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효구 Mar 25. 2021

나르시시스트의 연인 - 꿈, 조각상, fantasy

OE 시집




나르시시스트는 단 하나의 드레스로 치장을 하고

창밖으로 손짓을 했다


기다렸다는 듯이

그가 거처로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그는 나선형 계단을 따라 올라왔다 계단에서 삐그덕 삐그덕

위태로운 소리가 났다 그것은 둘의 생활이었다


나르시시스트는 오래도록 걷지 않았기 때문에

그를 맞이하려고 일어났을 때 다리를 헛디뎌 넘어졌다

넘어지는 바람에 날염 드레스(*1)의 밑단이 찢어졌다

그는 그것을   체했다 


나르시시스트가 그의 외투를 받아 들 때 외투는 사라졌다

창밖에 매가 날았다


나는 당신을 혐오하는 동시에

온전히 소유당하고 싶어요


혐오란 인간의 진실한 감정이야 마치 고독한 네 통곡처럼

조각처럼 완벽한 그가 미소를 짓는다


외로운 밤에만 나를 찾아요

나르시시스트는 울면서 노트에 적었다


웃고 있는 그의 단단한 입매를 눈을 감고 상상하면서

나르시시스트는 거울 앞에 앉았다

드레스를 벗고 또다시 입었다

안달 난 두 볼은 불에 그을린 듯 붉었다

막 날 것을 삼킨 것처럼 입술이 붉었다


나르시시스트는 미쳐갔다

정면으로 반사되는 거울의 빛이 나르시시스트의 눈을 멀게 했다


그래서 네가 항상 속는 거야 네 오감(*2)이 너를 속이고 있잖아

그는 거울을 가리킨다

나르시시스트가 그의 눈에 키스했을 때 그는 잠에 들었다


나르시시스트는 물 잔을 기울인다

바르게 누운 사내의 몸 위로 물이 쏟아진다

스며들지 않아 사방으로 물이 튄다


빛은 안 들고 마르지 못하는 정원에서

아무것도 자라지 않는다


나르시시스트는 태어날 때부터 아름다웠다

아무도 말해준 적 없었으나 그녀는 홀로 깨달았다

방의 가장자리에서부터 빛이 새어드는 것을 바라보면서 그녀는 물을 마셨다

그녀의 눈이 멀어갈 때 검은 입술의 희미한 떨림을 마지막으로

그녀는 본다


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아름다웠다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지만 그녀는 그것을 알았다









*1.  셜리 잭슨, 『유령 신랑』

*2.  길리언 플린, 『The Grownup』


작가의 이전글 거리 위에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