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만화방] 구리귀신(6) 불륜의 결말

일제강점기에 남편 살해범이 많았던 이유

by 심야초

불륜을 하면 결국 두 가지 결말 중 하나를 마주하게 됩니다.


상처를 딛고 관계를 봉합하느냐,
아니면 큰 상처를 회복하지 못해 파국을 맞이하느냐.

그리고 안타깝지만,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고 극단적인 결과로 번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식민지 시기에는 이런 관계의 균열이 어떤 방식으로 ‘끝’을 맺었을까요?




1920년대 불륜 대처 방식


1) 가족개입형 "집안의 체면을 지켜라"

가장 일반적인 대처법은 친정과 시댁이 나서서 문제를 내부적으로 수습하는 것이었습니다. 상간자로 지목된 인물에게 '출입 금지'를 선언하거나, 당사자 중 한 명을 친정이나 시댁으로 보내 관계를 정리하는 방식이었죠.


2) 사적 제재형 "직접 나서서 해결하자"

남편이나 가족이 상간자를 직접 찾아가 구타하거나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는 사례도 빈번했습니다.


3) 정사(情死) "차라리 함께 죽자"
가장 극단적인 형태는 동반자살(정사)이었습니다. 실제로 192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신문기사를 살펴보면 1925년부터 1936년까지 10년 동안 정사(情死) 사건 기사가 집중적으로 나타났고, 1940년 이후 급격히 줄어들었습니다.


4) 법적 대응형 "법정에서 결판내자"
아무래도 지금 많은 이들이 선택하는 합리적인 불륜의 결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법적으로 깔끔하게 정리하는 것. 1912년 일제는 조선민사령*을 공포했는데, 흥미롭게도 가족 관련 사항에서는 '조선의 관습'을 따른다는 관습주의를 채택했습니다. 이에 따르면 여성의 이혼청구는 허용될 수 없었고, 칠출삼불거*의 원칙에 따라 이혼은 남성 위주로 이루어졌습니다.


조선민사령(朝鮮民事令) : 식민지 조선에서 발생하는 모든 민사문제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었던 법령

칠출(七出, 칠거지악(七去之惡)) : 아내를 내쫓는 이유가 되는 일곱 가지 사항으로 조선시대 유교사상에서 나온 제도

① 불순부모(不順父母) : 시부모를 잘 섬기지 못하는 것

② 무자(無子) : 아들을 낳지 못하는 것

③ 음란(淫) : 부정한 행위

④ 질투(妬)

⑤ 악질(有惡疾) : 나병·간질 등의 유전병

⑥ 다언(多言) : 말이 많은 것

⑦ 절도(竊盜) : 훔치는 것

삼불거(三不去) : 가계존속을 보장하고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혼인관계가 쉽게 깨어지는 것을 예방하는 제도적인 규범

① 시부모를 위해 삼년상을 치른 경우(經持舅姑之喪)

② 혼인 당시 가난하고 천한 지위에 있었으나 후에 부귀를 얻은 경우(娶時賤後貴)

③ 이혼한 뒤에 돌아갈 만한 친정이 없는 경우(有所娶無所歸)


그러던 중 1923년부터는 부부 쌍방에 대해 이혼 청구를 인정되며, 여성의 이혼 청구가 허용되었습니다. 이러한 법적 변화는 1920년대 중반 이후 이혼에 관한 논의가 활발해지는 계기가 되었고, 간통죄 고소나 위자료 청구 소송도 늘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축첩제*는 여전히 사회적으로 용인되었는데요. 일제는 관습을 존중한다며 축첩을 이혼사유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간통죄 역시 여성에게만 적용되었고, 남성에게는 실질적으로 문제를 삼지 않는 이중 잣대가 존재했습니다.


