 각종 물산이 이곳으로 들어와 프랑스전역으로 들어갔고 최고급 와인들이 이곳을 통해 전 세계로 나갔다. 과거 파리 못지않은 번영을 누리며 제2의 파리란 별명이 있을 정도였다. 빅토르 위고 "베르사유와 엔트워프를 가져라. 우리에겐 보르도가 있다."라는 찬사를 할 정도였다 한다.


 보르도지방은 큰 산맥이 바다의 습기가 넘어가지 않게 막아주고 강한 햇살과 비옥한 토양으로 와인 생산에 적지다. 갸롱강을 중심으로 동쪽지역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와이너리가 많고 대규모로 생산되 공장화되었다. 그에 비해 남서쪽지역은 소규모 와이너리가 많고 농장마다 독특한 와인을 생산한다. 과거엔 동쪽지역의 품질에 밀렸지만 소규모 농장주들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특화된 와인을 생산해 와인매니아들의 사랑을 받고있다한다.


 보르도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와이너리 투어를 예약했다. 보르도 안의 와이너리보다 가격이 훨씬 저렴했는데 가보니 상까지 받은 유명한 와이너리였다. 일인당 20유로라 했다. 도심에서 조금 벗어나 택시를 불러갔다. Bolt택시를 앱으로 불렀는데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가 운전을 했다. 프랑스에 온 지 한 달밖에 안된 딸아이는 그전에 프랑스어를 전혀 몰랐는데 어떻게나 언어 습득이 빠른지 아줌마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갔다. 좁은 골목길에 자전거가 갑자기 튀어나오고 한쪽은 주차가 되어있어 운전하기 쉽잖아 보였다. 딸은 뉴욕도 이렇게 자전거나 행인이 갑자기 튀어나오기도 한다며 아줌마의 운전솜씨를 칭찬해 가며 갔다.


 Chateau Pape Clement 와이너리는 아담한 곳이었다. 작은 성이 하나 있고 소박한 규모인데 역사가 꽤 깊었다. 와인이 생산되는 과정을 듣고 와인 저장소를 둘러보고 이곳 생산품인 와인 세 가지를 맛보았다. 우릴 안내하는 아가씨는 영어를 불어식으로 발음해 모두 알아듣기 힘든 표정이었다. 그래서인지 한참 설명한 후에 내 말을 이해했느냐며 꼭 확인을 하곤 했다. 마당에 멋진 올리브나무가 몇 그루 있는데 800년에서 1500년 된 나무였다. 그렇다면 이 와이너리 역사가 얼마나 깊단 말인가. 미국에서 온 사람들은 이젠 캘리포니아의 나파밸리와인이 보르도를 이겼는데 하며 우쭐댔었다. 미국 나파밸리의 으리으리한 시설의 규모를 보다  소박한 시설의 이곳을 보고 참 소규모 와이너리네 하며 조금은 얕보았던 생각이 뒤통수를 맞았다. 잠시 여기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보르도란 걸 잊었던 게다. 오랜 시간 축적된 기술과 전통의 깊이를 넘어선다는 것은 또 다른 일이다.


 두 시간 넘은 투어를 하고 보르도의 숙소로 왔다. 에어비앤비로 예약한 숙소는 위치가 좋았다. 방두개와 거실까지 있는데 260불이었다. 보르도는 현대와 16세기 과거가 공존하는 도시라 했다. 한국 드라마 도깨비에서 빨간 문을 통해 다른 세상과 연결되는 것처럼 숙소 문밖을 나서니 중세도시가 펼쳐졌다.


  많은 사람들이 거리 식당과 카페에 몰려있었다. 높은 위도 탓에  9시 반에야 해가 지니 늦은 시각까지 레스토랑 안팎으로 사람들이 꽉 들어차 있었다. 골목엔 연주자들이 음악을 연주하고 생맥주집엔 스포츠 경기를 응원하는지 시끌벅적했다. 많은 식당들이 예약 없인 들어갈 수 없는 데다 만원이라 몇 군데를 돌다가 겨우 자리를 잡아 저녁을 먹었다.

 

 배불리 먹은 우리는 젤라토를 하나씩 들고 갸롱강가 부르스 광장 la place de la Bourse으로 나갔다. 강변에는 사람들이 여름밤을 즐기고 있었다.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16세기 건물들이 병풍처럼 늘어서 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광장 쪽에는 신나는 댄스음악이 울리고 구경꾼들로 가득했다. 댄서들이 돌아가며 각종 댄스묘기를 보이며 사람들의 흥을 돋우고 있었다.


 흥미롭게 댄스구경을 하는데 갑자기 음악이 멈추더니 댄서가 나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지 않는가. 당황해 뒤로 물러서려는데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크게 나왔다. 우리나라 음악이 나오니 마다할 수도 없고 난감한 마음으로 무대로 끌려갔다. 세계에서 몰려온 관광객 앞에 한국인 대표가 된 셈이니 뭐라도 해야 했다. 강남스타일에 맞춰 어정쩡한 말춤을 시작했다. 관중석에서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오고 사람들이 강남스타일을 한국말로 따라 부르며 함께 춤을 추었다. 이게 대체 뭔 일이랴! 내 나라의 음악이 이렇게 세계인을 열광시키는데 어정쩡한 내 춤사위가 뭐 대수냐 내 체면이 뭐 대수겠는가. 정신을 차리고 자리로 돌아오니 남편이 다음엔 춤 연습 좀 하고 나가야겠다며 놀렸다. 딸은 많은 사람들이 녹화를 했으니 엄마는 이제 인스타그램 스타가 될 거란다. Oh No!


 부르스 광장 바닥에서 샘물이 솟듯 물이 솟아 나오며 넓은 광장을 덮어갔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맨발로 들어가 찰박대며 물놀이를 즐겼다. 웅장한 주변 건물이 바닥의 물에 비쳐 미러링 되면서 환상의 아름다움을 자아냈다.  '물의 거울'이란 분수란다. 사진으로만 본 남미의 우유니호수 같았다. 밤하늘의 달과 별이, 지상의 화려한 불빛과 건물이 물의 거울에 담기며 하늘과 땅의 구분이 사라졌다. 아이들은 깔깔대며 달을 걷고 별을 잡았다. 연인과 속삭이며, 자전거를 타며, 친구들과 떠들며 사람들은 달빛에 취한 갸롱강의 여름밤을 즐겼다. 또 다른 프랑스의 모습이었다.


 와이너리에서 사 온 와인을 숙소에서 마시며 프랑스식 건배로 우리는 눈을 서로 맞추고 샹떼! 하며 잔을 부딪쳤다. 행복이 입안으로 서서히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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