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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구 Sep 10. 2023

그림자 놀이

효구 단편선 제1권


1. 강


내가 자주 가는 한강 둔치에 피아노를 한 대 두면 좋겠다. 나는 피아노를 치는 학생이고, 나의 몸 안에

자기장이 흐르고 있고, 강물 안에는 나를 끌어당기는 커다란 자석이 있고, 마포대교 쪽에서 원효대교를 향해 걷다보면, 63빌딩과 여의도에 새로 생긴 건물들이 한 데 모여 아름답고, 특히 밤에 여의도에서 마포 방향으로 건물들의 화려한 불빛들이 강물을 스케치북 삼아 기다랗게 흐늘거리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때면,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시간은 훌쩍 흘러버려서 미미야, 늦었다. 언제 들어오니, 묻는 엄마의 메시지도 나는 나중에서야 알아차렸다. 그래서 그 공원에 피아노를 한 대 두면 얼마나 좋을까, 젤리처럼 흔들리는 강물 위로 흩어지는 불빛들을 바라보면서 드뷔시의 Reverie를 연습한다면, 비로소 교수가 주름을 가득 구기면서 만족스러운 얼굴을 할지도 몰라, 생각했다.


“저렇게 화려한 그림자를 본 적 있어?”

내가 물으면 단비는,

“없지. 보통 그림자는 어둡고 하찮잖아.”

하고,

“그지, 그런데 쟤네는 그림자 같지 않아. 어딘가에 소속된 게 아니라 그 자체로 완전한 정체를 가진 것 같아.”

내가 자못 진지한 표정으로 느리고 분명한 발음으로 말하면 단비는,

“나도 그림자야, 미미 그림자, 미미 껌딱지.”

웃음기 없는 얼굴에 검은 눈동자로 나를 빤히 바라보면서 대답했다.

그러면 괜히 혼자 진지해져서 내뱉은 말들이 부끄럽게 느껴져 잠시 무안한 기분이 들다가도, 단비의 무심한 태도나 표정 같은 것이 좋아서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나는 웃음을 억지로 참고 단비처럼 좀 어눌한 어조로 다른 쪽을 바라보며,

“내가 단비 그림자야, 단비 껌딱지.”

나지막하게 말했었다. 그때 단비는 잡고 있던 나의 손을 더욱 세게 쥐었다.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강변을 걸을 때면 함께 산책했던 사람들이 무작위로 떠올랐다. 단비 생각이 너무 많이 나면 억지로 함께 걸었던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려고 애썼다. 그런데 의식이라는 게 청개구리처럼 맘대로 되지 않아서, 잊으려고 할수록 잊히지 않고, 또 기억하려고 하는 것들은 자꾸만 흩어져서 기억나지 않는 것 같았다.

어쩌면 나는 그런 것을 좋아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이렇게 생각해도 되고, 저렇게 생각해도 누구도 훼방을 두지 않는 시간 속에서 이상한 황홀감에 젖어 있는 게 아닐까. 날이 좋으면 좋은 대로, 궂으면 궂은 대로, 나는 혼자 강변을 걷는 것을 좋아했고, 걷다가도 곁이 조금 적적하게 느껴질 때면 SNS에 흘러가는 강물의 사진이나 영상을 올리기도 했다. 그러면 가끔 다정한 사람들이 동행하러 나오겠다고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런데 또 그들이 실제로 도달하여 멀리서 미미야, 하고 부르면 못 들은 척했다. 막상 함께이면 참을 수 없이 혼자이고 싶어지는 것이었다.

마음이 자석의 양극을 닮았다. 가끔은 생각할 겨를도 주지 않고 딱 붙어 버리거나, 혹은 여지도 없이 휙 도망가 버리거나. 또 그건 그림자와도 비슷하다. 그림자는 빛이 어디서 비추느냐에 따라 내 발치에 딱 달라붙어 내 몸통과 하나가 되거나, 아니면 손을 뻗어도 닿을 수 없는 길이만큼 길게 드리우거나.

강의 물길이 흐르는 모양이 지나치게 잔잔할 때, 종종 그 곁에서 낚시를 하는 사내들의 걷어 올린 바지의 왼쪽 밑단이 추워 보인다거나, 강변에 자란 나무 옆에 서서 별안간 서럽게 울고 있는 여인을 먼발치에서 바라본다거나, 덩달아 슬프고 외로워져서, 집으로 달려가 피아노 뚜껑을 열고 연주하고 싶어졌다. 그럴 때 갑자기 어디선가

“미미야!”

하고 부르면 강 주변에 선 갈대숲이나 길게 자란 수풀들 안쪽으로 숨어버리고 싶었다.



2. 미미와 단비


‘미미’라는 이름은 할머니가 지어준 것이라 들었다. 하지만 애초에 엄마는 내게 ‘단비’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싶어 했다. 엄마는 비의 태몽을 꾸었다. 뱃속에 나를 베고 한참 입덧을 하던 엄마는 무엇을 먹지도 마시지도 못해서 입에서는 항상 퀴퀴한 단내가 났다고 한다. 구토와 허기의 반복 속에 쓰러져 잠에 들면 꿈속에서는 항상 비가 내려서 창문을 열고 빗물을 받아 마시곤 했는데, 그 맛이 참 달고 시원했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 나는 그 태몽 이야기를 듣고 한동안 들떠 있었다. ‘단’, ‘비’. 말 그대로 ‘달콤한 맛이 나는 비’를 뜻한다. 하지만 달콤한 맛이 난다는 것은 실제로 그 빗물의 맛이 달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고된 가뭄을 겪느라 그 비를 기다려왔다는 의미이다. 영어로는 ‘웰컴 레인’. 다시 말해, 메마른 대지에 뿌려지는 시원한 빗물, 모두가 반가워하는 고마운 빗물이라는 거다.

