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 때 프랑스 파리에서 1년간 산 적이 있다. 프랑스 외국 회사를 다니던 남편이 파견을 나간 것이다. 우리는 에펠탑이 조금 보이는 방 한칸 짜리 예쁜 아파트에서 신혼 살림을 시작했다. <나물이네>라는 블로거가 만든 요리책을 보면서 매일 저녁 소꿉장난 하듯 새로운 음식을 해서 둘이 나눠 먹었다. 그리고 파리의 아름다운 거리를 산책하는 것이 일과였다.
나는 프랑스에서 오르간을 공부하고 싶었다. 프랑스는 카톨릭의 맏딸이라고 불리는 대표적인 카톨릭 국가이다. 곳곳에 많은 성당이 있고 그 안에는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오르간이 있다.
나는 용기를 내어 동네 성당 지휘자에게 내가 연습할 수 있는 성당을 아냐고 물어봤다. 그는 오르간 협회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 거기서 소개해준 성당이 바로 생 쉴피스 성당. 소설 “다빈치코드”에 나오는 성당이었다
이 성당의 지하에 내려가면 지하 무덤이 있다. 아마 유명한 성직자의 무덤인 듯 했다. 그 옆에 연습용 오르간이 있었다. 1년간 나는 하루 3-4시간씩 지하 무덤 옆에서 연습을 했다. 별로 무섭지 않았다.
한국에서 소개받은 리즈베스 선생님(리옹 국립 고등 음악원 교수)에게 렛슨을 갔다. 그는 마리 클레르 알랑의 제자였다. 마리 끌레르 알랑은 전설적인 오르가니스트였다. 키가 작고 아담한 체구의 할머니는 오르간을 자유자재로 다루었다. 손끝에서 나오는 음악은 부드럽고 유려했다. 나는 그들의 음악적 취향이 너무 좋았다. 나도 이 음악의 계보를 이어 훌륭한 연주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리 끌레르 알랑이 연주하는 바흐 소나타)
리즈베스 선생님은 너무 바쁘셔서 나같은 초보자까지 렛슨할 시간이 없었다. 그녀는 자식이 자그만치 넷이나 되었다. 그래서 제자인 플로랑스 선생님을 소개해주었다. 그녀는 부르타뉴 지방인 렌느에 살았다. 영국과 가까운 곳이다. 나는 그 지역 음악 학교에 입학했다.
내가 원하는 학위를 따려면 족히 4-5년은 걸릴 듯 했다. 돌아가서 직장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었다. 피아노와 달리 오르간은 개설되어 있는 대학도 한국 내에 많지 않다. 남편의 파견이 끝나가고 있었다. 나는 결정을 해야했다. 참 힘든 결정이었다. 친정 엄마는 내가 돌아오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나는 학교에 입학한 것이 무척 아까웠지만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1년 후 시험에 통과하면 학사 학위를 준다고 했는데 지금 같았으면 딱 1년만 고생해서 딸 걸 아쉽긴 하다.
그래도 오르간에 대한 나의 사랑은 여전하다. 분당 요한 성당의 파이프 오르간이 좋다고 하니 코로나가 끝나면 함 보러 가야겠다. 어쩌면 거기에서 또 렛슨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
오르간의 영성적인 음악은 사람을 참 편안하게 한다. 명상하는 것과 비슷하다. 오늘은 오르간 곡을 들으며 명상을 해야겠다. (아래의 곡은 우리 귀에도 익숙한 바흐의 코랄이다. 제목은 <깨어라, 외치는 소리>, 주님을 깨어 기다리라는 내용이다)
아래 사진은 내가 연습하던 생 쉴피스 성당의 모습이다 노트르담 성당에 이어 두번째로 큰 성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