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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터기샘 Dec 27. 2023

[연재] 4화 룰이 필요해

내가 먼저, 내가 앞에. 내가! 내가! 내가!


행복이는 줄을 설 때도, 뭘 가지러 나올 때도, 맨 앞에 서야 했다. 그 마음이 너무 강해서 선착순일 땐 언제나 질서 없이 나왔고, 앞에 누가 있든 다 제치고 서둘러 나왔다. 그러면 친구와 부딪히기도 하고 충돌하는 일이 생기는데 그럴 때면 화를 내고 남 탓을 하기 일쑤였다.

'누구 때문에', '얘가 일부러' 이 말이 행복이의 단골멘트였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믿는 듯했다. 또, 번호대로 줄을 서는 것을 못마땅해했다. 맨 앞에 서고 싶은 행복이 번호는 끝에서 두 번째이기 때문이었다. 번호대로 줄을 설 때면 불만을 제기했다.

"아니 왜 맨날 번호대로 서요?"


시간 규율도 지켜지지 않았다. 30분까지 해야 하는 등교는 50분이나 되어야 겨우 도착했고, 급식 먹을 때도 시간 안에 밥을 다 먹지 못하고 늦기 일쑤였다. 5교시 종이 치고도 한참 뒤에야 교실에 들어왔고, 수업시간 중에 자리에 없는 걸 발견하고 찾으러 가기도 했다 그때면 태연하게 급식을 먹고 있는 행복이를 만날 수 있었다. 규칙과 룰이 없는 내 마음대로 세상이었다.

3학년때까지의 행복이는 그렇게 유아독존이었던 것 같다. 그때는 "아직 어려서"라는 말이 통했을지도 모른다. 조금 크면 달라질 것을 기대하는 마음도 작용했을 것이다. 급식실 여사님들 사이에서도 이미 유명인사였다. 우리 반이 밥 먹으러 급식실에 와서 줄을 서면 여사님들의 눈짓이 보이고 목소리가 들렸다. "왔다. 왔다." 아무도 그 아이를 말릴 수 없었을 것이다. 화내는 예민한 아이가 되고 보면, 사실상 편한 것도 많았을 것이다. 알아서 비켜주고, 피해 주고, 먼저 하게 해 주고, 들어주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를 위해 하는 양보가 다 당연해졌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불평불만으로 가득했다. "아니, 왜 이렇게 해요?"


아이들에게 "아직 행복이가 미덕을 깨우지 못해서 그러니까 행복이가 미덕을 깨울 수 있도록 우리가 행복이 미덕을 찾아주자"라고 했다. 아이들은 다행히 잘 따라주었고, 행복이의 행동에 크게 개의치 않는 모습을 보였다. 그래. 언제까지 이럴 수는 없다. 이 아이도 룰을 익히고 따라야 한다. 룰에 예외의 규칙이 자꾸 적용되면 안 된다. 그것은 공동체에 혼란을 준다. 행복이와 아이들 모두의 행복이 지켜져야 한다.


"나만 차별해." "왜 나한테만" 이것 역시 행복이의 단골멘트였다. '자기 마음대로 세상'에서 '나만의 룰' 속에서 살면서도 행복이가 살고 있는 세상은 불공평하고 불공정하고 의심스럽고 불리한 것들 투성이인 듯했다. 공평하기 위해 나는 맨 먼저 서야 하고 무엇이든 내가 맨 앞에서 받아야 하고, 무엇이든 나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공평하니까. 행복이의 사회성은 다소 심각한 수준이었다.


행복이에게 하나하나 알려주었다. 질서 없이 앞에 서면 맨뒤로 가야 한다는 것을. 순서는 내가 항상 먼저가 아니라 돌아가면서라는 것을, 룰을 따르지 않으면 제외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리고 나에게 하는 양보가 당연한 것이 아니라 고마운 일이라는 것을. 그리고 내가 끼친 피해는 사과해야 한다는 것을.


학교는 편안한 곳이 아니다 불편한 곳이다. 학교가 집처럼 편안할 순 없다. 나를 넘어 '우리'를 배우는 곳, 공동체를 배우는 곳이 학교다. 반복해서 거듭 알려주어도 변하지 않는 것 같은 그 아이의 모습이 나를 지치게 하고 고민하게 했지만 그럼에도 언제나 내가 취한 방법은 긍휼과 사랑이었다. 단호하지만 진심을 다한 사랑.  속과 겉이 일치된 사랑만이 힘이 있다. 사랑에너지 일치. 일치되지 않을 때면 삐걱거렸다. 아이들만 행복한 방법이어서는 안 된다. 나도 행복해지는 방법이어야 한다.


그래도 조금씩 행복이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에서 아이들과 함께 섞이는 방법을 알아갔다. 아주 조금씩이지만 분명히 성장하고 있었다. 나만의 법과 룰에서 나와 이제 공동의 룰을 알아가며 그것이 나의 룰보다 더 좋은 것임을 배워갈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나를 지원해 줄 든든한 지원군이 필요하다. 그것이 행복이 어머니가 되면 더할 나위 없겠다. 행복이 어머니는 어떤 분이실까. 행복이 어머니를 만나야겠다.  우린 꼭 한 팀이 되어야 한다. 절대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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