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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보라 Dec 20. 2024

#31. 이혼한 엄마랑 같이살기

이혼 후 10년 #31

"혹시 첫 출근 날짜는 맞추실 수 있을까요? 가족들이랑 다 여기로 이사 오시려면 시간이 좀 걸리시죠?"

"저는 이혼해서 혼자 지내고 있어요. 첫 출근날은 공고하신 날짜에 맞출 수 있을 것 같네요"

순간 휴대폰 저쪽에서 정적이 흐르는 듯했다.


저번 이직 때도, 인사 담당자는 당연히 내가 가족들과 함께 이사를 올 것이라고 생각하며 첫 출근 날짜를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이혼했다'라고 말하자, 그는 사뭇 당황하며 말꼬리를 흐렸었다.

그때, 나는 '내가 뭘 잘못한 건가?' 하며 의아해했다. 마치 지금의 내가 느끼는 기분처럼...


한 달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업무 인수인계를 하고 그동안 정들었던  직원들과 석별의 정을 나누었다.

센터의 개관 초기부터 사업계획 수립부터 첫 공연, 첫 축제, 첫 워크숍 등등, 이곳에서의 모든 처음을 함께해 온 직원들이라 헤어지는 게 쉽지는 않았다.  

그들과 자취방에서 쓰던 물건들을 나누고, 꼭 필요한 것만 내 승용차에 실어 고향으로 이사 왔다.

급하게 진행된 이직으로 전세방을 비우지 못한 채, 당분간 새집을 구할 때까지 부모님 댁에서 함께 살기로 했다.


첫 출근 날 아침, 마치 내  새내기 직장인으로 돌아간 듯 설렘이 가득했다. 엄마가 차려주신 밥을 먹고, 시내 백화점에서 산 새 옷과 새 구두를 신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출근했다. 새로운 사무실은 내가 태어나고 자란 동네, 어린 시절 울면서 엄마를 찾으러 다녔던 시장 근처에 있었다. 울면서 집을 나와 시청 옆 시장으로 가면, 장을 보느라 분주한 엄마를 꼭 만날 수 있었다. 그런 내가 이제 그 동네로 출근을 하게 되다니, 감회가 정말 새로웠다.


첫 출근날 아침, 마치 내 마음은 새내기 직장인으로 돌아간 듯 설레었다.

엄마가 차려주신 밥을 먹고, 시내 백화점에서 산 새 옷과 새 구두를 신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출근을 했다.

새로운 사무실은 내가 태어나고 자란 동네, 어린 시절 울면서 엄마를 찾으러 다녔던 시장 근처에 있었다.  

낮잠을 자다 일어나 졸린 눈을 비비며, 시청 옆 시장에 가면, 저녁꺼리 장을 보느라 분주한 엄마를 꼭 찾을 수 있었다.  

그랬던 내가 이제는 어린시절을 보냈던 그 동네로 출근을 하게 되다니 정말 감회가 남달랐다.   

  

한 달쯤 부모님과 함께 살다가 드디어 예전 집이 나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도 이제 맘편히 주말마다 아이들을 보려면 집을 구해야 했다.

그래서 남편과 아이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집을 알아보았다.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전남편은 재개발로 어머니집이 팔린 후로 도심과 20KM나 떨어져 있는 외곽으로 이사를 했다.   

그곳은 나의 새로운 직장과도 상당히 거리가 있어 주위 사람들은 모두 다 나의 이사를 만류했다.   

"남들이 보면 전 남편한테 미련이 있어서 같은 아파트로 이사가는 줄 알겠어!"하고 말이다.


나는 남들의 시선이 어떻든 상관없이, 아이들 가까운 곳에서 성장하는 과정이 보고 싶었다.

"엄마가 항상 가까운 곳에 너희와 함께 살고 있어"

바로 옆 방에서 눈을 뜨진 않더라도, 현관문만 넘으면 엄마가 있다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할머니나 아빠에게 무슨 일이 생겨도 언제든 엄마가 곁에 있으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해주고 싶었다.


같은 아파트 다른 동으로 이사를 간 후, 나는 매일 아침 출근길에서 첫째 아들, 예준이를 만날 수 있었다.

다행히 아이의 초등학교는 아파트 단지에서 횡단보도만 건너면 갈 수 있는 곳에 있었다.  

그래서 등교 시간에 맞춰 학교 앞에 기다리면, 터덜터덜 아파트에서 걸어나오는 아들을 멀리서 볼 수 있었다.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릴 때 쯤, 나는 차에서 내려 예준이를 맞아주었다.

"예준아! 오늘도 학교 잘 갔다 와! 엄마도 회사 다녀올게!"  

그 짧은 인사를 하기 위해 수십분을 기다린 적도 많았다.

하지만, 매일 아침 예준이가 잔잔한 미소를 채 나에게 손을 흔들어주면 내 마음은 하루 종일 행복했다.  


첫째를 배웅한 뒤에는 둘째 딸이 있는 어린이집으로 빨리 이동했다.

애들 아빠가 예은이를 등원시키고 나면, 나는 어린이집 초인종을 눌렀다.  

"예은아! 엄마 오셨다."

선생님이 부른 소리에 뛰어나온 예은이는 내 품에 들어와 와락 안겼다.

매일 아침, 나는 과일을 싸가서 딸과 나눠 먹었다.

나도 출근을 해야 했기에 10분 정도의 시간 밖에 함께 보낼 순 없었지만, 다른 원아들이 오기 전에 단 둘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새로 옮긴 어린이집 선생님들은 예은이의 사정을 아시고, 다행히 나의 잦은 방문을 허용해주셨다.

덕분에 나는 매일 아침 딸아이와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비록 같은 집에서 눈을 뜨고 매일 아침밥을 차려주지는 못했지만, 함께 간식을 나누며 서로의 안부를 물을 수 있었다.


'혹시 지저분한 옷을 입고 있지 않은지? 아침밥은 잘 먹었는지?'

보지 못해서 걱정되는 마음을 아이들의 얼굴을 통해 한결 내려 놓을 수 있었다.

때때로 일찍 퇴근하거나, 평일에 시간이 생기면, 아이들을 일찍 만나 아빠 몰래 문구점에 들러 군것질을 하거나, 놀이터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마치 함게 보내지 못한 4년의 시간을 보상받기라도 하려는 듯, 나는 열심히 아이들 곁에 머물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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