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차는 부르릉 경찰차는 따르릉
지금 당장 불이 난 곳을 발견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
아마 대부분 핸드폰을 들고 119를 누를 겁니다. 지금은 보편화된 119 긴급 신고 전화 시스템은 1935년 10월 1일,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도입되었는데요. 그렇다면 핸드폰은커녕, 119 시스템도 없었던 1920년대에는 화재 발견 시 어떻게 신고했을까요?
당시에는 불길을 본 이웃이 가장 가까운 소방조나 경찰서로 뛰어가 알리거나 길에서 순찰 중인 인원을 붙잡아 신고하는 일이 흔했습니다. 그나마 전화가 있는 곳에서는 교환원에게 '화재'를 고지해 소방 쪽으로 연결을 부탁했죠.
경성소방서가 생기기 전, 그러니까 1925년 이전에는 '소방조'라는 곳이 있었습니다. 이곳은 개항 이후 한국에 들어온 일본인들에 의해 조직된 기관인데요. 화재진압과 함께 일본인의 안전을 담보하기 위한 경찰보조 역할을 담당했고 훗날 소방서 체계의 기반이 되었던 곳이었습니다.
그러던 가운데 1925년 4월 1일, 경성소방서가 개서하면서 드디어 우리나라에도 최초로 근대식 소방서가 만들어졌는데요. 1933년까지 소방조가 존속하다가 소방서에 흡수되는 과도기가 이어졌습니다.
경성소방서의 서장은 보통 경시 또는 경부가 맡는 등 경찰 고위직이 겸임하는 구조였는데요. 펌프반, 수관반, 파괴반, 사다리반 등으로 분화된 직제를 두어, 출동과 송수, 강제 진입, 고지 진입 등 기능을 분업화했습니다.
1920년대는 손펌프와 수레형 펌프와 마필 견인 장비가 여전히 쓰였던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도시화와 전력 보급, 유류 사용 증가로 화재가 잦아지면서 모터 펌프와 자동차형 소방차가 점차 도입되었는데요. 경성소방서 개서(1925)를 기점으로 상비 소방수가 차량과 펌프를 운용하는 체계가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1930년대에 이르면 자동차펌프를 앞세운 출동, 수관 전개, 사다리 진입, 파괴반의 강제 개방 같은 분업 장면이 사진 기록과 연혁 자료에 자주 등장하는데요. 이 시기부터 내연기관 기반의 출동이 본격화된 덕분입니다.
경성소방서는 화재 접수 즉시 청사 경보를 울려 인원을 소집하고 주변에 전파했습니다. 또, 경성소방서가 생기기 1년 전인 1924년에는 남대문 소방서 망루에 모터사이렌이 설치되면서 경보의 도달 거리와 즉시성이 크게 높아졌는데요. 모터사이렌은 1920년대 후반부터 본격 보급되며 야간에도 먼 거리까지 신호를 보낼 수 있었고, 도시에 등장한 새로운 소리로 자리 잡았습니다.
다만 1920년대에는 지역과 시설에 따라 경보 수단이 혼재했는데요. 전신 및 전화 교환 연결이 가능한 구역은 교환원 중계로 소방 측에 신속히 연결했고, 그렇지 않은 곳은 직접 신고와 청사 경보가 핵심이었습니다.
이때 뚜우 하고 정오 사이렌이 울었다. 사람들은 모두 네 활개를 펴고 닭처럼 푸드덕거리는 것 같고 온갖 유리와 강철과 대리석과 지폐와 잉크가 부글부글 끓고 수선을 떨고 하는 것 같은 찰나! 그야말로 현란을 극한 정오다.
나는 불현듯 겨드랑이가 가렵다. 아하, 그것은 내 인공의 날개가 돋았던 자국이다. 오늘은 없는 이 날개.
이상 <날개> 中
같은 시기 경찰은 소방과 한 지휘선에서 움직였습니다. 화재는 진압과 동시에 사법 및 치안 사안으로 다뤄졌고, 방화 혐의가 있으면 현장에서 즉시 조서와 연행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렇듯 같은 현장으로 출동한 소방관과 경찰관. 다른 점이 있다며 이동 수단이랄까요? 경찰은 관할 파출소와 순사주재소 중심으로 순찰망을 촘촘히 유지했는데요. 소방차가 보급되었던 소방서와 달리 경찰의 주 이동 수단은 도보와 자전거였습니다.
