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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vergreen Apr 28. 2023

2023년 4월

아이와 경험을 나누기


아이가 부탁한 대로 '의심하지 않기' 훈련을 하고 있다. 거실 테이블에 있는 폰을 스윽 가져다 제 방으로 들고가 친구와 연락한다는 명분 하에 유투브 영상이나 인스타 영상을 보고 있지는 않는지 스으윽 가서 감시하던 행동을 다시는 하지 않기로 결심했었다.


훈련 1일차,

근질근질 허다잉.

분명 저놈이 방에 들어가서 사부작 거리는 소리가 나면 나를 속이고 영상을 보겠지마는 참는다.

"yy야~ 폰 연락만 하는 거 맞지?" 라고 턱끝까지, 아니 혀끝까지 올라 왔지만 참아본다.

아이는 어른의 대범함, 어른다움, 그리고 약속을 지켜내는 그 의지력에 존경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요 근래 마음이 무지 힘들고 정신이 없었던지 낮에 무엇에 홀린 듯 김밥재료를 사 왔다. 아이에게 잔소리를 하느니 입이나 닫고 김밥이나 싸자 싶어 시험대비로 몸은 천근만근인데 기계화된 로봇처럼 삶고 지지고 볶고 말면서 금새 김밥 열줄을 만들어 낸다.


오늘 오전 바로 밑 동생과 연락을 했다. 사춘기 딸아이와 있었던 일을 이야기 하는데 안그래도 비혼인 동생이

"아. 육아는 진짜 힘들다. 결혼도 힘든건데." 라고 하길래

이러면 더 결혼 생각이 없어지겠다 싶어 한껏 포장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내가 이 순간을 통해서 아이를 내 것이 아니라 온전히 한 인격체로 바라봐 줄 수 있는 기회가 된 것 같아.

이러면서 나도 진짜 어른이 되어 가는 것 같고.

좋은 엄마가 되려면 그만큼 노력해야겠지? 나는 그 과정이라고 생각해."


"하긴, 부모는 의도만 남기고 아이는 감정만 남는대.

언니가 이걸 기억해 주면 좋겠어. 아이와 대화를 할때 말야."


맞아.

모든 대화에 의도를 가지고 접근했었다.


유독 나를 많이 닮아 나의 결점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던 아이에게

나는 모든 대화에 잔뜩 교훈과 가르침을 주려고 했었다.


오죽하면 몇해 전 딸아이가

"엄마는 뭐가 대화가 맨날 그렇게 진지하냐." 라고 힌트를 주었었는데도 말이다.


내가 읽었던 모든 책의 내용을 아이에게 말로 전해주고 싶어 했었다.

나처럼 살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리고 아이가 겪을 모든 일들에서 잘 헤쳐나가길 바라는 오지랖에.


'아이는 감정만 남는다'라니,

음. 그랬겠다. 너는 내게 답답함만 남았겠다.


쫑알쫑알 있었던 이야기를 건네던 네게

나는 겉으로만 반응하고 공감했던 척을 했었고

그 모든 대화의 끝에는 앞으로 이렇게 하라는 이상만 잔뜩 설명하던 나의 모습에 어린 네가 참 답답했었겠다.




"엄마는 같이 놀아주지도 않고!"

"엄마는 항상 수업준비 하느라 바쁘잖아."

"엄마 게임 한판만 해 주면 안되?"

"안되. 엄마는 책 읽잖아."


엄부 자모도 아니고 역할을 나눌 게 따로 있지,

나는 항상 '놀아주는 건 아빠의 몫이야. 엄마는 안 해.' 라고 단정지어 이야기를 했었지만

나는 그게 편했다.

나 혼자 책을 읽고 공부방에 들어가서 미리 수업준비를 한다는 핑계로 일을 하는 게 편했다.


그건 나의 아빠가 살았던 방식이자 양육방식이기도 하다.

불현듯 그 모습이 나의 모습과 오버랩된다.



아빠는 항상 거실에 제삿상에 올리는 큰 광택이 나는 검은 상을 펼쳐 놓고는

수업 준비, 논문 준비, 심지어 교장 선생님 연설문 대필, 동네 향교 연설문 대필에 항상 바쁘셨었다.


자녀를 방임했다고 미워했던 아빠의 모습을

고스란히 내가 하고 있는 것이다.


'부정의 동일시': 너무 미워하면 닮아간다더니

제기랄. 뭐가 좋은 거라고 그걸 닮아가고 있었나.


거실에 펼쳐놓은 나의 제목부터 어려운 책들부터 치워 버렸다.



아이와 "순간"과 "경험"을 나누고 싶다.

모든 의도와 교훈을 주려는 엄마의 노릇이 아니라

아이가 나에게 다가 와 이야기를 건네는 순간에는

아이에만 집중하고 다가가려 한다.


김밥 꼬다리 툭툭 잘라 스무개 남짓을 이미 먼저 먹고 나니

부드러운 계단 지단 만큼이나

마음이 몽글몽글 누그러 진다.


아. 이렇게 또 살아 내는 구나.

소울 푸드를 잔뜩 몸에 채워 넣고 나니 평온해 진다.


폰시간을 다 채워 보고 나온 딸아이가 말을 건넨다.


"엄마, 김밥이야?"

"응 ! 김밥이야! 오늘밤엔 이걸 먹읍시다!!!"


아직은 대화가 두마디 남짓.

뭐 좋아 지겠지~ 앞으로 차차~



엉엉 울며 곳곳에 전화를 걸어 어찌해야 될지 모르겠다고

세상 다 무너진 듯 난리 부르스를 췄을 때에도

따스한 사람들은 모두 한결같이 이야기를 건넸다.


'지금 이 고비만 지혜롭게 잘 지나가면

엄마와 딸이 너무 좋은 관계를 이어나갈 거라고.

살면서 가장 든든한 관계가 되어 있을 거다'라는 말이

조금은 가까워 진 것 같다.


접시에 투박하게 김밥을 얼겅설겅 올려 내놓았다.

한동안 힘들었을 모든 가족들이

김밥을 보자 함박웃음을 지어댄다.



"여보, 오늘은 김밥이 유독 더 맛있노!"

"엄마, 오늘 더 맛있다!"


미리 꼬다리로 배를 채운 나는 긴장이 풀려서인지

남편에게 맡기고 7시 30분에 기절해

새벽 5시에 상쾌하게 기상했다.



오늘은 더 아이와 "경험"과 "감정"을 공유 하기.

일본 영화 제목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처럼

나도 그렇게 엄마가 되나보다.


아이가 마음을 터 놓을 수 있는

내겐 없는 그 '진짜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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