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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송이 Aug 22. 2024

광복절에 그냥저냥 일상이야기

서순라길 처음 가보는데, 좋긴 좋네요. 날씨가

기록하기가 점점 귀찮아지고 늘어지는 요즘이다.

평일/주말 주 7일을 일하면서 스스로를 6개월째 혹사시키는 요즘이기도 하다.


무더위가 온 몸을 감싸는 여름날 끝자락, 오랜만에 평일 휴일이었다.

8월 15일. 1945년에는 일제로부터 해방되는 날이면서 2024년에는 내 일상으로부터의 해방 날이었다.


2024년 8월 15일의 하늘은 무척이나 맑았다


습하고 우중충한 요즘같은 날씨에 광복절은 맑았다. 특히나 구름이 이쁘고 하늘이 맑았다.

만날 누군가가 있고, 가보고 싶었던 곳을 가보게 되는 일은 설레는 것 같다.

서순라길로 목적지를 정하고, 나갈 채비를 했다.


요즘 내 플레이리스트를 독점하는 곡이 있다.

호미들 'SKYBLUE'를 한곡 반복으로 틀고 종로3가로 향하는 내내 멜로디에 취했다.

평소 음악은 리듬만 듣는 나인데, 이 곡은 가사까지 찾아봐서 따라 불렀다.


[호미들 - SKYBLUE]

https://www.youtube.com/watch?v=5i84NwnTCcI


예전에 많은 사람들한테 "너는 감정표현이 다양해서 신기해"라는 말을 들었다.

이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르는 스무살 초반에는 그냥 좋았고, 싫었고, 재밌었고 지루했던 게 다였는데,

요새는 그런 과거의 무지개같이 다양했던 내 모습이 그리워지더라.


어떻게 웃었고, 어떻게 울었고가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20대 후반이 된 거다.

호미들 'SKYBLUE' 가사에 나오는 현실적인 이야기들이 너무나도 살로 와닿는 그런 나이가 된 거다.



아직 멀었어 돌아가기에는 이미 늦었어
나는 또 취한채로 털썩
이미 너무나 불어나 버린 걱정 못 참겠어
이 정적 친절을 베풀었더니 여기저기 의심이 쌓여
믿을사람이 더 생길 수 있을까 과연?
어느정도는 해야할 것만 같아 타협
세상에 진실은 없지만 난 안써 가면

- 호미들 SKYBLUE -



말로만 듣던 그 서순라길의 풍경은 눈을 즐겁게 하더라.


서순라길에서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 기다리면서 고양이를 봤다.

치즈색 고양이보다 역시 우리 쿠로가 더 귀엽다고 생각했다.

사람 가득가득한 서순라길은 반가움을 주지만, 사람이 적은 곳으로의 도피가 필요한 나다.

그래서 우연히 가게 된 곳이 '종묘'였다.



종묘산책은 선릉역의 선정릉을 산책할 때의 느낌을 줬다.

초록 잔디와 파랑 하늘의 경계선에 낡은 건축물이 있어 사색하기 좋은 그런 느낌.

평온함과 순수함을 갖게 하는 그런 공간에서 나는 한없이 작은 인간이 되었다.


출입구에서 가까운 공민왕 신당을 둘러보고 산책로를 따라 중앙으로 향하는 흙길을 밝았다.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냈다는 이 곳.

옛 조선왕들은 죽어서도 이렇게 평온한 곳에 있다니, 부럽다.


종묘 내부는 공사중이더라.


저녁 6시가 되어도 어둑해지지도 않는 서순라길.

종묘에서 나와, 서순라길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다가 옆에 익선동으로도 나아갔다.

평소에는 한달만 쉬었음했는데, 하루의 여유도 이렇게 꽉꽉 채우질 못하구나.


길거리에는 그동안 카페에 머물고 있던 사람들이 밖으로 나왔는지 북적였고,

저녁을 먹으려는 사람들로 웨이팅 없는 곳이 없었다.

배는 고프지만, 딱히 무얼 먹어야하는지도 모르겠고, 그냥 걸었다.


서순라길 무튼 저녁에도 무척 이뻐요


웨이팅 없고 여러 홍보물이 없는 낡디 낡은 문을 열고 들어갔다.

해물 칼국수로 유명한 듯한 노포집에서 해물 칼국수와 고기만두를 먹었다.

조개부터 껍질까서 먹어버리고 칼국수 국물을 들이켰다.

국물이 진한 것이 손맛 좋은 할머님이 끓인 것이다.

만두도 직접 빚어낸 것이었는데, 어릴때 가족들이랑 추석마다 만든 날이 떠올랐다.



저녁을 먹고나와 7시가 되어도, 여름의 밤은 찾아오지 않았다.

해가 길어지는 여름은 뭔가 내 하루가 길어진 만큼, 시간이 안 가는 듯한 느낌을 준다.

시간이 멈춘 하루는 생각이 많아지게 만든다.


생각을 안하는 하루들로 채우는 날들을 보내는 나에게 이 하루의 순간이 고민의 연속으로 만들었다.

푸른 하늘이 붉게 변해가는 즈음, 붉은기 하늘이 검게 짙어지는 시간이 점점 소중해졌다.

백화점, pc방, 찜질방 등등에 시계가 없는 이유가 좀 더 그 곳에 머물게 하는 전략이라면, 이 전략을 고이 물려받은 누군가가 이 날의 하늘을 꽁꽁 숨겨놓았으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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