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철4호선을 타고 시테Cite역에 내려 노틀담 대성당을 향했다. 전철역을 나와 모퉁이를 돌자두개의 석탑모양의 건물이 높이 보였다. 뒤에 있던 첨탑과 지붕이 있던 자리는 휑하니 빈 채 거대한 기중기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2019년 화재로 반토막이 난 몸을 하고 묵묵히 남은 모습을 드러내는 파리 노틀담 대성당. 총 맞은 가슴처럼 성당 한복판은 화재로 뻥하니 뚫려 있고 그 주위로 타다 남은 검은 서까래 나무들이 흩어져 있었다. 몸의 반을 잃은 대성당이 큰 장비들에 둘러싸여 복구 수술을 받고 있었다.
화재 당시 불길이 오른지 불과 한 시간 만에 대성당의 첨탑이 처참히 무너져 내릴 때사람들은 프랑스의 할아버지를 잃은 것처럼 아파하고 오열했다. 9.11 당시 영화의 한 장면을 보듯 무너져 내리던 뉴욕 쌍둥이빌딩이 떠올랐다. 수많은 이의 생명과 함께 쌍둥이 빌딩이 허망하게 무너져 내릴 때 사람들은 그저 어어 하는 외마디 비명만 내질렀었다.
사람이 떠난 자리든 사물이 떠난 자리든 그 존재가 사라진 후에야 그 빈자리가 크다는 것을 깨닫곤 한다. 무심코 그 자리에 손을 내밀다가 비어있는 자리를 발견하곤 화들짝 놀라기도 하고, 어느날 그의 부재가 멈출 수 없는 파도처럼 걷잡을 수 없이 몰려 오기도 한다. 이를 한참 되풀이 하고서야 비로소 더 이상 그가 존재하지 않음을 받아들이게 된다. 사라진 쌍둥이 빌딩도 노틀담의 첨탑도 돌이킬 수 없는 커다란 빈자리를 남겼다.
파리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파리 노틀담 대성당 화재를 다큐멘터리로 엮은 영화를 보았었다. 어떤 사고든 발생하고 난 후에는 이랬으면 참사를 막을 수 있었을텐데 하는 후회가 있기 마련인 것처럼 대성당 화재도 다르지 않았다. 아직도 정확한 화재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날 조금만 더 주의를 기울였다면 이렇게까지 되진 않았을텐데 하는 아쉬운 부분이 많았다. 공사장 담벼락에는 대성당의 과거, 화재 직후, 현재 그리고 미래의 모습이 전시되어 있었고 복구 작업에 참여하는 사람들과 대성당의 역사가 설명과 함께 있었다. 2024년 파리 올림픽 전에 복구 작업을 마치는 게 목표라 했다.
복원공사에는 프랑스인들의 의견이 세갈래로 나뉘어 열틴 토론이 벌어졌다 한다. 하나는 과거 그대로 복원하자이고 또다른 안은 아예 재난 걱정없이 완전히 현대식으로 바꿔 짓자이고 다른 안은 현재 신자들이 미사드리는 곳과 관광객이 입장하는 곳을 별도로 나눠짓자는 안이었다한다. 투표결과 과거 그대로 재현해 복원하자는 안으로 결론지어 졌다.
파리 노틀담 대성당은 프랑스 후기고딕양식의 건축물로 프랑스 고딕 건축의 정수로 평가된다. 이 대성당은 지금도 로마 가톨릭 교회의 건물로서 파리 대주교좌 성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노틀담'은 성모 마리아를 뜻하는 '우리의 귀부인'이라는 뜻의 프랑스어다. 성모마리아 대성당이란 의미여서 전세계에 노틀담이란 이름의 성당들이 많다.
높은 건물이 없던 과거엔 거대한 노틀담 대성당이 파리의 좌표가 될 정도로 위풍당당했었다. 유럽의 많은 성당들은 쑥쑥 자라는 손주들 사이에 파묻힌 노인네 처럼 높은 빌딩 숲 사이에 묻히고, 턱없이 줄어든 신자들로 관광객들의 구경거리가 되어버린지 오래다. 노틀담 대성당도 그렇게 나이들어 가고 있었다. 저녁 노을 속에 망연히 서 있는 반토막난 건물에서 겉과 속이 허허로운 늙은이의 고독이 보였다.
너무 오래되어 무너질 위험이 있으니 대성당을 허물어야 한다는 의견이 과거에 분분했었다. 그러나 빅토르 위고가 쓴 '노틀담의 곱추' 인기 덕분에 철거되지 않고 지금까지 보수를 하며 유지되어 오고 있었다. 펜의 힘이 노쇠한 성당을 사라질 위기에서 구한 셈이다. 그러나 이렇게 허망하게 타버렸으니 위고가 살았으면 심히 안타까워할 일이다.
성당의 종지기였던 노틀담의 곱추, 콰지모도가 떠올랐다. 굽은 나무처럼 휜 등에 귀머거리였던 그를 따뜻이 대해 준 오직 한 사람, 에스메랄다를 사랑한 그, 눈 앞에서 에스메랄다가 마녀로 몰려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던 그, 그녀를 죽음으로 몰고 간 양아버지 부주교를 분노로 살해했던 그, 사랑했던 두 사람의 비극적 죽음을 견뎌야했던 그는 그후 어찌 되었을까. 그의 애증 가득한 노틀담 성당 첨탑의 사라짐과 함께 그의 비극도 마침내 끝이 났을까.
떠나감에 대한 집착도, 사랑에 대한 집착도 인연을 순순히 보내지 못하는 미련에서 비롯되리라. 콰지모도의 사랑도 노틀담의 첨탑도 다시 피어날 새로운 사랑과 새 성당을 기대하며 마음 한켠에 간직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