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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vergreen May 08. 2023

2023년 5월 어린이날

대장정의 막


23년 5월 4일,

다짜고짜 줄넘기학원을 다녀온 딸아이가 짜증을 낸다.

왜 카페를 가지 않느냐,

자기방에 책상을 들여놔 달라,

되도안한 트집을 잡고 방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몇번 어르고 달래다

지친 나는 입을 닫고 과외준비를 이어갔고

요며칠 이 반복되는 상황을 지켜보던 남편이

딸아이 방으로 들어갔다.


조근조근 이야기가 이어가는 듯 싶더니

이내 언성이 높아진다.


"야,이자식이 진짜 말다했어?어?"


하...또 시작이다..

둘째아이는 반복되는 이 상황이 두렵고 무서운지 머리칼을 뽑는 듯한 행동을 시작한다.


나도 다시 호흡이 가빠지고 두려워진다.


"아빠가 지금 하는 행동과 말이

가정폭력이야!!!!"

"가정폭력? 이쟈식이 진짜,효자손 가져와!!!!"


여보, 제발,

제발..,



거실로 나온 딸아이는 여전히 아빠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저세상 억지와 짜증을 부리고

그 행동에 화가 난 남편은 결국 매를 들었다...



미쳐버리겠다..

대체 저 조그만 아이의 마음 속에

뭐가 그리 불만이 많은걸까..



울음조차 꾹 삼키고

오기로 버티던 딸아이를 두고

방에서 화를 삭이던 남편이 다시 나왔다.


방에 문을 닫고 들어가

이번엔 남편이 애원하듯, 절규하듯 뱉어낸다.


"yy야. 아빠는 네가 무엇이 마음속에서

널 괴롭게하는지 이야기라도 해주면 좋겠어.

숨기지말고 털어놔봐.

왜 엄마아빠한테 이야기도 안해주고

서로 오해하게끔 상처를주고 그러는지

아빠가 진짜 너무 힘들다.."



적막이 흐르더니

아이가 또 입을 연다.


기질이 소심하고 보드라운 딸아이는

나만큼 타인의 눈치를 보고사나보다.

학교에서 친구들이 자기를 깔보는 듯한 말들에,

발표수업에서 자기가 제일 못 한것같다는 생각에,

배구도 자기가 3점이나 실점해서

친구들의 원성을 들었다는 이야기,

자기만 영어를 못한다는  것,


저멀리 거슬러올라가

7살 유치원때 친구에게 상처받았다는 이야기....



아이가 소리내 운다.

남편도 운다..


"미치겠다. 학교에서 니가 이렇게 스트레스받고

힘들어하고 남들 눈치보는지 아빠는 몰랐다.


밖에서 그렇게 힘들었는데

집에서 니 숨도 못쉬게 숙제 검사하고

친구들하고 노는것조차 시간제한두고..

아빠가 미칠것같다..

다 내가 미안하다....."



처음이다.

아이가 저렇게까지 소리내 엉엉 우는 건

처음 본다.



다 내 잘못인것 같다.

아이가 보드랍고 내성적이면

더 친구들만나서 경험하게 둘걸,


상처받는게 두렵고 안쓰러워

매일 노는 친구,아는 친구들과만 놀길바랬고

그렇게 유도했던  내탓인걸까.


생모를 닮아

내가 우울기질이 있듯이

나때문에 저 귀한 아이가

밖에서 주눅들고 더 우울하게 지내는것은 아닐까,



나는 엄마가 되지 말았어야했는데

왜 내가 아이를 낳아서

아이에게 저렇게 피해를 끼치는걸까

겨우 쌓아올린 나의 자존감이

다시 밑바닥으로, 지옥불을 거니는듯

가라앉는다...



속을 다 내 비춘 딸과 남편이

실컷 울고난 후 카타르시스를 느낀듯

후련해져 나온다.



"yy야. 엄마가..미안해.

이제 학교마치고 집에오지말고

무조건 친구들하고 놀다와.

