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에게 맞는 악기를 배우는 것이 좋다
사람마다 자기에게 맞는 악기가 있다
피아노 연습을 하기 싫어하는 애가 바이올린으로 바꿔주니 재밌어 한다거나 악기를 싫어하던 애가 합창에 재미를 붙이는 예를 주변에서 종종 본다.
나는 6살 때부터 피아노를 쳤고 어쨌든 저쨌든 이론과 입학 할 때까지 거의 쉼없이 렛슨을 받아왔다. 남들보다 진도가 조금 빨라 바이엘을 3개월에(6개월인가?) 떼서 선생님이 “내가 가르친 학생 중에 2번째로 진도가 빠르구나”하며 칭찬해준 기억이 나는 걸 보면 나도 어릴 때는 조금은 피아노에 재능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실 엄마가 마루에 커다란 전지를 펴서 크레파스로 오선보를 그리고 나에게 도레미파 솔라시도 음표 읽는 법을 미리 예습 시켰던 기억이 난다.
엄마는 선생님이 “적어도 하루에 30분은 꼭 연습해야한다”는 말을 철썩 같이 믿고 6살부터 무조건 하루에 30분씩 연습을 시켰다. 나이가 더 들어서는 1시간씩 쳤다. 나는 연습하기가 싫어서 렛슨 받는 곡 말고 맘대로 소곡집을 치기도 하고 혼자 반주하며 노래도 부르며 시간을 떼운 적도 많다. 엄마는 피아노 소리만 나면 내가 연습하는 줄 알았기 때문에 넘어갈 수 있었다.
엄마의 연습 강요가 너무 싫어서 나는 피아노를 생활 속에서 친구처럼 매일 대하기는 했지만 엄청 사랑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미션스쿨이었던 초등학교 성가대에서배우는 합창이 엄청 매력적이었다. 알토파트를 맡아 화음을 넣거나 소프라노로 예쁜 주선율을 부를 때 너무 좋았다.
위 동영상은 세계적인 소년 합창단인 빈 소년 합창단이 부르는 <넬라 판타지아>이다.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 성가대 친구들이 이렇게 잘 부르진 않았지만 우리는 노래를 같이 부르고 화음을 넣고 음악을 완성시키는 걸 참 즐거워했다. 나는 지금도 그 경험 때문에 아이들이 음악을 쉽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은 합창이나 합주처럼 같이 하는 앙상블 연주라고 생각한다.
어쩌다 중 2 겨울방학 때 다소 즉흥적으로 음악을 전공하기로 결심하고 예고 준비를 해서 운 좋게 붙었다. 그러나 동네 선생님에게 렛슨받고 학교나 성당에서 반주나 하던 내가 초등학교 때부터 예원학교를 목표로 3-4시간 연습하고 예중시절 이미 실기시험으로 경쟁에 익숙해진 친구들과 맞붙는 건 사실 어불성설이었다
고등학교 때는 보통 85-95점 정도의 점수대에 70여명 피아노과 학생들의 실기성적이 매겨졌다.(대학처럼 A-D로 매기면 얼마나 좋으련만 입시 제도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시험을 보고 나면 소숫점 차이로 1등-70등이 매겨졌다.나는 한학기 동안 외워서 연주해내야 하는 어마어마한 실기시험 레퍼토리에도 질렸지만 애시당초 그때까지 음악으로 경쟁을 해본 적이 없었으므로 처음 받는 압박감에 적응하기 힘들었다.
나는 당연히 실기성적이 그리 좋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학과 공부가 더 편하고 좋아서 고 2말 쯤 음악사나 미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피아노과가 아닌 이름도 낯선 이론과(음악학과)에 진학하게 되었다. 대학에 오고 나서도 오랫동안 나는 음악에 재능이 없다는 생각에 스스로 상처 비슷한 걸 입었던 것 같다. 아마도 고등학교 때 받았던 실기성적 때문에 아직도 스스로에게 상처를 주는 거였는 지도 모른다.
대학 때는 오랫동안 성당에서 청년 성가대 반주를 했다. 당연히 오르간을 많이 쳤다. 그러다가 우연히 20대 후반 오르간 렛슨을 받게 되었다. 예고 동창이 소개해준 박혜원 선생님은 나에게 오르간의 매력을 알려준 고마운 선생님이다.