자동차가 극히 제한적으로 배치되던 1920년대에는 대다수 사건과 사고 대응이 자전거와 발로 뛰는 순찰에 의존했었죠. 이건 뇌피셜입니다만, 소방관의 수에 비해 경찰관의 수가 많았던 것도 그 이유 중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당시 화재 발생 시 어떻게 대처를 했을지 타임라인을 따라가보겠습니다. 먼저 빛과 연기를 본 이웃의 신고가 들어옵니다. 가까운 청사에서 경보가 울리면 상비 소방수가 펌프, 수관, 사다리, 파괴 장비를 나눠 싣고 출동하고요. 골목을 돌아드는 소방차의 엔진음이 들릴 즈음, 파출소에서는 자전거를 탄 순사가 벨을 울리며 도착했을 겁니다. 현장에서는 소방이 잔불을 정리하고 안전을 확인하는 동안, 순사는 목격자 진술과 착화 경위를 빠르게 정리했겠지요. 이 분업은 제도와 일상의 경계에서 정확하게 맞물리던 1920년대의 표준적인 풍경이었습니다.
지난 시간, 내연남 쫄쫄이를 발견한 구리귀신이 옷장에 불을 질렀던 것을 기억하시나요?
오늘은 앞서 설명한 1920년대 경성의 소방과 치안 시스템이 그대로 비친 장면이 등장하는데요. 어떤 장면일지 바로 보시겠습니다.
(1) 불과는 천생의 원수인 소방대가 구리귀신 집에(서 나오는) 불빛(연기)을 보고
소방대원1 : 저기 연기가 보이는군.
소방대원2 : 이거 아무래도 불난 곳은 보이지 않으니 의심(걱정)이야.
천생원수 : 천성적으로 맞지 않는 원수, 여기서는 ‘불의 상극’으로 소방대를 비유. 불과 천생연분의 원수(상극)인’의 관용적 표현
읜심 : 맥락상 의심으로 해석
해석: 소방대의 연기 포착과 출동
소방대가 소방차를 타고 야간 순찰 또는 신고를 받고 이동하던 중, 구리귀신 집 방향에서 치솟는 연기를 확인합니다. 연기는 뚜렷한데 화염은 보이지 않는 상황이어서, 내부 화재가 일시적으로 약해졌거나 숨은 불씨가 남아 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둡니다. "저기 연기가 보이는군”은 시야 확보를 알리는 짧은 경계 신호이고, “불난 곳은 보이지 않으니 의심(걱정)이야”는 연소 확대 위험과 재발화 가능성을 경계하자는 의미입니다. 즉시 접근은 하되, 무리한 진입보다 위치 확인과 주변 안전 통제를 먼저 하려는 판단입니다. '불과는 천생의 원수'라는 표현은 소방대의 직분을 풍자적으로 드러낸 말입니다. 불길과 생업처럼 맞붙어 사는 사람들이니, 연기 한 줄기도 놓치지 않는다는 뉘앙스를 더합니다.
(2) 자동차(소방차)로 달려갔으나 이미 불은 꺼졌고, 구리와 쫄쫄이는 서로 싸우고 있다
쫄쫄이 : 이놈, 산 사람을 화장을 산 사람에게 화장을 지내려고 그래!!
소방대원 : 우리가 오기 전에 불이 꺼졌군.
해석: 화재 현장에 도착한 소방대원들
소방대가 도착했지만, 불길은 이미 꺼진 상태입니다. 현장에는 연기와 탄내만 남아 있고, 사람들만 언성을 높이고 있습니다. 쫄쫄이의 “산 사람에게 화장을 지내려고 그래!”는 ‘산 채로 태울 뻔했다’는 과장 섞인 꾸짖음이자, 위험천만한 상황이었음을 강조하는 말투입니다. 소방대원의 “우리가 오기 전에 꺼졌군”은 즉시 잔불 확인과 재발화 방지로 전환하겠다는 신호입니다. 불이 꺼진 것을 확인했으니 이제 순사(경찰)가 등장할 차례겠죠?
