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프랑스 7.23 오전
밤새 비가 내리더니 아침 공기가 제법 차다. 종일 비 예보가 있어 우산을 챙겨야 하나 걱정했더니 딸이 여긴 비가 오락가락한다며 걱정 말란다. 파리지앵은 비를 맞으며 걷는다며 머무는 동안 파리지앵이 되어보라 한다.
마레지구 Marais를 가려고 4호선 전철을 타려니 입구에 '자전거 대회로 오전 운행 중단'이란 안내가 붙어있었다. 할 수 없이 길 건너에서 버스를 타고 가야 했다. 전 세계에서 가장 긴 코스와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자전거 경주인 '투르 드 프랑스'는 프랑스인의 사랑을 듬뿍 받는 대국민 행사다. 첫날 저녁 몽마르뜨 언덕을 오르는 길에 바에서 맥주 한잔을 시켜놓고 축구시합을 보듯 자전거 대회를 응원하는 소리가 여기저기 들렸었다.
소매치기를 조심하라고 하도 주의를 받은 터라 버스를 타면서도 잔뜩 긴장했다. 버스에서 내리려는데 옆자리 흑인 아저씨가 나를 잡는다. 깜짝 놀라 뒤돌아보니 아저씨는 우리가 앉았던 좌석을 가리켰다. 딸아이 셀폰이 주머니에서 빠져나와 의자 위에 남아 있었다. 에이 괜히 겁먹었다. 그러면 그렇지 좋은 사람이 세상엔 더 많아. 괜히 가까이 오는 사람들을 의심의 눈초리로 보았다. 믿고 믿지 못하고의 자세가 주위를 얼마나 달리 보이게 하는가. 의심의 시선을 거두니 모든 사람이 따뜻하고 친절하게 다가왔다. 파리가 다시 보였다.
마레지구는 파리의 동쪽에 위치하며 바스티유 광장과 귀족문화의 중심이 되었던 보쥬광장, 빅토르 위고 박물관 등 여러 박물관이 있는 곳이다. 습지로 농경지였던 이곳은 루브르 성에서 멀지 않아 파리로 몰려오는 귀족들이 살 수 있게 고급 주택가로 개발되었었다. 왕궁을 루브르에서 베르사유로 옮기면서 귀족들도 이동하게 되었고 파리 대혁명 시 귀족들의 집은 파괴되고 수난을 겪었다. 이후 성소수자나 유대인 등 소수 계층이 유입되면서 우범지대로 전락하기도 했다. 1960년대 이곳을 개발하려 했으나 각종 문화가 섞인 독특한 문화가 형성된 이곳에 박물관과 미술관, 독특한 가게와 쇼핑몰이 들어서며 고급 문화 지역으로 바뀌었다.
바스티유 광장은 정치범 수용소로 쓰였던 바스티유 감옥이 있던 곳으로 1789년 생활고에 시달리던 시민들이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면서 프랑스 대혁명의 발단이 되었던 곳이다. 혁명 정부가 왕정의 상징이었던 감옥을 철거하면서 공원이 되었고, 혁명에서 희생된 시민을 추모하기 위해 7월 혁명기념탑이 세워졌다.
보쥬광장에 유명하다는 레스토랑 Carrette에서의 아침식사를 위해 서둘렀다. 7시 반에 오픈하는 식당에 부지런한 사람들이 벌써 와 앉아있었다. 최소 30분은 기다려야 앉을 수 있다는데 일찍 나선 덕에 바로 입장했다.
보쥬광장은 중앙에 가든을 중심으로 사각형의 건물이 성처럼 둘러져 있다.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광장이다. 왕은 중앙집권체제 강화를 위해 각 지역에서 왕노릇을 하던 지방 귀족들을 파리로 수시로 불러 모아 연회를 베풀고 오락거리를 제공했다. 귀족들을 자신의 영토에서 자주 떠나 있게 함으로써 힘을 분산시키고, 그들에게 베르사유나 파리 문화의 우수성을 보여줌으로써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고, 함부로 대항할 수 없게 하려는 계산이 깔려 있었다.