축첩제 : 한 남성이 정식 부인 외에 다른 여성을 첩으로 두는 것을 허용하는 제도


이런 맥락에서 '김정필 사건'은 당시 사회 분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남편을 독살한 절세미인 '김정필'

1924년 ‘김정필’이라는 여성이 남편을 살해한 사건이 신문에 크게 보도되며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동아일보》1925.10.23(좌), 《매일신보》1924.10.11(우)

김정필 사건을 세 줄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절세미인으로 불린 김정필이 다른 남성을 마음에 두어 결혼 한 달 만에 남편을 독살했다는 의혹

2. '독살미인'이라는 선정적 별명과 함께 재판에 2,000명 인파 몰림

3. 무기징역 선고 후 착실한 수감생활로 12년 만에 출옥


즉, 김정필이란 여인이 남편을 독살했다는 건데요. 진실 여부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김정필은 끝까지 무죄를 주장했고, 사건 정황상 진짜 무죄였을 가능성도 높았거든요.(물론 반전으로 진짜 독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사실'보다 '보도 방식'이었습니다. 언론은 미모와 범죄를 결합한 자극적인 프레임으로 사건을 소비했고, 대중은 '아름다운 여성의 위험한 사랑'이라는 서사에 열광했습니다.


김정필 뿐 아니라 당시 사건면에는 유사한 보도가 반복적으로 등장했습니다. 언론은 '미모', '독살', '정사' 같은 자극적 키워드를 앞세워 사건을 과장 보도했고요. 실제 발생 빈도보다 훨씬 크게 각인되면서 "조선의 여자들이 위험하다"는 편견을 강화했습니다.


1920년대 자유연애 시대에 접어들면서 억지 결혼으로 불행한 결혼생활을 보내던 사람들이 '나도 저렇게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면 얼마나 좋았을까?'하면서 많은 후회와 불만을 가졌던 것도 사실이었습니다만, 나혜석처럼 불륜 의혹에 휩싸인 여성은 "거의 재기할 수 없을 만큼, 때리고 욕하고 저주함을 받았다"고 고백할 정도로 힘든 상황에 처해졌고요. 이런 불평등한 구조에서 여성들의 분노와 절망이 축적되었습니다.


이런 극단적인 사건면 보도는 혼외 관계와 가정폭력, 질투·재산 갈등이 얽힌 범죄를 반복 노출하며 가정 내부의 긴장을 사회 문제로 가시화했다는 평가와 함께 때로 동반자살·파국 등 극단적 결말과 연결되어 ‘연애=위험/불온’이라는 보수 담론을 강화하는 소재로 소비되었다는 회고도 존재합니다.


그렇다면 구리귀신은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요?


1925년 7월 5일, 원문으로 만나는 구리귀신

구리귀신 (6) 부부생활《시대일보》1925.07.05

구리귀신(6) 부부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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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리귀신이 어찌나 화가 났는지 쫄쫄이가 들어있는

구리귀신 : 쫄쫄이 이놈을 의걸이(옷장)째 내다가......

아내 : ?


쫄쫄이 : 채신없이 까불기만 하고 소견이 몹시 좁은 사람. 또는 키가 작고 옹졸한 사람


해석: 분노가 극에 달한 구리귀신

앞서 모자와 목소리, 인기척으로 쌓인 의심이 이제 확신으로 바뀐 구리귀신의 극단적 행동을 예고하는 장면입니다. "의걸이째 내다가..."라는 말은 문장이 완결되지 않았지만, 옷장 안에 숨은 쫄쫄이를 강제로 끌어내겠다는 의도가 분명합니다. 아내의 "?"는 남편의 돌발적이고 위험한 행동에 대한 당황과 불안을 나타내며, 다음 컷에서 벌어질 장면을 예고하는 도입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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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의걸이(옷장)를 뜯어내어 놓고 석유를 뿌린 뒤에

구리귀신 : 이렇게 석유를 뿌린 다음에......

아내 : ??


의걸이 : 위는 옷을 걸 수 있고, 아래는 반닫이로 된 장


해석: 극단적인 선택을 선택한 구리귀신
구리귀신이 옷장을 마당으로 이동시키고 석유까지 뿌리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아내의 물음표가 하나에서 둘로 늘어난 것은 남편의 행동이 단순한 화풀이를 넘어 정말 위험한 수준으로 치달을 수 있음을 깨달으며 공포감이 커지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1920년대 당시 석유가 일반 가정의 필수품이었기에 이런 홧김의 위협이 현실적으로 가능했던 시대 배경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가정 내 폭력이 쉽게 극단적 수단(방화)으로 될 수 있었던 현실을 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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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의걸이째 불을 질러버렸을 때 억척(아내)은 까무라치고

구리귀신 : 이렇게 불을 붙이거든...하......

