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난 여기에 있다
29살은 호주에서 보냈다. 난 심지어 남반구에서도 한동안 백수였다. 평일엔 트레인 타고 이름이 마음에 드는 역에 내려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길도 잘 잃어버렸지만 그 날은 12월 31일, 1년 중 가장 더운 시기였기에 꼼짝 없이 쉐어하우스에 틀어박혀 있었다. 한국인 친구들은 캥거루를 보러 가자고 했다. 그 주머니에 손을 넣어보고 싶다는 건 오랜 숙원이었는데, 정말로 그런 시도를 한다면 캥거루 발차기에 북망산천으로 사출돼 버릴 수도 있다고 하기에 뭐야, 시시하네, 하면서 계속해서 틀어박혀 선풍기 바람만 쐬고 있었다.
저녁이 되니 쉐어하우스에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던 무슬림들이 일터에서 연말 선물로 받은 와인 한 병 씩을 손에 쥐고 퇴근했다. 그들은 꾸란의 가르침에 따라 담배와 마리화나만 피울 뿐 술은 입에도 대지 않는 독실한 신자들이었으므로 와인은 몽땅 다 내 몫이었다.
한 시간 동안 두 병을 비웠다. 기분이 좋아 마당을 어슬렁거리는 야생 칠면조와 함께 춤을 췄다. 붸뤔이 미쳤다는 무슬림 친구의 다급한 전언을 받고 돌아온 한국인 형이 옷에 묻은 캥거루 털을 털어내며 와인을 그렇게 빨리 많이 마시는 놈이 어디있냐고 욕을 했다. 그 잔소리에 짜증이 나서 소리를 빽 질렀다. 여깄다, 왜!
펑, 펑! 퍼벙!
바로 그 순간 새해가 되었고, 하버브릿지에서 터지는 불꽃놀이의 불빛과 폭발음이 여름철 해변가 임시 방갈로처럼 허술한 쉐어하우스를 가득 채웠다.
그렇게 나는 서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