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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재숙 Monica Shim Sep 24. 2023

5. 샹티이 성 Chateau de Chantilly

샹티이 파리 프랑스 7.24.23

  파리 근교에 위치한 샹티이성을 향해  파리 북역인 Gare du Nord를 향했다. 프랑스는 기차노선이 잘 발달되어 있어 웬만한 곳은 기차로 갈 수 있고 파리시내는 전철이 워낙 많아 어디든 이동이 편리했다.


   어젯밤 내린 비로 공기는 더 맑고 선선하다. 월요일이라 전철은 주말보다 더 붐볐다. 10회 정기권인 나비고 Navigo를 끊으니 2유로를 더 내지만 플라스틱 차표를 줘서 손상도 적고 더 사용하고 싶으면 셀폰에 애플페이를 이용하거나 역의 키오스크에서 돈을 충전하도록 되어있어 일일이 줄 서서 차표를 다시 끊을 필요가 없어 편리했다.

  

 파리 북역 앞에 2022년 빵대회에서 크로와상 부분 일등상을 수상한 Carton이란 베이커리가 있다고 딸이 종종걸음으로 안내한다. 명성에 걸맞게 이른 아침부터 빵을 사려는 줄이 길다. 베이커리 앞 야외 의자에 사람들이 커피 한잔에 빵으로 아침 식사를 하고 있다. 우리는 오늘 성으로 소풍 가서 먹을 샌드위치를 샀다. 에스프레소 한잔에 크루아상 두 가지를 더 시켜 우리도 잠시 야외 의자에 앉아 파리지엥이 되어본다. 맛보기로 산 크루아상을 한 입 베어무는 순간 버터의 풍미가 입안 가득 퍼지며 역시 하는 탄성이 나왔다. 파리의 빵 맛은 어디에 견줄 수 없을 만큼 훌륭하다. 빵하나와 커피 한잔으로 행복해지는 아침이다.


 북역은 밖에서 보는 건물 크기만큼이나 어마한 규모였다. 유럽의 다른 나라와 연결하는 유레일페스와 파리 외곽을 연결하는 RER기차, 그 외 다른 기차 노선과 많은 지하철노선까지 소화하고 있었다. 기차역 게이트만도 36개나 되었다. 세계에서 모여든 여행객으로 역은 붐볐다. 마치 세계의 중심이 파리인 것 같았다. 당장 여기서 표를 끊으면 옆도시를 방문하듯 바다 건너 런던이든 스위스든 독일이든 다른 나라를 자유로이 갈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이렇게 큰 역도 부족한지 2024년 신역사 쪽 공사가 완공될 거라는 커다란 광고가 붙어 있다.


 기차는 다소 한산했다. 파리 기차역의 뒷모습도 역시 다른 대도시와 다름없이 역주변이 캘리그래피 낙서로 어지러웠다. 기차는 서서히 출발했고 오래간만에 타보는 기차로 마음이 들떴다. 파리도심을 10분 정도 벗어나자 숲과 들판이 나타났다. 역무원이 검표를 했다. 실수로 표를 잘못 끊어도 큰 벌금을 내야 한단다. 워낙 많은 사람이 방문하니 세계의 각종 거짓말이 난무해서일까 어떤 핑계도 용납되지 않는다 했다. 역무원이 다가오자 제대로 표를 구입했는데도 괜히 긴장되었다.


 기차 안에서 몇 마디 대화를 나눈 것 같지 않은데 딸이 벌써 내릴 역이라고 재촉한다. 생각 없이 사람들을 따라서 내렸는데 바깥엔 주차장만 보일 뿐 기차역 건물도 없다. 뭔가 기분이 이상해 살펴보니 한 정거장 더 가서 내려야 하는 걸 일찍 내린 거였다. 다음 기차는 40분 이상을 기다려야 해서 앱으로 택시를 불렀다. 다행히 다음역까지 가까워 12유로면 갈 수 있었다. 기차는 일인당 8.5유로였다. 파리에서 샹티이까지 자동차로 한 시간 내 거리니 인원이 많을 땐 기차보다 택시가 더 쌀 수도 있겠다. 더군다나 샹티이성까지는 기차역에 내려 30분을 걸어야 한다니 택시로 바로 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택시는 숲 길을 달렸다. 간간이 넓은 숲 속에 성 같은 집이 불쑥불쑥 나타났다. 파리에서 한 시간도 안된 거리가 파리와 판이하게 다르단 게 신기했다. 마치 현대와 중세를 타임머신을 타고 오가는 기분이었다.


