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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구 Jan 02. 2021

무질서에 관한 시집 노트 1

OE 시론 - 네 권의 시집을 논하다 1

[ CONTENTS ]


1. -


2-1.  황인찬, 『구관조 씻기기』

2-2.  안희연, 『너의 슬픔이 끼어들 때』

2-3.  김선재, 『목성에서의 하루』    

2-4.  이원, 『사랑은 탄생하라』    


3. -





1    



 네 편의 시집을 읽는 것은 네 끼의 저녁 식사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한 밥상 위에 모든 메뉴를 올려놓고 다 함께 먹으면 입 안에서 섞여버린 나머지 그 고유의 맛을 알 수가 없기 때문에 4일 간의 저녁 식사로 각각 차려야만 한다. 마치 성스러운 미식회를 진행하듯 차례차례 그 시집의 세계 속으로 깊숙이 빠져 들기 위해서 젓가락으로 시를 집어 입 속에 넣고 혀를 이리저리 굴려 그것이 전하는 맛을 음미한다. 그것은 유체 이탈 체험처럼 시인의 몸과 마음에 독자인 내가 오롯이 들어가서 그의 여린 세포 하나하나 흡수하고 느끼는 일이다.  


 그럴 때면 시인이 창작물 안에 아주 깊이 숨겨놓은 힘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 있었다. 한 낮 빛이 들이치는 열린 창문에 크게 팔랑거리는 실크 커튼처럼 서서히 다가오는 고유한 에너지. 그것들은 아주 천천히 숨을 들이쉬며 다가온다. 그리고 나의 호흡과 아주 정직하게 맞아 떨어진다. 비로소 시인의 마음이 한 편 시의 형태로 내 안에 들어서는 순간이다. 그것은 아주 밀도가 높아진 생각들로 꼭꼭 밀어 넣어져서 가득 찬 공간이 ‘그 이상’으로 팽창하기 시작하는 순간에서야 비로소 마음을 열고 등장한다. 잘 웃지 않는 예민한 사람의 가장 마지막 미소처럼, 그 입술의 작은 미동처럼, 최후의 순간에 등장하면서 시를 읽는 사람에게 서서히 약동하는 전율의 빛을 색깔로, 온도로, 마음으로 전달한다.


 생각들이 꼬불꼬불 길을 돌아 자꾸만 방향을 틀고 무질서하게 자리를 넓히는 것을 느끼면서 나는  쉽게 읽히지 않는 시들에 대한 나의 최초 감상을 정립시키는데 어려움을 느꼈다. 시 읽기를 해내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지만 그 감상이 창조한 제 3의 사유를 내 안에서 정돈시키는 것도 쉽지 않았다.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제 3의 창조물들은 회오리로 세차게 퍼져나가며 마음을 어지럽혔다. 마치 누군가 공을 던졌을 때 그 공을 다시 그 사람에게 던지지 못하고 물끄러미 들여다보는 일처럼, 그 공이 일으킨 어떤 추억 속에 홀로 멍해져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처럼. 그러나 우습게도 시간이 지나면 마음은 한 없이 지하로 가라앉아 잊혀져버리고 만다. 나는 이 일련의 과정이 죽음에 가까워지는 무질서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무질서의 돌고 돎 속에서 마음은 죽음과 탄생을 반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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