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앞에서 울다
"엄마가, 엄마도 진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
나는 너를 사랑해. 근데 니가 하는 그 말들이 내게 너무 상처가 되서
나도 이걸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어.
엄마도 너한테 사랑을 받고 싶다고 했잖아.
내가 너한테 바라는건 없어. 내가 뭘 사달래? 공부를 하래?
그저 대화 잘 나누고 우리 서로 사랑하자고. 엄마는 도저히 모르겠다고..."
공부방 책상 의자에 마주보고 앉아
아이를 앞에 두고 엉엉 울어 버렸다.
몇번이고 울음이 터져 나오느라 말이 어떻게 이어졌는지도 모르겠다.
아이는 엄마가 자기 앞에서 우는 이 상황이 우스웠던 것일까 어색했던 것일까
같이 운다. 울다가 본인이 키득대고 웃다가 다시 운다.
"이야기를 해 봐. 엄마 아빠가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
마음에 문을 닫고 있지 말고 이야기를 해 봐.
대체 뭐가 이렇게 너를 힘들게 하는 지 이야기를 해 봐!"
남의 아이들 상담은 그렇게도 이성적으로 잘 이끌어 가던 내가
내 아이 앞에서는 와르르 무너져 버렸다.
첫 사랑과 헤어질 적에
'대체 나를 왜 떠나려는 거냐고' 절규하던 마음과 비슷 하다고나 할까.
어느 목사님의 말처럼
나는 또다시 사랑하는 상대에게 '질척거리고' 있었다.
한참을 허공을 초점없이 맹하니 보던 딸아이가 입을 연다.
"폰 시간. 다른 애들은 다 무제한인데 나만 한시간 반이야. "
눈물이 쏙 들어간다. 겨우 우리 사이를 갈라 놓은 게 친구들과 공유한 폰 시간 때문이었다는 걸까.
빌게이츠, 스티브 잡스, 삼성, 아이폰, 밉다.
할 말이 없어서 멍 하니 잠자코 있는데
말문이 터졌는지 줄줄줄 말을 이어간다.
"엄마 아빠는 나를 못 믿잖아.
내가 폰시간 볼때도 와서 감시하잖아.
공부도 다 했는데 엄마는 묻잖아. 다 했냐고.."
고맙다. 저렇게 말을 해 주니 미치도록 고맙다.
오늘 오전 한시간 반동안 친구와 통화 했던 내용을 끄집어 낸다.
그 스킬을 오늘 발휘해야만 한다.
"yy야.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사실 널 감시 했었어. 폰 영상 이상한 걸 보지는 않을까 방에 몰래 들어가 뒤켠에서 감시했었어.
미안해.
니가 단어 외웠다 해놓고 안외운 줄 알고 물어봤었어.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그리고. 아빠도 자꾸만 나를 못 믿고 수학 다 했냐고 묻잖아."
"그래. 아빠를 불러서 이야기를 하자. 여보!!!"
방금 직전까지 아이의 톡톡쏘는 말과 행동에 화가 잔뜩 나서 효자손을 손에 들었다 내려놓았던
아직도 분이 사그라지지 않은 남편이 들어온다.
밖에서 나의 울부짖는 소리를 들었으리라,
말을 아낀다.
"왜!"
"여보. 아이가 말을 해 줬어. 당신과 내가 말로 자꾸만 못믿는 듯한 투로 이야기 하는 게
얘는 듣기 불편하대."
"야! 니가 내가 믿게 했어? 믿도록 행동 했어?"
이씨. 여태 물꼬를 터 놨는데 저 인간이,
"여보. 우리 이 상황이 처음이잖아. 사춘기 오면 한번은 이렇게 될 거라고 생각했잖아.
우리 좋게 풀어나가자."
나는 눈물을 훔치고
아이의 눈도 벌겋게 달아오르고 눈물을 훔친다.
"엄마가 노력할게. 엄마가 너를 의심하지 않을게. 감시하지 않을게.
니가 숨막혀했던 그 모든 행동들, 엄마가 하지 않을게. 미안해.
yy야. 그런데 살아가다 보면 그 사람하고 맘에 안드는 일이 생기잖아?
그럴때마다 마음 닫고 문을 닫아 버리면 내 주변에 사람이 아무도 없어져.
우리, 좋게 풀어 나가자.
니가 풀어 나가는 방법을 몰라서 그런 거라고 생각해.
엄마가 이렇게 노력할 테니 너도 엄마에게 말을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
눈빛이 온화해 진다.
몇 달 전 생글생글 웃으며 이야기 하던 나의 사랑스러운 딸로 돌아온 것 같다.
"엄마는, 아빠는 너를 사랑해....."
또 울었다.
"너를 사랑해. 너를 제일 사랑해. 그런데 너의 그 행동을 이야기 하는 거야.
그 행동만 고쳐주면 우리 가족 모두 선한 길로, 좋은 길로 풀어나갈 수 있을 것 같아.."
잠자코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남편이 입을 연다.
"우리 같이 노력하자. 엄마는 니 눈치를 본대. 그건 아니다.
아빠도 절대로 너에게 의심하는 듯한 말 하지 않을 게. 그리고 목소리를 절대 크게 하지 않을게.
아빠가 약속할게."
아마도 문 밖에서 이 모든 상황을 듣고 있었던지
둘째가 빼꼼히 문을 열고 들어온다.
지옥같던 시간들이 마무리 되고
평화로운 시간이 다시금 도래한 것 같다.
아이는 그건 모를거다.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는 방법은 나도 이제사 처음으로 익힌 거라는 걸.
모아니면 도의 프레임으로 보기 싫은 사람은 안 보고 살았던 나의 지난 날,
부모와의 관계, 자매들과의 관계,
친구들과의 관계 이 모든 관계속 문제들을 해결해 나갈 방법을 몰라
그냥 버려두었다는 것을.
너를 키우면서 이렇게 나도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방법을
함께 배우는 엄마라는 걸,
오늘 밤 아이는 부디 편안히 잠에 취하면 좋겠다.
그래도 마음속 조금은
"우리 엄마, 그래도 좋다" 라는 생각을 안고 자면 좋겠다.
여태 읽어댔던 책을 바라보며 이상만 잔뜩 높아져 있고
현실 세계에서 온전히 둥글둥글하게 살아내지 못했던 나의 이 괴리를
아이를 키우며 그 간극을 채워 나간다.
오늘 밤은 나도 편히 잘 수 있을 것 같다.
과호흡 약을 몇번이고 꺼내 먹으려 했었던
한 바탕의 소동들이
일단락 된 것 같아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