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류재숙 Monica Shim Sep 30. 2023

7. 파리 소매치기 사건

파리 프랑스 7.25.23

 오후 여섯 시경 전철을 타니 퇴근하는 사람들로 전철역이 혼잡했다. 한산한 시간에만 전철을 이용하다 사람들의 홍수를 보니 한국에서 승객들에게 밀려 전철을 오르내리던 때가 떠올랐다. 붐비는 전철 안에서 행여 소매치기라도 당할까 봐 가방을 뒤로 맨 남편을 등 뒤에서 안았다. 안쪽에 자리가 나자 딸이 나를 얼른 앉게 했다. 


 입구에 서 있는 남편에게 백팩을 앞으로 메라 사인을 보내도 요동이 없다. 안쪽에 자리가 나서 남편과 딸에게 안으로 와서 앉으라 해도 괜찮다며 서 있었다. 파리 북역 전철역에 이르니 쓰나미가 밀려오듯 승객들이 한꺼번에 우르르 타서 삽시간에 전철 안은 만원이 되었다. 사람들이 서로 밀치고 밀리며 소매치기하기에 딱 좋은 상황이었다. 바짝 긴장이 되어 앉아서도 가방을 다시 움켜쥐었다.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남편과 딸이 안심이 되지 않아 눈길은 자꾸 두 사람에게 향했다.


  갑자기 어떤 아저씨가 "픽포켓!"이라 크게 소리쳤다. 외침과 동시에 전철문이 열리자 몇 명이 우르르 내렸다. 마침 경찰이 문 앞에 있어 그 아저씨가 저 사람 잡으라 소리쳤다. 경찰이 인파를 헤집으며 어디론가 달려갔다. 전철 안은 모두들 웅성대며 황급히 자기 가방을 살피기 시작했다. 


 남편이 멘 백팩이 반쯤 열려있다. 딸의 스카프가 바닥에 떨어져 있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남편이 열린 가방을 들고 내 쪽으로 달려왔다. 가방은 이중으로 락이 걸려 있었는데 어찌 열었을까. 당황하는 남편에게 가방 안엔 물과 모자만 있고 귀중한 게 없으니 염려 말라 안심시켰다. 그러자 어떤 사람이 이 지갑 누구 거냐고 바닥을 가리켰다. 남편 것이었다. 남편의 얼굴이 더 하얗게 변했다. 지갑을 주워 들고 살펴보더니 다행히 없어진 건 없는 것 같단다.


 소리쳐준 아저씨가 다가오며 자기도 지난주에 소매치기를 당했다며 흥분해 상황 설명을 했다. 자기가 남편 옆에 서 있었는데 긴 스카프를 맨 한 여자아이가 남편 뒤에 있다가 스카프를 남편 백팩 위로 슬쩍 덮더란다. 뭔가 이상해 보여 자세히 보니 스카프 안으로 손이 들어가며 가방을 여는 것 같았단다. 그래서 크게 소리쳤단다. 우리는 감사인사를 몇 번이나 했다. 다행히 분실된 게 없어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아저씨가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뭔가를 꺼낼 새가 없었나 보다. 또한 동시에 남편이 얼른 몸을 돌리는 바람에 지갑을 꺼내다가 부딪혀 떨어뜨린 것 같다.


 바지주머니에 지갑을 넣으면 위험할 거라 말렸었는데 옆 주머니라 지갑에 손대면 느낌이 있을 거라며 쓸데없이 과잉염려를 한다며 아내 말을 일축했었다. 그런데 정작 지갑을 꺼내갈 때는 밀리는데 신경 쓰느라 아무 느낌이 없었다 한다.  백팩은 내가 종일 메고 다니다 오후에 남편이 잠깐 맡아준 거였는데 가능한 앞 쪽으로 메는 게 좋겠다 해도 걱정 말라며 지나쳤다. 다행히 잃은 물건은 없었지만 만약 지갑을 잃었으면 아주 곤란한 상황에 빠질 뻔했다. 


 세상의 모든 남편이 마누라 말은 잘 안 듣는 게 만국공통인가 보다. 다른 나라 와이프들도 같은 말을 자주 하는 걸 보면. 우리 동네에 택배 가게가 있다. 무슨 사연이 있는지 가게 안 벽에 페인트 글씨가 커다랗게 쓰여 있었다. '마누라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 근데 내 남편은 떡을 좋아하지 않으니 어쩌랴.


 학창 시절 한국에도 소매치기가 많았다. 대학 때 동성로 길을 걷는데 느낌이 이상해 어깨에 멘 가방을 보니 손 하나가 들어와 내 지갑을 잡고 있었다. 무의식적으로 그 손을 따라가니 한 남자가 뒤에 있었다. 그는 "뭘 봐!" 하더니 손을 슬그머니 뺐다. 그날은 무사히 지났지만 그 후 결국 그 지갑은 누군가에게 소매치기 당해 잃어버렸다. 그때는 면도칼로 가방을 그려 꺼내 가기도 하고 오토바이로 다가와 낚아채 가기도 하고 별별 방법이 동원되었다. 


 유럽의 소매치기는 한국 소매치기에게 한 수 배워야 할 정도로 방법이 순진하다. 스카프를 이용하거나, 끼어들기를 하거나, 여러 사람이 공조해 주의를 산만하게 하는 수법을 쓴다. 집시들은 유럽 전역에 퍼져 점조직을 형성해 소매치기를 한다. 불법체류 신분이라 경찰이 잡아도 법을 적용해 감옥에 넣기도 어렵단다. 그래서 잡으면 비행기를 태워 추방했었는데 추방하면 또다시 돌아와 범죄를 저지른단다. 괜히 비행기 삯만 낭비하는 셈이 되어 경찰도 포기하고 잡지를 않는다 했다. 그러다 보니 유럽이 소매치기의 천국이 되어 버렸다. 그래도 미국처럼 총이나 칼을 안 쓰니 다행이라 위로해 본다. 


 요즘 미국 캘리포니아에는 대도시에 떼강도가 극성이다. 사람들이 붐비는 벌건 대낮에도 강도들이 백화점을 털고 명품과 보석을 싹 쓸어 간다. 피해자들이 신고를 해도 경찰이 제대로 출동하지도 않고 안전문제 때문인지 종업원들이 절도범을 제압하지 못하게 법으로 명시되어 있다. 또한 감옥이 범죄자로 만원인 데다 무슨 법 때문인지 강도가 잡혀도 다음 날로 풀려나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솜방망이 처벌로 강도들은 더 활개를 치고 주인들은 아예 매장을 폐쇄해 버리는 분위기다.  떼강도 출몰은 이미 4, 5년 전부터 계속되어 왔는데 이제야 전담반을 구성한다고 해 여론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범죄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겠지만 시민들이 안심하고 다닐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은 없는지 안타까울 뿐이다.





 

이전 07화 6. 귀족문화의 정점, 오페라 가르니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