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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박페페 Oct 20. 2020

관계의 버퍼

사람의 머릿속에는 계산기가 있는 게 틀림없다.  매우 정확하고 멈추지도 않는다. 이 계산기는 나의 잇속을 계산하는 전용이다. 이득을 계산하는 데도 뛰어나지만 위험값을 계산하는 데는 정말 뛰어나다.

이 계산기의 특징은 알라딘 요술램프의 지니처럼 주인 전용이다. 계산의 기본입력 항목들이 주인 디폴트값으로 세팅되어 있다. 그래서 상황이 비슷해도 주인에 따라 결과값이 다르게 나온다. 보스 앞에서 말을 할까 말까, 나설까 말까, 지를까 말까. 큰 값이 나온 사람은 대차게 나서며 자신의 용기를 자랑한다. 나서지 않는 자들의 소심함에 열을 내며. 작은 값이 나온 이는 조용히 입을 다문다. 나서는 자의 오지랖이 불편하다.


디폴트값은 주인의 경험력 재력 담력 배경력 지위력 관계력 영향력 등 다양한 요소가 들어간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힘의 원천들이다. 이 요소들은 계산기 속으로 들어가 더하기 또는 곱하기로 그 사람의 총체적인 자원력이 되고 맞닥뜨린 상황과 빼기 혹은 나누기의 과정을 거쳐 '할 것인가'의 물음에 답을 준다. 

기본 자원력이 큰 이는 작은 이에 비해 하다 쪽으로 계산이 많이 나온다. 그게 본인에게 이득이 되기 때문이다. 반면 기본 자원력이 작은 이는 상대적으로 유보 쪽으로 계산이 많이 나온다. 그게 덜 위험하기 때문이다. 큰 값이 나오는 이여 그러니 나서지 않는 이들을 함부로 비난하지 말라. 당신이 그 사람이어도 그럴 것이니까. 작은 값이 나오는 이여 나서는 이들을 비웃지 말라. 당신이 그 위치여도 그럴 가능성이 높으니까.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는다. 머릿속 계산기 덕분이다. 저마다 여건이 다른데 마구잡이로 한 바구니에 넣어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건 대단히 무례한 일이다. 그 사람의 디폴트값이 다름을 고려한다면 비슷한 결과치라도 누군가의 행동은 대단히 소심한 것일 수 있고, 누군가의 다리 뻗기는 무척 용감한 것일 수 있다. 디폴트값은 살면서 변화하게 된다. 디폴트값을 높이는 노력도 의미 있는 것이고, 주어진 디폴트값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도 대단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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