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과와 성형외과가 잘 되는 것은 당연하다. 나 어릴 적엔 생명을 구하는 의사가 진짜 의사였다. 위중하지 않은 미용이나 보완을 위한 치료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었다. 지금은 어떤가. 안과에 가보자. 시력 교정술이 메인이고 정작 안과 치료가 필요한 이들은 현장에서 소외감을 느낀다. 돈이 되는 환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의 망막 박리는 시력교정술 상담을 받으러 갔다가 우연히 발견되었다. 자각증세가 없기 때문에 정기 안과 검진을 받지 않는 한 발견하기 어렵고 그러다 시기를 넘기면 실명까지 갈 수 있는 위험한 증세다. 이후 나는 일년에 한 번씩 망막 박리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안과에 갔다. 시력 교정 시술을 하러 온 주요 고객들 틈에서 난 군식구 같은 환자여서 내내 마음이 불편하다. 차라리 시력 교정 시술이라도 받고 싶어진다.
나름 위중한 증세로 1차 진료기관을 거쳐 종합병원에 가 보면 안다. 진료를 받기까지의 여정은 길고 험난하다. 그 짧은 진료를 위해 반나절은 할애해야 한다. 이번엔 건강검진을 받으러 가보자. 아 세상에 이렇게 편안한 일정이 없다.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쾌적한 공간에서 루즈한 가운을 입고 친절하게 설계된 루트를 따라가다 보면 스스륵 수면으로 가는 내시경에 이른다. 병원이 이렇게 좋은 곳일 수 없다. 병원은 아픔을 고치는 위대한 곳이지만, 그래도 돈 되는 고객은 매우 중요하다.
병원에 가는 우리의 태도도 마찬가지. 건강을 위해 비싸게 지은 한약을 끝까지 다 먹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 얼굴에 난 알레르기 치료를 위한 약을 거를 여자는 한 명도 없을 것이다. 갑상선 호르몬 치료를 위해 살 찌는 것을 감수하며 약을 먹어야 하는 여자들의 마음은 복잡하다. 반대로 살 빠지는 효과를 동반하는 약을 먹어야 하는 경우라면. 피부관리를 위해 레이저시술과 관리를 받고 있던 시기가 있었다. 정말 빼먹지 않고 열심히 다녔다. 대상포진 증세가 있어 피부과에 가야 했을 때는 바쁘다는 이유로 하루 이틀 미루다 증세를 키웠다. 다이어트 중일 때 감기에 걸렸습니다. 감기약이 독해 밥을 꼭 먹은 후 약을 먹으라 합니다. 아 괴롭다.
중요하다는 것, 위급하다는 것, 욕망한다는 것, 비슷할 것 같아도 조금씩 다르다. 우리가 일체의 노력 없이도 본능적으로 반응하는 것들이 중요도에서는 1번이 아닐 수도 있다. 피부 알레르기를 가라 앉히기 위해 위가 매우 안 좋은 나는 속 쓰림을 동반하는 약을 기꺼이 먹을 것이다. 나의 욕구와 욕망을 무시하지 말자. 그게 나의 욕구와 욕망이다. 그걸 알고 중요한 것들도 함께 챙겨 가자고 살살 달래 보자. 내가 중요도 대로 사는 사람은 아님을 세상은 그걸 알고 있음을 그 안에서 내가 살아 가고 있음을 알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