예고 3년 선배이기도 했던 박혜원샘은 친절하게 차근 차근 오르간을 가르쳐주셨다. 발페달을 배우고 오르간 작품을 하나 둘 배우면서 나는 피아노와는 또 다른 오르간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곡가 중 하나인 바흐 작품을 연주할 때는 대위법의 짜임에 감탄하고 코랄을 연주할 때는 영성의 깊이에 감동하였다. 그리고 영성적이고 때론 웅장하면서도 때론 미스틱한 오르간 소리를 나는 너무 사랑하게 되었다.
위 동영상은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바흐 칸타타 중 <예수 나의 기쁨>을 오르간으로 연주하는 것이다.
피아노과인 예고 후배가
“언니, 나는 피아노 소리를 들으면 아직도 너무 좋아 어쩔 줄을 모르겠어요 “
했는데 솔직히 나는 공감하지 못했다.
그러나 오르간 소리는 지금도 나를 항상 매료시킨다
오르간이 매력적인 이유를 꼽아 보라면
1.각 성당마다, 악기마다 소리가 다른 것이 참 매력적이다. 오르간마다 가지고 있는 파이프의 수와 종류가 다르기 때문이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의 오르간이 모두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명동성당의 오르간과 새문안 교회 오르간 소리가 다르다.
2.파이프 오르간은 각 파이프가 악기, 예를 들어 바이올린, 첼로, 플룻, 클라리넷, 트럼펫 등을 모방하여 소리낸다. 어떤 파이프를 연주할지는 건반 옆에 있는 스탑이라는 버튼을 눌어 정한다. 즉 연주자는 스탑이라는 버튼을 눌러 어떤 파이프를 선택할 지 (즉 어떤 악기를 선택할지) 정할 수 있다.
낭만시대나 현대 곡은 스탑을 작곡가가 정해주는 경우도 있지만 바흐 같은 바로크 시대 작곡가 들은 악보에 스탑을 표기하지 않았다. 따라서 연주자가 자신의 음악적 취향에 따라 다양한 악기를 정할 수 있다. 그리고 오케스트라 음악처럼 본인이 정한 악기들을 동시에 울리게 하여 연주한다. 그러므로 같은 바흐 푸가라도 연주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진다. 나는 연주자가 작곡가처럼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악기와 소리를 정하고 표현하는 것이 좋았다.
3. 건반이 여러 층이고 발건반도 있어 바흐 코랄 같은 다성음악을 연주할때 피아노와 달리 성부마다 다른 색깔의 소리을 낼 수 있어 마치 합주하듯이 연주할 수 있는것도 좋았다. 피아노로 푸가를 칠 때에는 주제를 도드라지게 치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던가. 피아노는 건반이 한 층이므로 한 손으로 주제 선율과 대선율을 같이 치면서 주제 선율이 잘 들리도록 치는 일은 정말 쉽지 않다. 예를 들어 첫째 둘째 손가락으로는 대선율을 작게 치고 넷째 다섯째 손가락으로는 주제를 크게 치는 것이다. 한 손으로 손가락마다 크기를 다르게 동시에 치는 것은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
그러나 오르간은 건반마다 소리의 색깔이 많이 달라 다성부 음악을 연주하기에 용이하게 되어 있다.
4. 영성적인 종교 작품이 많은 것도 매력적이다. 치고 있으면 명상하는 것 같고 힐링될 때도 많다.성당에서 반주를 하거나 묵상곡을 치면 신자분들의 기도에 도움을 드리는 것 같아 뿌듯하고 감사했다
5. 피아노가 건반을 타건해 현을 해머가 때려 울리는 즉, 타악기의 원리로 소리나는 현악기라면 오르간은 파이프가 울려 소리나므로 건반악기지만 관악기와 흡사하다. 그래서 훨씬 성악적인 표현이 가능하다.
물론 오르간이 피아노보다 우월하다는 뜻은 아니다. 표현 방식이 다른 악기라는 뜻이다.
나는 한 때 오르가니스트가 될까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있다. 프랑스에서 1년간 열심히 렛슨을 받고 작은 음악학교에 입학도 했는데 남편 파견이 끝남에 따라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다시 교편 생활을 하면서 속상해 하기도 했다. 나는 이제 오르가니스트의 꿈은 버렸다. 그냥 동네 성당 미사 반주나 할 뿐이다. 그래도 기회만 닿으면 오르간을 또 배우고 싶다. 내가 너무 사랑하는 악기, 사랑하는 작품들을 하나 하나 더 알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