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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보일 Dec 10. 2023

효자손: 효녀를 둔 엄마의 인생한컷

파스, 혈압계, 그리고 돋보기까지

  날 구속하는 엄마가 싫어서 가출했다. 엄마는 그런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내 짐을 모조리 내쳤다. 2주를 연락하지 않다가 엄마는 내게 칼국수를 먹자며 전화했다. 아무 말 없이 훌쩍이며 칼국수를 먹는 엄마 곁에서 나는 여전히 고집쟁이였다.


  오랜만에 돌아온 집에는 버린다던 내 짐이 모두 깨끗이 정리되어 있었다. 가슴이 저릿저릿했지만 이때 울면 그동안 부린 고집이 쓸모없어질 것 같은 생각에 끝끝내 울음을

참았다. 나는 코가 비뚤어지게 술도 마시고 싶고, 무작정 떠나는 여행도 가고 싶고, 남자도 맘껏 사귀고 싶었으니 말이다.


  엄마를 따르지 않아야 자유로워질 거라는 생각에 사로잡혀서인지 집에 있는 내내 불편했다. 공황장애 증상이 나타날 정도로 말이다. 그럼에도 나는 왜 집을 떠나지 않고 엄마의 잠자리로 파고들었는지 모르겠다.


  엄마는 없지만 엄마 향은 가득했다. 잠이 올락 말락한 그 순간, 내가 없는 동안의 엄마 삶을 요약한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효자손, 내 딸은 세상 둘도 없는 효녀라고 자랑하지만 등 긁어줄 딸은 없어서 곁에 두셨을 것이다. 파스, 온몸이 부서지도록 일해도 당신 병원 가실 돈은 아까우셨을 것이다. 혈압계, 머리가 아플 때마다 혼자 쓰러질까 걱정하셨을 것이다. 돋보기, 그럼에도 바쁜 딸에게 전화는 방해될까 떠듬떠듬 문자를 보낼 때를 위해 두셨을 것이다.


   효녀인 나는 눈물이 조르륵 흘렀다. 여전히 엄마 말이 모두 옳다고 인정하는 건 아니지만. 여전히 나는 자식으로서, 엄마는 부모로서 고집이 세지만. 엄마의 인생한컷은 나를 때린다.


  잘 살아야겠다. 술도 적당히 마시고, 여행 가기 전에 의논도 하고, 괜찮은 남자와 사귀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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