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만화방] 구리귀신(5) 사.빠.죄.아

불륜은 시대불문, 부부만화에서 마주친 어른들의 고민

by 심야초

앞선 2~4화는 원문 자료를 확보하지 못해 아쉽게도 건너뛰고, ‘부부생활’ 5화 에피소드를 먼저 소개합니다.

이번 회차의 핵심은 ‘불륜’입니다.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

일명 사.빠.죄.아. 한때 큰 화제를 모았던 드라마 ‘부부의 세계’의 명대사죠.


저번 회차에서 언급했던 조선일보의 네컷만화 <멍텅구리>가 '연애 이야기'를 다루었다고 했던 것 기억하시나요? 1920년대는 조선 사회에 ‘연애’라는 개념이 본격적으로 퍼지던 시기였는데요. 그전까지의 혼인은 가문과 집안의 결합, 중매 중심의 사회적 계약에 가까웠지만, 이 무렵부터는 개인의 감정과 선택을 중시하는 ‘자유연애’ 담론이 신문·잡지·소설·신극을 통해 대중화됐습니다. 이런 시대적 변화가 있었기에 <멍텅구리>의 주인공인 모던보이 최멍텅이라는 캐릭터도 탄생할 수 있었던 거죠.


하지만 ‘불륜’에 대한 사회적 시선은 보수적 규범과 근대적 감정 사이에서 첨예하게 갈렸습니다.

가정과 혼인의 질서를 해치는 중대한 일로 비난받는 한편, 도시 문화와 자유연애 담론의 확산 속에서 개인의 외로움, 욕망, 자기합리화가 드러나는 서사가 은근히 늘어났고요. 또, 남성 중심의 관용과 여성에게 엄격한 정조 규범이 병존하여, 동일 행위라도 성별에 따라 비난과 사회적 타격의 강도가 달랐습니다.


당대 언론은 신여성의 연애와 남녀의 외도 문제를 ‘정조’와 ‘자유’의 대립 구도로 보도하며, 가정질서 수호 담론과 개인 행복·자유의 권리를 맞세우기도 했죠.


그런데, 우리 구리귀신에게도 그런 불륜의 시련이 찾아왔답니다.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라니 좀 의외긴 합니다만,

어떤 사건이 벌어졌을지 바로 보실까요?


1925년 7월 4일, 원문으로 만나는 구리귀신

구리귀신 (5) 부부생활《시대일보》1925.07.04

구리귀신(5) 부부생활


(1) 내가 죽으면 내 재산을 그 쫄쫄이가 갖는다는 바람에 뛰어들었을 때

아내 : 왜 이렇게 몰상식해요!(=왜 이리 (사람이) 덜 됐소!) 남(사람) 잠꼬대한 걸 가지고, 그런데 왜 벌써 들어왔어!

구리귀신 : 아니, 잠꼬대라더니 ‘쫄쫄이’ 음성이야?!


쫄쫄이 : 채신없이 까불기만 하고 소견이 몹시 좁은 사람. 또는 키가 작고 옹졸한 사람


해석 : 불륜을 눈치챈 구리귀신

“내가 죽으면 내 재산을 그 ‘쫄쫄이(옹졸하고 경멸하는 대상/상간남)’가 차지한다는 말을 듣고 홧김에 뛰어들었다”는 경위 진술과 함께, 부부 대화가 이어집니다. 아내는 “그건 잠꼬대였을 뿐인데 왜 벌써 들어왔느냐”고 따지고, 구리귀신은 “잠꼬대라면서 어째서 그 ‘쫄쫄이’의 목소리가 들리느냐”며 의심을 드러냅니다. 즉, 집 안에서 들린 목소리를 두고, 아내는 자신의 잠꼬대라며 변명하고, 남편은 ‘쫄쫄이’의 음성이라며 불륜의 단서를 짚는 장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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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억척(아내)은 모른 체했지만 쫄쫄이의 모자가 드러나자

구리귀신 : 이 억척스러운 마누라. 그래, 이 모자를 보고도 잠꼬대로 믿을까?!

아내 : 앗차...엥.


억척/억척보도: 성격이 억세고 깐깐한 사람을 낮잡아 부르는 표현(아내를 가리키는 호칭).


해석 : 모자로 드러난 불륜의 단서

아내가 모른 척 일관하자, 구리귀신은 집 안에서 발견된 ‘쫄쫄이의 모자’를 증거로 가리키며 “이걸 보고도 잠꼬대였다고 버틸 거냐”고 몰아붙입니다. 아내는 ‘앗차’(들킨 순간의 당혹)와 ‘엥’(변명도 못한 채 말문이 막힘)으로 반응합니다. 네컷만화 특유의 압축 방식으로, 사물 증거 한 조각(모자)이 말보다 강하게 불륜의 단서를 드러내는 장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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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구리귀신이 생전 처음으로 방망이로 아내를 때리려고 할 때에

구리귀신 : 응. 어서 쫄쫄이가 숨은 데를 말해. 이거 어디서 나는 소리야?