이런애도 만나보고 저런애도 만나보고

많은 아이들하고 마라탕먹고 인생네컷도 찍어와.

엄마가 이전과는 다르게 행동할게.

미안하다.."

그날도 또 나는 아이에게 사과를 했다....



23년 5월 5일 어린이날.

온가족이

미리 예매해둔 영화를 보러갔다.

가디언즈 영화 오프닝에

낯익은 반주가 흘러나온다.


"creep"

멍하니 노래를 듣는다.


아이는

사랑받지 못했던 나의 어린시절 결핍에서부터 시작된

넘치는 관심과 사랑에

질식할것처럼 보인다.


사실 내 사랑은 집착에 가까웠고

강박에 가까웠고

내 바운더리  안에

가둬놓고 내가주는 사랑만 받아먹길 바란

미저리같은 사랑이었음을 인정한다.


아이에게 필요한 건 뭘까.



영화를 멍하니 이어 본다.

영화의 메시지는 우정,

나는 그들의 우정에 눈길이 멈췄고

내 모성의 방향을 결정했다.



딸아이에게 친구가 되어주자.

경험을 공유하고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아이가  힘들어하는 인간관계인

친구가 되어주자...


조그만 딸아이가 영화관 옆자리에서 앉아

쫑알쫑알 이야기를 건넨다.


그냥

여태 내가 해 왔던 방식이

잘못된건가 싶은 생각에

슬프고 무력감이 느껴지고

속이 상하고 힘이 빠져서

어두운 극장에서 몇번이고 조용히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좋은 엄마되기 진짜,더럽게 힘드네ㅠ



그날 밤

엄마도  좀 놀아달라며 성화인 딸의 말에

그래. 친구가되고 경험을 공유하자싶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는 도중,

술래의 등을 찍고

돌아서 달리는데

순간 발목뒤꿈치켠에서 고무줄이 팅하고 튕기는 느낌이나고

고꾸라져버렸다.



망할.

놀아본 놈이 놀줄도 안다더니

나는 결국 인대파열이라는 진단이 나왔고

반깁스 3주라는 명예를 얻었다.


절뚝거리며 주차장을 걷는데

저멀리 빼쪽대며 먼저 걸어가던 딸아이가

다시돌아온다.



"내어깨 잡아봐.

아니,맨날 안 놀아주더니

왜 어제는 놀아줘서는."


"이제 엄마가 달라질거라고 했잖아.."


"엄마 나때문에 다친거잖아.."


"아냐~내가 운동부족이라그런걸,

그냥, 사고가 일어날라고 그런거려니 해.

니탓 절대아니다."



아, 내가 말했지만 멋지다.

말에 취한다ㅋㅋ



성경에 누구였지, 기억도 안나네

하나님의 사자와 씨름하느라 환도뼈가 나갔다는

누군가가 떠오르면서


나도 딸아이의 사춘기와 씨름하느라

인대파열이라는 부상을 입은것이

일종의  상급인것만 같아

이상하게 기분이  좋다.



내일 남편은

1년전  발목 골절수술에 박아놓은 핀을 제거하려

입원을 했고

나는 그의 곁에서 반깁스를 하고

절뚝거리며 병원을 거닐고 있다.


보호자가 절뚝거리고

아직 수술전인 환자복을 입은 환자가

되려 나를 부축하고

내가 침대에 누워 코를 골며 낮잠을 잔다.



두 아이들은 할머니댁에 맡겨두고

온전히 둘이서 티비를 보다 과자를 먹다

딸아이에게서 전화가 온다.


아직은 긴장태세로 전화를 받는데

한결 온화해진  딸아이의 목소리를 듣고서


"여보, 이제 사춘기 고비 넘긴것같지?"

하고 찡긋 웃어본다.


이제 부디

사춘기라는 대 장정의 막이 내리기를,


그리고 진짜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준

저 밤톨만한 아이가 있는

할머니집 아파트를 바라보며

병원 공용휴게실에서

남편과 또 씨익 웃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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