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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재숙 Monica Shim Sep 19. 2023

2. 몽마르뜨에서 장밋빛 인생을

파리 프랑스 7.22 저녁

우리 숙소는 '하얀 문이 있는 길 Rue de Portes Blanche' 이란 주소를 가졌다. 하얀 건물 6층에 위치한 방 두 개의 아파트인데 아늑하고 이름처럼 예뻤다. 동그란 부엌창으로 늦은 오후 햇살이 깊숙이 스며들었다. 발코니 문을 여니 와 하는 탄성이 절로 났다. 몽마르뜨 언덕에 우뚝 솟은 샤크레 쾨르 대성당이 손에 잡힐 듯 보였기 때문이다. 구름이 후광처럼 빛나는 저 성당을 매일 바라볼 수 있다니. 그 아래로 오래된 빌딩 지붕에 작은 굴뚝들이 저녁 햇살을 받으며 몽글몽글 솟아 있었다.


딸이 메밀국수를 삶아 들기름 참기름 매운 소스 김가루를 넣어 비벼주었다. 맛났다. 어릴 때 잘 먹지 않아 저 먹이려 맛난 음식을 해 동네 친구들을 모아 함께 먹이곤 했었다. 어느새 훌쩍 자라 이 낯선 땅도 씩씩하게 혼자 와 엄마 아빠 끼니를 차리다니 메밀국수 접시 앞에서 뭉클했다.


 몽마르뜨로 저녁산책을 나섰다. 동네 마실 가듯 슬리퍼 신고 가는 몽마르뜨라니, 파리가 첫날부터 정겹다. 가는 길 곳곳에 카페와 식당엔 사람들이 주말 저녁을 떠들썩하니 즐기고 있었다. 온통 밝은 회색빛의 건물들이 파리의 하늘색과 닮아보였다.


 언덕을 한참 올랐는데 깎아지른 계단이 또 까마득히 기다린다. 50개 넘는 계단을 숨차게 오르니 샤크레 쾨르 성당 뒷모습이 갑자기 하늘 위로 두둥하고 나타났다.  성당 앞에 서니 파리 시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전 세계에서 온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성당 앞 계단에 앉아 파리시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색의 리본을 넣어 머리를 땋은 흑인 아가씨, 금빛 장식의 사리를 입은 인도 할머니, 히잡을 쓴 아랍여인, 검은 차도르를 길게 입은 무슬림 여인, 키파를 머리에 얹은 유대인 할아버지, 국제회의라도 열린 듯 다채로운 의상의 다양한 인종이 각기 다른 모습으로 다른 매력을 풍기고 있었다.


 언어도 피부색깔도 치장한 겉모습도 각기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어떤 기준을 잡고 사람을 판단한다는 게 참 부질없다는 생각이 든다. 다르다는 것이 이리도 아름다운 것을, 우리는 왜  나와 다르면  거부하고 밀어내며 사는 걸까.


  탁 트인 파리 시내를 지도와 번갈아 보며 숨은 그림 찾기 하듯 칼라플한 퐁피두 건물도 찾고 화재 후 복원공사 중인 노틀담 대성당도 찾아보았다.  아직도 파리지엥의 차가운 시선을 받는다는 검은색의 몽파르나스 빌딩이 낮게 깔린 건물 사이에서 유독 우뚝 솟아 있다. 에펠탑도 퐁피두도 루브르의 피라밋도 두드러진 외양 때문에 건설 당시엔 파리시민의 반대와 멸시를 받았다. 역사와 전통 깊은 건축물 사이에 미운오리새끼 마냥 도드라진 건축물들, 개성 강한 파리지엥의 모습이 오히려 이들을 닮지 않았을까. 어울리지 않는 듯하면서 묘하게 어울리는 신개념의 건축물들은 과거를 고스란히 간직하면서도 끊임없이 새로움을 추구하는 파리의 문화를 보여준다.


 테라트르광장에 가득하던 몽마르뜨의 화가들은 중앙에 새로 생긴 레스토랑에 밀려 언저리에 띄엄띄엄 흩어져 있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모습을 그림에 담고자 이젤 앞에 모델이 되어 앉아 있다. 화가의 손에서 미래에 반짝이는 추억이 될 이 순간이 채색되어 갔다. 회색하늘과 회색지붕, 낮은 채도의 무채색 건물이 가득한 파리에 카페들은 명도 높은  빨강 파랑 조명을 밝히며 두드러져 보였다. 카페 테라스에 앉아 지나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사람들, 그들을 구경하며 지나는 사람들, 서로가 구경거리다.


 테라트르광장 끝을 벗어나 골목길로 돌아서니 석양을 등진 에펠탑이 멀리 나타났다. 지금은 파리의 상징이 되어, 에펠탑이 없는 파리는 상상할 수 없지만 저 탑도 과거엔 파리지엥의 차가운 시선에 시달렸다. 도시 미관을 해치는 흉물스러운 철골 구조물이란 비난을 받으며 해체하라는 원성이 자자했다 한다. 20년 설치 계약기간이 끝나고 철거되기 직전, 때마침 발명된 라디오 덕에 머리에 송신탑을 십자가처럼 지고 나서야 해체 위기에서 가까스로 벗어날 수 있었다.


 하늘엔 붉은 석양이, 거리엔 카페 불빛이 파리의 밤을 물들이고 있었다. "라비앙 로즈..."  어디선가 장밋빛 인생 노래가 들려왔다. 한 노인이 기타를 치며 에디트 피아프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노인이 부르는 장밋빛 인생이라. 그는 화양연화 같던 지난날의 장밋빛 인생을 그리며 노래하는 걸까. 주위에 선 사람들이  함께 라비앙 로즈를 따라 불렀다. 누군가는 과거의 아름다운 추억의 한 장면을 떠올리며, 누군가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장밋빛 인생을 그리며, 또 누군가는 현재 이 순간이 장밋빛 인생임을 노래하고 있었다.  낭만이란 달콤한 잔에 빠지게 하는 파리의 마법에 취해 사람들은 몽마르뜨의 밤을 거닐었다.


 바람은 시원히 언덕을 휘감고  장밋빛 인생을 흥얼대며 걸어 내려온 몽마르뜨. 파리의 첫날밤이 기분 좋게 깊어간다.



숙소에서 바라본 몽마르뜨 샤크레쾨르 대성당/동그란 부엌창으로 보이는 이웃집

가파른 계단을 올라 몽마르뜨로

샤크레쾨르 대성당 앞 계단에서 파리의 석양을 즐기는 사람들

몽마르뜨 타르트르 광장의 화가들과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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