 택시가 정차한 곳은  백설공주 동화에서나 보던 아름다운 성 앞이었다. 성 앞뒤로 해자가 있어 물이 흐르고 아름다운 정원이 호수와 어우러져 있었다. 샹티이 성은 파리 주변 지역에서 가장 큰 세 개의 숲인 샹티이 Chantilly, 아라트 Halatte, 에흐므농빌 Ermenonville과 인접한 7,800 헥타르 면적에 세워져 있다. 성 안에 있는 콩데 박물관 Musee Conde은 루브르박물관 다음으로 중요한 걸작들과 희귀 필사본, 고서를 소장하고 있다. 이곳은 우아한 샹티이 성뿐만 아니라 베르사유 정원을 닮은 정원, 프랑스 경마의 수도라 불리는 경마장, 말 박물관 등이 있다.


  1671년 루이 14세가 이곳에 초대된 날  유명한 요리사 프랑수와 바텔 Francois Vatel이 요리 재료 배달이 지연되어 연회가 제대로 진행되지 못한 데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자살했다 한다. 음모와 술수 권력싸움이 치열했던 당시 프랑스 왕실과 귀족사회 분위기에서 성실한 한 요리사의 삶이 비교되었다. 그의 삶이 영화 '바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오늘날 휘핑크림의 원조가 된 ‘크림 샹티이 Crème de Chantilly’는 바텔의 작품으로 바로 이곳에서 탄생했다.  이곳 카페에서 샹티이크림을 맛볼 수 있다.


 프랑스 마지막 왕 루이 필립의 다섯째 아들인 앙리 오를레앙 (오말 공작 Duc d`Aumale)은 거대한 재산을 소유한 부르봉 공작의 대자였다. 앙리가 8세가 되던 해 직계 후손이 없던 대부가 자살을 함으로써 모든 재산을 유산으로 물려받았다. 8살 어린 꼬마가  프랑스 최고의 벼락부자가 된 셈이다. 성 내부는 과거 오말 공작이 르네상스에 심취해 모은 많은 그림작품과 서재, 사냥을 즐기던 그의 취미에 맞춰 240마리의 말을 수용하던 거대한 마구간과 사냥개들이 있었다. 그는 생전에 여러 취미를 즐겼고 사후에 그의 컬렉션이 훼손되지 않게 정부에 박물관으로 기증했다 한다.


  한 사람의 귀족이 이 정도의 혜택을 누리고 살았으니 가난한 국민들이 감당해야 할 짐이 얼마나 무거웠을까. 나 하나 배부르면 지구 한편 어딘가 굶는 이가 있을지 모른다는 한 시인의 말을 당시 귀족들은 이해할 수 있었을까. 타인의 아픔을 공감하지 못한 결과는 결국 프랑스 대혁명을 초래했고 귀족들은 단두대로 향해야 했다. 혁명 후 샹티이 성도 훼손되고 감옥으로도 쓰였다가 재건축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종일 비가 오락가락했다. 마구간으로 가는 길에 비바람을 만나 비 피할 곳 없는 들판에서 고스란히 비를 맞으며 걸었다. 나무아래 비를 피하며 점심으로 가져간 차가운 샌드위치를 먹었다. 멀리는 그림 같은 성 안에 귀족들은 산해진미로 배부를 때 들에서 종일 일하던 가난한 평민은 이런 샌드위치도 호사였을지 모른다.

 

 마구간엔 아직도 말들이 길러지고 있었다. 말 박물관에는 말에 관한 각종 자료와 예술품, 말안장에서부터 각종 말에 관한 기구가 전시되어 있었다. 마구나 가죽을 잘 다루는 장인 기술이 명품생산으로 이어졌는데 지금의 명품 헤르메스도 19세기경 마구를 생산하는 회사였다.


  돌아가는 길엔 역까지 무료 셔틀이 운행된다 해서 뒷문 정거장으로 갔다. 근데 실수로 길 건너편에 서서 기다리는 바람에 눈앞에서 마지막 버스를 놓쳤다. 30분 거리면 넉넉히 역까지 걸어갈 수 있다 해서 여유롭게 마을을 구경하며 걷기로 했다. 


 마을을 벗어나자 확 트인 들녘이 펼쳐지고 오솔길 하나가 그림처럼 들을 가로질러 나 있었다. 높이 자란 들풀이 바람에 물결치듯 흔들렸다. 멀리 구름을 가득 인 샹티이 성이 보였다. 우린 버스를 놓친 게 참 다행이라고 웃었다. 복잡한 파리에 와서 이런 시골길을 걸어보리란 상상을 했겠는가. 프랑스 시골의 한적한 여유가 화려한 성보다 더 인상 깊었다.


 기차에 오르자마자 장대비가 쏟아졌다. 내리는 비를 고스란히 맞으며 기차는 파리 북역으로 서서히 진입했다. 중세를 벗어나 타임머신은 현대로 다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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