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유치장에 있는 동안 내연남과 피서지로 떠난 불륜녀
지난 시간, 불을 질러 순사들에게 끌려갔던 구리귀신.
그는 과연 어떤 처벌을 받게 될까요?
일제강점기의 형사 절차는 1912년 제정된 조선형사령에 따라 일본의 형사소송법을 의용하면서 조선에 특화된 절차가 병행되었고, 사법경찰관 권한이 크게 확대되어 피의자 방어권이 제한되는 운영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체포된 용의자는 경찰서 부속 유치장에 임시로 수용되었는데요. 경찰서 유치장에 유치된 뒤 사법경찰관의 신문과 처분을 거쳐 석방 또는 송치가 결정되었고, 수사 종결 전 단계에서 신속 처리를 목표로 한 운용이 강조되었습니다. 즉, 사법경찰관의 신문을 거쳐 석방, 즉결처분, 검사 송치 중 하나로 절차가 이어졌던 거죠. 당시 자료를 보면 피의자 유치 필요가 없다고 판단되면 곧바로 석방하고, 필요시 계속 유치 후 검사 송치로 넘기는 흐름이 확인됩니다.
그렇다면 당시 방화는 어떻게 다루어졌을까요.
앞서 말했듯이 일제강점기 시절에는 조선형사령을 통해 일본 형법과 각종 형사 법령이 전 기간에 걸쳐 적용되었고, 공공의 안전을 해치는 범죄는 중하게 다뤄졌는데요. 방화죄 등 중대 범죄를 형법 체계로 엄정 처리하고, 보안법·출판법 등 치안 법규와 함께 엄정한 사법 통제를 가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따라서 고의 방화는 중죄로 간주되어 실형 선고의 대상이 되었고, 과실 화재는 벌금 등 비교적 가벼운 처분이 병행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를 다룬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당시 유치장이나 감옥의 환경은 상당히 열악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1920년대 유치장은 입감 직후 건강 진단과 목욕, 번호 부착 같은 위생 절차가 있었지만 운영의 중심은 쾌적함이 아니라 신속한 통제에 놓여 있었는데요. 수형자 증가는 상시적인 과밀을 낳았고 시설 확충이 뒤따르지 못해 위생 여건은 쉽게 악화되곤 했습니다. 또, 환기와 채광이 부족한 좁은 방은 사람 수에 늘 밀렸고, 비위생적인 환경은 해충의 번식도 부추겼습니다.
특히 독립운동가로 분류된 사상범은 일반 수형자보다 훨씬 더 가혹한 처우를 받았습니다. 독거와 함께 접촉 차단, 전향 강요, 징벌 강화 등의 처우가 있었고요. 형사피고인은 가능한 독방에 가두고 의사소통과 이동을 금지했으며, 위반 시 독방에 가두거나 식사를 제한하고 고문이 동원되기도 했습니다. 또, 사상범에게는 전향 강요와 석방 전 독거와 훈계, 석방 후에는 보호와 요시찰 통보까지 이어지는 체계적 통제가 작동했습니다. 물론 이 외에도 기록으로는 알 수 없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더 심한 처우도 존재했을 겁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시절, 마냥 어두운 일면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철도와 기선이 연결되며 호텔과 여관, 스포츠 시설이 더해졌고 해수욕과 온천욕이 결합한 근대적 피서 문화가 1920년대 여름 풍경을 바꾸어 놓았는데요. 무더운 여름이 되면 사람들은 더위를 피하기 위한 가족들과 피서지로 떠나기도 했습니다.
대표적인 피서지로는 국제적 해수욕장으로 자리 잡은 원산 송도원, 개항기부터 개발된 부산 송도와 해운대, 지역 수영 교육을 바탕으로 성장한 광안리 같은 해변이 있었고 동래·온양·유성 등 온천과 기획된 관광 코스로 자리 잡은 금강산도 여름 휴양지로 인기를 모았습니다.
제가 왜 유치장과 피서지의 이야기를 동시에 꺼내느냐고요?
다음 만화를 보시면 이해가 되실 겁니다.
(1) 캄캄한 유치장에 한 달 반을 갇혀 있다가
구리귀신 : 아니, 이틀만 갇혀 있으면 내보낸다더니 한 달이 되어 가는데도 유치장 문이 열리지 않으니 웬일이야... 어이 캄캄한 지옥... 이-그 가려워. 빈대, 벼룩, 쥐가 이렇게 많은 데는 처음 보았네. 이크- 따가워...
해석: 캄캄한 유치장에 갇힌 구리귀신
지난 시간, 방화를 저지른 구리귀신. 유치장에 갇힌 구리귀신은 이틀만이면 나온다던 말을 믿었지만, 실제로는 캄캄한 유치장 안에서 한 달 반을 갇혀 있게 되었습니다. 채광도 환기도 부족한 공간에 냄새와 가려움, 빈대, 벼룩, 쥐까지 더해지니 '캄캄한 지옥'이라는 표현이 과장이 아니게 들립니다. 내부를 그리지 않고 검은색으로 칠한 장면이 유치장의 환경이 어떠할지 상상력을 자극하네요.