여러 지방의 귀족들이 오고 가니 각 지역 문화가 파리로 유입되고 융합되었다. 귀족 부인들은 여가를 즐기기 위해 살롱에 모여 서로 토론하고 글 쓰고 하는 문화모임을 갖게 되었다. 많은 예술가나 작가를 초청해 함께 공부하면서 그들을 지원하기도 했다. 프랑스 귀족들의 사교문화인 살롱문화의 시작점이 되었다. 살롱문화는 프랑스의 문화와 문학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 지금은 빅토르 위고 박물관이 된 그의 집이 보쥬광장내에 있었다.
당시 지방 귀족들이 파리에 몰려오면서 귀족이 거느린 식솔까지 함께 왔기에 그들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인 Hotel particular가 성행했다. 지금 호텔처럼 방 하나를 빌려 쓰는 게 아니라 건물 전체와 정원이 딸린 형태였다. 파리 곳곳 성 같은 건물 이름에 Hotel이란 명칭이 붙어 있어서 의아했는데 그런 연유가 있었다.
카페 Carrette에서 유명한 샹티이 크림 Chantilly cream과 핫코코, 커피와 크로와상을 시켜 보쥬광장을 바라보며 귀족문화를 맛보았다. 지방에서 올라온 마차 행렬이 바쥬광장 입구에 들어서고 갖가지 치장을 한 귀족들이 마차에서 내려 파리의 화려한 문화에 감탄하는 모습이 상상되었다. 호텔에서 이른 아침 카페에 나와 차를 마시며 각자 살던 지방의 정보를 나누고 예술을 논하던 그들, 프랑스 문화가 찬란하게 꽃피던 그때의 보쥬광장을 그려보았다.
오락가락하는 비를 즐기며 근처 바스티유 주말마켓을 향했다. 바스티유광장 한편에서 열리는 대규모 파머스 마켓이다. 과거 수많은 귀족을 단두대에 보냈던 곳이자 프랑스 대혁명의 시발점이 되었던 바스티유 광장에서 평화롭기 그지없는 시민들의 먹거리 시장이 열리고 있었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빵이 없어 벌어진 혁명의 장소에 먹거리가 넘쳤다.
장터에 나온 사람들의 밝은 웃음과 여유로움을 함께 즐겼다. 갖가지 과일을 깎아 맛보라며 호객하는 농부와 지글대는 불판 위에 익어가는 고기를 기다리는 아저씨, 장바구니를 들고 대화에 열중인 남녀, 커다란 빵을 한 입 가득 베어무는 꼬마, 왁작대는 장터의 소란스러움, 기타를 연주하는 할아버지, 그 옆에서 감상하는 여인, 이런 소박한 일상의 풍경이 자유란게 아닐까. 조상들이 목숨걸고 얻으려던 자유를 후손들이 이렇게 누리고있다.
혁명탑 뒤에는 바스티유오페라극장이 근사하게 자리하고 있다. 귀족들만의 고급문화였던 오페라를 시민들도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 자리에 오페라하우스를 지었다 한다.
혁명탑이 높이 서 있는 광장 아래 주말시장을 즐기는 시민들과 혁명의 깃발을 들고 싸우던 과거의 시민들이 오버랩되었다. 그들이 간절히 바라던 자유와 평등과 박애가 보여주는 이 미래를 그들은 지켜보고 있을까. 귀족들만의 차지였던 고급문화를 이젠 시민들도 누릴 수 있게 된 이 현실을 상상은 했을까. 이후 돈이란 힘으로 생겨난 또 다른 형태의 계급이 다른 모습으로 서민과의 갈등을 초래할 거란 걸 알았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인간 역사에 신분 계층을 없앤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까. 이런저런 상념들이 보쥬광장과 바스티유 광장을 둘러보며 떠올랐다.
가늘게 내리던 빗방울이 굵어지고 있었다. 보쥬광장 옆 빅토르 위고 박물관을 향해 바삐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