(3) 쫄쫄이는 순사에게 '구리귀신이 불을 질렀다'고 일러바치며
쫄쫄이 : 불 지른 놈은 이놈이오!
순사 : 이 자가 불을 질렀어...... 그러면 별 수 있나.
순사: (당시) 경찰관
불을 노핫다/놧다 : 불을 놓다(지르다)
해석: 순사에게 방화자 지목을 하는 쫄쫄이
인쇄가 정확하지 않아 제대로 확인이 어려우나, 정황상 쫄쫄이는 순사에게 “불 지른 놈은 이놈이오!”라며 구리귀신을 일러바친 듯합니다. 감정적 고발이지만, 현장 진술로는 방화 혐의를 판단하는 출발점이 됩니다. 순사의 “그러면 별 수 있나”는 현행 절차에 따른 즉시 조치, 곧 신병 확보와 기초 조사로 넘어가겠다는 뜻입니다. 당시 소방과 경찰은 한 지휘선에서 움직였기에, 진압 직후 사법 절차가 바로 이어지는 장면이 자연스럽습니다.
(4) 순사는 구리귀신을 결박을 지어(포박해) 경찰서로 데려갔다
구리귀신 : 이거, 내 집에 내가 불을 놓았는데 잡아가요?
순사 : 잔말 말고 가-!
해석: 순사에게 연행되는 구리귀신
쫄쫄이가 “불 지른 놈은 이놈이오!” 하고 구리귀신을 가리키자, 순사는 현장에서 바로 구리귀신을 붙잡아 끈으로 묶고 끌고 갑니다. 구리귀신은 “내 집에 내가 불을 놓았는데 잡아가요?”라며 항변하지만, 순사는 “잔말 말고 가-!”라며 경찰서로 데려가겠다는 뜻을 분명히 합니다. 현장은 소방의 정리와 경찰의 조사로 갈라져 정돈되는 흐름입니다.
지난번에 제가 적었던 문장 기억하시나요? “상처를 남기는 방식으로 사랑하지 마세요.”
그 문장은 결국 한 가지를 가리킵니다. 행동에는 언제나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입니다.
불은 늘 두렵지만, 두려움만으로 도시는 지켜지지 않습니다. 짧은 해프닝처럼 보이는 구리귀신의 소동 속에, 소방차의 엔진음과 순사의 짧은 구령이 겹쳐 들립니다. 불은 잠시 꺼졌지만, 현장은 사람과 제도가 각자의 자리에서 움직이는 방식으로 정돈됩니다. 오늘 우리가 119를 누르는 몇 초 뒤에 들리는 소리와 다르지 않게, 그때도 도시에는 사람과 제도가 만든 질서가 있었습니다.
결국 기록이 들려주는 말은 단순합니다. 위험 앞에서 먼저 움직이는 건 기술이 아니라 사람이고, 사람을 지탱하는 건 제도입니다. 그리고 그 제도를 움직이게 하는 힘은 서로를 향한 책임감입니다. 행동에는 책임이 뒤따릅니다. 경찰에 연행되어 끌라는 구리귀신의 모습. 이번 회차의 마지막 컷은 그 오래된 문장을 다시 확인시켜 줍니다.
참고문헌, 기사
https://www.chosun.com/kid/kid_history/2005/09/30/XOPWAKUE4MXDIBPWJ2P5WYIIPY/
https://www.woori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50257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5032032
https://www.segye.com/newsView/20250220517927
https://www.yna.co.kr/view/AKR20110518187500004
https://contents.history.go.kr/mobile/nh/view.do?levelId=nh_048_0020_0010_0010_0010
김상욱 (2018). 일제강점기 소방기구의 변천과 역할. 한국행정사학지, 43, 185 - 212.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근대국어: 근대기 표기 혼란과 문자체계 병용 서술
국립국어원 특집, 표기법의 어제와 오늘: 근대 변화 대비 표기 정립 지연 개관
동아일보 80년사·어문팀 글: 1933년 통일안 시험 적용, 납활자·지면 제약에 따른 관행 설명
이창익, 『시간의 연대기: 잊힌 시간 형태의 기록』, 테오리아(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