(2) 과실범(過失犯)으로 벌금 이백 원에 처해져
순사 : 사흘 안에 벌금을 안 바치면 집행할 테야!! 알았니?!
구리귀신 : 이-그! 네- 그저... 그저 이백 원이 아니라, 천 원이래도 드리지요......
해석: 충동의 대가
순사가 사흘 안에 벌금을 내라고 통보하자, 구리귀신은 겁과 허세가 섞인 말투로 “천 원이라도 내겠다”라고 받아칩니다. 당시 ‘이백 원’은 물가(쌀) 기준으로 오늘 돈 약 200만~400만 원, 임금 기준으로는 약 2천만~3천만 원에 해당하는 큰돈으로, 서민 월수입을 훌쩍 넘는 수준이었는데요. 한순간의 충동적인 행동이 한 달 반의 유치장 수감과 이백 원의 벌금이라는 결과로 되돌아왔네요.
(3) 종신징역인 줄 알던 구리귀신이 바깥세상에 나오게 되어
구리귀신 : 에이- 그놈의 생지옥에 있다 나오니까 곧(금방) 천사(천국에 온 기분)가 된 것 같다. 아마 내가 돈이 많으니까 내보냈겠지?
해석: 세상 밖으로 나온 구리귀신
유치장에서 풀려나자 얼굴에 햇빛이 먼저 닿습니다. “천사가 된 것 같다”는 말은 그 순간의 가벼움과 안도가 한꺼번에 터져 나온 감탄이겠지요. 큰소리로 허세를 부리던 입버릇은 잠시 접히고, 유치장의 어두움과 몸에 밴 가려움이 사라졌다는 사실만 또렷합니다. 그전에는 소중함을 몰랐던 평범한 일상이었겠지만 생지옥 같던 유치장을 겪은 후라, 하늘 아래에서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구리귀신에게는 천국 같았겠죠. 방화의 결과는 끝내 남는 건 밖으로 나온 발걸음, 그리고 이제부터 치러야 할 일상입니다.
(4) 집에 돌아갔으나 하녀(계집종)의 말을 듣고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녀 : 마님께서는 한 달 전에 쫄쫄이 영감님하고 원산 해수욕장에 가셨어요.
해석: 집에서 들은 아내의 소식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에 도착한 구리귀신. 하지만 그가 문 앞에서 제일 먼저 들은 건 하녀의 충격적인 한 마디였습니다. '아내가 한 달 전 내연남과 피서지에 갔다'는 말, 구리귀신이 어두운 유치장에서 힘겨운 시간을 보내는 동안, 아내는 따뜻한 햇살이 내려쬐는 피서지에서 내연남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결론은 간단합니다. 부부는 같은 여름을 다른 자리에서 보냈다는 것.
1925년, 한 부부는 서로 다른 여름을 보냈습니다. 남편은 방화의 대가로 유치장에서 한 달 반을 버텼고 벌금 이백 원을 치렀습니다. 아내는 남자 친구와 피서지로 떠나, 원산의 파도와 햇빛으로 여름을 채웠습니다. 참으로, 인생은 아이러니하지 않나요?
죄에는 값이 매겨졌지만 배신에는 값이 매겨지지 않았습니다. 책임은 한쪽의 몫이었고 처벌은 공평하지 않았습니다. 법은 불을 낸 손을 붙잡았지만 약속을 저버린 손을 붙잡지는 않다는 것을 보여준 회차였네요.
관계를 지키기로 했다면 경계를 분명히 하고 약속을 다시 쓰면 되고, 관계를 정리하기로 했다면 스스로의 존엄을 지키는 선택을 택하면 됩니다. 감정이 요동칠수록 충동적인 행동보다는 현실적 대응을 먼저 세워야 한다는 것, 꼭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나저나, 아무리 미워도 남편이 유치장에 갇혔는데 남자 친구와 해수욕장에 가다니... 정말 아내는 억척이 맞는 것 같습니다.
참고 자료
"1928년에도 인기가 많았네요" 대한민국 최초의 해수욕장 여름 피서지
식민 도시 경성 사람들은 어떻게 여가를 즐겼나…서울역사편찬원 연구
[조선일보에 비친 '신문화의 탄생'] [49] "京城수영장은 주1일 禁男이오"
손환. (2008). 일제강점기 원산송도원의 여가시설에 관한 연구. 한국체육학회지, 47(6), 1-9.
Choi, Byung Taek. (2024). 1910~20년대 원산해수욕회사의 설립과 운영. 역사교육, 172, 111-145. 10.18622/kher.2024.12.172.111
이희환, 『인천』, 21세기북스(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