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연습, 그 무용해보이는 노동의 가치

by 스텔라언니

어렸을 때부터 엄마가 강요한 것이 있었다. 바로 피아노 연습이었다.

너무 산만하고 수다스럽고 노래를 좋아하는 나를 보고 뭔가 집중력을 키워줘야겠다는 생각을 하셨다고 했다. 우연히 육아서에서 집중력을 키우는 데는 악기 연습이 좋다는 것을 읽으셨단다. 그런 엄마 손에 이끌려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것이 6살 정도였던 것 같다.

피아노 선생님은 매일 30분씩 연습을 해야한다는 조건을 거셨다고 했다. 그래서 다른 것엔 별로 강요가 없었던 엄마가 피아노만큼은 꼭 매일 치게 하셨다.

나도 이런 모습이었겠지. 우리 집은 그랜드 피아노는 아니고 갈색 업라이트 피아노였지만^^

나는 퍽 지겨웠지만 엄마의 강요에 피아노를 매일 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어린이였던 80년대만 해도 아이들이 방과 후에 학원을 다니는 일이 거의 없었으므로 늘 시간이 많았다.

그래서 피아노를 치는 일은 크게 시간을 낼 필요가 없는 나의 일상이 되었다. 나는 그저 동네 선생님에게 배우는 평범한 꼬마였고, 전공을 하겠다는 의지는 부모나 나에게 전혀 없었으므로 그냥 취미삼아 쳤다.


그러나 시간이 쌓이고 연습이 쌓이면서 나는 어느덧 교재인 소나티네나 체르니 외에 소곡집이나 명곡집은 혼자 칠 수 있었다. 엄마나 엄마 친구들 앞에서, 그분들이 여고 시절 즐겨 불렀던 “아 목동아”나 “산타 루치아”를 치면 참 좋아하셨던 기억이 난다.

교재 외에 집에 있던 여러 악보를 내키는 대로 치면서 초견(처음 보는 악보를 읽는 것)이 많이 늘었다. 집에 굴러다니던 오래된 고등학교 음악 교과서에 나오는 여러 가지 노래를 혼자 불러보기도 했다. “에델바이스”나 프랑스 샹송 “사랑의 찬가” 같은 노래를 부르며 멜로디의 달콤함에 즐거워하기도 했다.

피아노를 치는 기술은 단 시간에 연마할 수 없다. 어깨와 팔 전체는 힘을 완전히 풀고 대신 손 끝은 단단히 치는, 마치 낙숫물이 떨어지듯, 어깨와 팔의 힘은 완전히 풀고 손끝으로 툭 떨어지나 손끝은 단단히 이를 받쳐 건반을 타건하는 것은 터득하는 데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

처음 피아노를 배우는 사람에겐 크게 치라고 하면 손가락과 팔에 온 힘을 다 주고 치게 마련이나. 그러면 소리가 딱딱하고 듣기 싫다. 치는 사람도 어깨와 팔에 통증이 온다.

힘을 빼고도 손가락이 단단히 건반을 받치는 것은 오랜 시간 선생님이 옆에서 자세를 교정해주고 시범을 보여야 조금씩 터득할 수 있다. 이른바 “계란 모양”손을 유지하며 힘을 빼고 단단한 소리를 내는 것은 오랜 연습과 훈련이 필요한 일이다.

그리고 각기 길이가 다른 손가락이 고르게 독립적인 소리를 내며 움직이려면, 손가락 근육이 발달해야한다.

어린 시절 지겹게 들리던 “하농”이 손가락의 독립성을 키우는 대표적인 교재이다. 하농을 붙점, 반붙점, 스타카토 등 다양한 방법으로 연습하면 손가락 10개가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손가락이 같이 움직여서 소리가 뭉개지면 안되기 때문에 손가락의 근육을 훈련시켜 그야말로 “또각또각” 맑고 고운 소리를 빠르게 내는 것은 피아노 연습의 중요한 부분이다.


사실 고등학생이 갑자기 대학에 가기 위해 피아노를 치겠다고 늦게 렛슨을 다시 시작할 때 제일 힘든 부분이 그것이다. 손가락이 독립이 안 되서 뭉그러지는 것, 빠른 패시지를 칠 때 소리가 고르지 않고 뭉그러지게 들리는 것
마치 다 큰 어른이 발레의 다리 찢기를 시작하는 것처럼 나이가 들어 악기를 시작하면 갑자기 손가락 근육을 발달시키는 것이 쉽지 않다.
(물론 취미로 늦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하신 분들은 배우다 보면 향상되는 모습을 보실 수 있습니다. 늘 조급한 마음이 문제이죠. 시간을 많이 들여야 하는 일이니까요 ^^)


어린이 피아노 렛슨을 많이 하는 내 친구가 하는 얘기가 있다.

“요즘 애들은 너무 바빠서 연습할 시간이 없어. 학원에서 치거나 개인렛슨에서 치는 게 다야. 우리 때처럼 매일 집에서 조금이라도 연습하는 애들은 거의 없어. 그러니 손가락에 근육이 안 붙어서 단단한 소리를 내는데 시간이 더 오래 걸려. 잘 안되지”

엄마에게 이끌려 매일 피아노를 쳐야 했던 나에게 피아노 연주 실력 외에 남은 것은 무엇일까.

나는 예중을 목표로 피아노 전공입시를 어렸을 때부터 준비했던 초등학생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매일 30분~1시간 정도만 연습을 했다. 그러나 매일 꾸준히 무언가를 연습했던 것은 어른이 된 내게 큰 무언가를 남겼다.

무언가를 배우려면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

잘 늘지 않는 것 같아도 그 때가 정말 느는 때라는 것

그래서 잘 되나 안 되나 매일 꾸준히 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는 것

이것은 피아노 뿐만 아니라 내가 이 곳 중국에서 중국어를 배우거나 요가를 할 때도 늘 느끼는 것이다. 요가나 중국어도 하루 15분정도 적은 시간이라도 매일 꾸준히 하면 일주일에 한번 왕창 2시간 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이었다.

예전에 피아니스트 백건우에게 피아노 연습이란 무엇인지 묻는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그는 늘 한 작곡가를 정해서 그 작곡가의 전 작품을 모두 연구하고 연주하는 것을 좋아하는 성실하고 학구적인 피아니스트이다.


연습을 한다고 해서 밥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안 되는 손을 붙잡고 끊임없이 좌절하며 수많은 작품을 항해하는 백건우에게 연습은 어떤 것일까.

그는 너무나 겸손한 표정으로

“수도원에 가면 기도로 일생을 봉헌하는 수도자들이 계시죠. 나의 연습도 돈이 벌리는 것은 아니지만 기도처럼 세상에 그런 좋은 기운을 주는 일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물론 그는 프로페셔널한 연주자이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연주회를 끊임없이 열고 늘 관객도 많다. 그러나 그는 늘 그 이상으로 피아노를 연습하고 작곡가와 작품을 연구한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묵묵히 한 작곡가의 전작품을 연구하는 그의 작업은 그런 의미가 있는 것이었다.

https://youtu.be/rLQ3ckufZtg

나는 피아노 연습, 무용한 노동의 가치를 안다. 그리고 그것을 알게 된 것이 감사하다. 피아노 뿐이랴. 세상의 많은 일이 그럴 것이다. 청명한 봄날씨, 코로나 때문에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진 요즘, 공들여 무언가 할 수 있는 시간들이 우리에게 허락되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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