아내 : 에구머니나.

쫄쫄이 : (의걸이 속에서) 저런, 사람 죽이나보다.


의걸이 : 위는 옷을 걸 수 있고, 아래는 반닫이로 된 장


해석: 아내의 신변이 위태로워지자, 정체를 드러낸 쫄졸이

구리귀신이 방망이를 들고 격앙되어 ‘억척’(아내)에게 위협적으로 다가가자, 장롱 속 ‘쫄쫄이’가 아내가 다칠 상황을 우려하는 목소리를 냅니다. 즉, 아내가 죽을 뻔한 급박한 국면이 ‘쫄쫄이’에게 긴장감과 위기감을 준 것으로, 내막의 긴장(위협 → 개입/노출)을 포착하면서 쫄쫄이로 하여금 액션을 취할 수 밖에 없는 장치로 작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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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쫄쫄이가 발광하는 바람에 의걸이가 쓸어젓다

의걸이 속에 숨었던 ‘쫄쫄이’가 다급히 몸을 움직이다가 의걸이가 휘청이며 넘어져, 아내와 구리귀신을 덮치는 모습


해석 : 위기 속 파국을 맞이한 세 사람

숨었던 ‘쫄쫄이’가 아내의 신변이 위태로운 상황을 보고 다급히 몸을 내밀며 움직이는 순간, 의걸이가 쓰러져 두 사람(아내, 구리귀신)을 덮칩니다. 이 컷은 말보다 액션으로 상황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물리적 사고를 통해 폭발하는 클라이맥스입니다.

또한 폭력 직전의 긴장과 구조적 위험(은닉→개입→사고)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코믹하게 풀어내어, 불륜 서사를 도덕 설교 없이 상황의 아이러니로 마무리했습니다.


불륜은 시대불문, 방식은 시대상

구리귀신은 시대의 감수성을 잘 보여주는 만화입니다. 노골적인 폭로 대신 집 안에 있을 리 없는 남성의 모자 한 개, 낯선 목소리의 흔적, 장롱 속 인기척 같은 최소한의 표지로 독자의 해석을 불러내며, ‘단서’의 미학으로 균열을 암시하는데요. 결정적으로, 마지막 컷은 숨은 자의 정체가 끝내 드러나지 않고, 옷장이 쓰러지는 ‘사고’로 마무리됩니다.


결국 핵심은 단순한 것 같습니다.


불륜은 늘 존재해 왔다.
다만 그것을 말하고 보여주는 방식은 시대가 만든다.

불륜 자체는 시대를 가리지 않지만 그것을 말하고 보여주는 방식은 시대의 조건에 깊은 연관성이 있습니다. 과거에는 남자들에게 첩이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여졌잖아요. 그때는 불륜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죠. 지금도 시대극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장면이기도 하고요. 이렇듯 어떤 시대에는 그런 관계가 부끄러움 없이 받아들여지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결론은 같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에게 상처주는 행동은 하지 말자!

극단적인 이야기일수도 있겠지만 정말 극소수의 예외는 있을 수 있습니다. 지금도 폴리아모리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단, 대다수의 사람에게 불륜은 상처입니다. 1920년대에도 지금도 불륜은 상대방에게 크나큰 상처를 주는 행동입니다. 결혼은 이 사람과 평생을 함께하겠다는 사회적 약속이자 공표입니다. 불륜은 순간의 설렘을 핑계로 관계의 바닥을 갉아먹는 일이고요.


한 번의 일탈은 언제나 비밀을 필요로 하고, 비밀은 곧 거짓말을 낳습니다. 거짓말이 쌓이면 둘 사이에 믿음은 깨지고, 배신을 당한 사람은 이유를 찾다가 스스로를 의심하게 되고, 배신한 사람은 죄책감과 자기합리화 사이에서 자신을 자꾸 작게 만듭니다. 아이가 있다면 상처는 더 조용하고 더 오래 갑니다. 가족과 함께했던 소중하고 행복했던 추억들도 끔찍한 기억으로 변하고, “그때도 진심이었나?”라는 질문만 남습니다. 마음이 흔들릴 때 필요한 것은 스릴이 아니라 대화이고, 도피가 아니라 결단입니다.


끝내 지켜야 할 문장을 굳이 한 줄로 남긴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상처를 남기는 방식으로 사랑하지 마세요."


관계의 균열은 결국 누군가의 삶을 무너뜨립니다. 사랑을 말하는 방식이 어떻게 변하든, 책임과 배려만큼은 시대를 넘어 변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구리귀신> 다음 편은 드디어 쫄쫄이와 마주한 구리귀신의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 :)


참고 문헌, 기사

[민병두의 K-Sapience (28)] 한국인의 연애, 결혼이야기⑤1920년대 조선을 뒤흔든 논쟁

[문화] 1920년대초 다룬 `연애의 시대`

우리역사넷

권보드래, 『연애의 시대』, 현실문화연구(2003)

전봉관, 『경성 고민 상담소』, 민음사(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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