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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보일 Dec 17. 2023

물병: 저의 헐떡임을 응원해 주시다니

버스를 세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세상의 열 중 아홉은 제 편이 아닙니다. 부모가 아니고서야 이유 없이 제 편이 될 리가 없겠죠. 버스도 그렇습니다. 아무리 헐레벌떡 뛰어도 버스는 약속된 시간에 맞춰 떠나버립니다.


  겨우 버스를 잡아 탔을 때 다른 승객들의 출발을 지연시킨 것과 헐떡이는 스스로를 보자면, 하루의 시작부터 한심스러운 제가 참 싫어 작아집니다. 제 숨이 얼마나 차든, 제가 얼마나 뛰었든, 다음 버스를 얼마나 기다리게 되든, 이건 누구에게도 상관할 바가 아닙니다.


  그래도 종종 버스를 세워주시는 기사님들이 계십니다. 그럴 때면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감사하단 말을 하고, 얼른 눈에 띄지 않는 자리를 찾습니다.


  하필 오늘은 기사님이 한눈에 보이는 자리뿐이었습니다. 초록불에 갈 수 있었을 텐데. 빨간불에 세워진 버스 안에서 그래서 더욱이 저를 다그쳤습니다. 버스를 세우는 일이 얼마나 이기적인 일이냐며 최대한 조용히 숨을 고르고, 요동치는 심장에게 조용하라 야단쳤습니다.


  기사님께서 주섬주섬 운전석 아래를 뒤지시더니 제게 물을 건네주셨습니다. 아, 왜 코끝이 찡해지는지.


  버스 안에서의 제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습니다. 매일 같은 버스를 타고 의미 없는 출근을 하는 모습과 사랑하던 이와 둘이 앉을자리를 찾으며 깔깔대던 모습. 혼자가 되어 매일 같은 자리만 앉아 멍하던 모습. 삶의 비바람에 하릴없이 눈물만 흘리던 모습까지.


  제 삶은 아직 끊임없는 헐떡임입니다. 이겨내야겠지요. 혼자 이겨내면 좋겠지만 저는 너무 약합니다. 끊임없이 기대어 지내온 것 같습니다. 참 부끄러우면서도 늘 어쩔 수 없단 핑계 아래 미안하다며 기대어왔습니다.


  그런데 기사님 덕에 오늘은 부끄럽지도 미안하지도 않습니다. 별안간 물 한 모금에 헐떡임이 가라앉고, 어쩌면 세상의 열 중 아홉쯤은 내 편이 되어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덜컹거리는 버스 차창에 기대어봅니다.


  기사님!  버스를 세워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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