아내 : 아이, 뜨거(워)!


해석: 위협이 현실이 되는 순간
앞선 위협이 실제 행동으로 옮겨지면서 상황이 급변합니다. 구리귀신이 정말로 불을 지른 것이죠. 아내가 "뜨거워!"라고 외치는 것은 불길의 열기에 본능적으로 반응하는 모습으로, 상황의 위험성을 강조합니다. 위협에서 시작된 일이 이제 정말로 모든 사람을 위험에 빠뜨리는 상황으로 번진 결정적 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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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쫄쫄이는 의걸이를 부수고 나왔으니 불길은 점점 더 일어난다

쫄쫄이 : 이 구리귀신아. 사람을 산 채로 구워 죽이려고 하느냐?!!


해석: 생존 본능 앞에서 모습을 드러낸 쫄쫄이
더 이상 숨을 수 없게 된 쫄쫄이가 옷장을 부수고 나오면서 상황이 완전히 뒤바뀝니다. 지금까지 숨어있던 약자였던 쫄쫄이가 이제 구리귀신을 직접 호명하며 발로 차는 공격자로 변한 것이죠. "사람을 생으로 구어먹으라느냐"고 화를 내며, 방화라는 극단적 수단에 대한 공포와 분노를 드러냅니다. 불길이 점점 커지면서 이제 세 사람 모두가 위험에 처한 아이러니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구리귀신의 위협이 결국 자신도 위험에 빠뜨리고, 오히려 숨어있던 상간남에게 얻어맞는 우스꽝스러운 결말로 이어지는 코믹한 반전입니다.


아이러니한 결말 : 가해자가 피해자로

구리귀신의 계획은 완전히 뒤바뀝니다. 쫄쫄이를 굴복시키려던 방화는 오히려 자신과 아내를 위험에 빠뜨렸고, 숨어있던 상간남은 이제 당당히 나와서 구리귀신을 발로 차며 "사람을 죽이려 하느냐!"고 따집니다. 위협하려던 자가 오히려 위협받는 상황이 된 것이죠.


구리귀신의 방화 소동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명확합니다. 극단적 선택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모든 당사자를 더 큰 위험에 빠뜨린다는 것입니다. 2025년인 지금 불륜은 여전히 존재하고, 배신의 아픔도 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상처를 다루는 방식은 시대가 만듭니다. 구리귀신이 선택한 극단적인 방법 대신, 우리에게는 대화와 상담, 법적 보호와 치유의 시간이라는 더 나은 선택지들이 있습니다.


결국 구리귀신은 아무것도 얻지 못했습니다. 진실을 확인했지만 관계는 더 파괴되었고, 집은 불에 타고, 상간남에게는 얻어맞고, 아내는 까무라쳤습니다. 1920년대의 이 우스꽝스러운 소동이 현재의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겠습니까?

상처를 남기는 방식으로 사랑하지 말고, 상처받았을 때는 불을 지르는 대신 상처를 치유하는 지혜로운 길을 택하기를. 100년 전 구리귀신의 실패가 오늘날 우리의 성공이 되기를 바랍니다.


참고 문헌, 기사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4499

https://news.nate.com/view/20240928n01608

권희정. (2005). 식민지 시대 한국 가족의 변화. 비교문화연구, 11(2), 35-62.

김순옥. (2024). 신문 기사 분석으로 살펴본 근대의 情死-낭만적 사랑과 죽음에 대한 조선과 일본의 의식 차-. 동아시아문화연구, 96, 143-174.

김경일, 『근대의 가족, 근대의 결혼』, 푸른역사(2012)

소현숙, 『이혼법정에 선 식민지 조선 여성들』, 역사비평사(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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