물론 ‘미미’라는 이름은 좀 낭만적인 구석이 있다. 아름답고 아름다운 자(者). 남자 아이에게 ‘미미’라고 이름 지을 수 있을까? 나는 그런 고민을 해 본다.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 분홍색 베레모를 즐겨 쓰는 쿠바 출신의 추상화가와 그가 한 달에 한 번씩 분홍색 장미꽃을 선물하는, 매주 금요일에 보헤미안 풍의 푸른 드레스를 즐겨 입으며, 동그랗고 붉은 입술로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찬찬을 흥얼거리는 아름다운 아내가 남자아이를 낳았을 때, ‘미미’라는 이름을 줄 수도 있겠지. 그렇지 않을까?

만약에 그런 생각이라면, 나는 단비가 나보다 미미에 걸맞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단비는 정말로 아름다우니까. 그래서 한번 단비와 나는 이름을 바꾸어 부른 적이 있었다. 내가 단비에게 장난친답시고 연극적인 어조로,

“미미야, 이름 참 잘 어울리는구나. 미미가 되니까 예뻐진 기분이 드니?”

하면, 단비는 장난인 걸 알면서도 한동안 진심으로 고민하는 표정을 짓고

“그래, 고오-맙다. 못생긴 너보다 나한테 더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말한 후, 머리를 긁는 척 하다가

“그런데 단비야, 내 이름은 네게 주기 좀 아까운데?”“

입술을 삐죽거리면서 “그래도 가져라.” 하면, 나는

“사양한다. 나는 미미가 조오-타” 했다.

아무래도 ‘단비’ 또한 퍽 낭만적인 이름이기는 하다. 로맨스 영화의 결정적인 장면에서는 비가 내린다. 연인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비에 홀딱 젖은 채 격정의 한 장면을 연출한다. 그것이 가랑비일지, 소낙비일지, 단비일지, 국지성 호우일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이렇게 단비라는 이름에 살가운 의미 부여를 해 본다. 단비라는 이름의 낭만성에 대하여 논하다 보면 마치 미미의 이름을 가진 내가 단비 아님에 큰 미련을 둔 것처럼 보일 것 같은데, 꼭 그렇지만도 않다. 미미라는 이름은 그럭저럭 지낼만하다.

엄마는 종종 학창 시절을 돌이켜 추억하기를 즐겼다. 자신의 미모에 대한 은근한 자랑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점차 ‘오공주’에 대한 화려한 무용담으로 넘어가곤 했다. ‘오공주’ 중에는 엄마의 친구 단비가 있었다. 엄마는 친구 단비의 작고 하얀 얼굴과 우아한 이목구비를 묘사하면서 들떠있었다. 엄마는 그의 얼굴 모양새를 찬탄해 마지않았다. 한때 빗물의 태몽에 대한 갖가지 환상에 빠졌던 나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기는 했으나, 단비는 그저 엄마가 여고 시절 동경했던 얼굴 예쁘장했던 친구의 이름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빠는 나에게 단비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싶어하던 엄마의 단순한 소망 – 오공주의 단비처럼 예쁜 여자아이길 바랐겠지 - 을 유연하게 잘라냈다. 엄마는 나를 낳고 나서 조금 조용한 사람이 되었다. 기쁜 일이 없었던 것도 아닌데 발랄하고 쾌활한 표정 같은 것은 어디 비밀 상자에 넣어둔 사람처럼, 오공주의 방식으로 깔깔 웃는 법을 영 잊어버린 사람처럼 되어버렸다. 아빠는 언제나 엄마를 깊이 사랑하는 사람이었으므로 엄마가 속상하지 않게 잘 타일러 달랬다. 물론 아빠가 유달리 미미라는 이름을 더 좋아했던 것이 아니다. 과부로 오래 살아왔던 할머니의 작은 소망을 들어주고 싶었던 것이다.

나의 할머니는 과부에 가난했으나 수묵화를 그리는 재주가 있었고 자신의 소박한 작품들을 액자에 넣어 팔았다. 그림 장사는 큰 벌이가 못 되었으므로 할머니는 작은 교습소를 열기도 했다. 할머니는 교습소에서 서예를 가르쳤다고 한다. 서예를 가르치면서 번 돈으로 근근이 아버지와 네 형제를 길러냈다. 할머니에 따르면 막내인 아버지는 그 어떤 형제들보다도 똘똘했고 중학교 때는 공부를 하지 않아도 곧잘 좋은 성적을 받았다고 했다. 사내아이치고 얼굴도 예쁘장하여 고고장이나 드나들며 연애하고 노는 줄로만 알았더니 고등학교 때 갑자기 철이 들어 공부를 열심히 하더니 약대를 갔다는 것이다. 엄마는 종합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었는데 건물 1층 약국에서 수습 약사로 일하던 아버지를 만났고 1년도 안 되어 뱃속에 내가 들어서는 바람에 서둘러 결혼을 했다.

그리고 내가 태어났을 때 할머니는 여자아이인 것을 확인하고 뛸 듯이 기뻐했다.

“큰딸은 아빠 닮는대요. 애비 많이 닮았네요.”

엄마는 유독 아빠를 닮아 이목구비가 뚜렷한 나를 보며 아쉬운 것인지 기쁜 것인지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이렇게 예쁘게 생겼나?”

예순 살의 과부였던 할머니는 병원에서 손녀를 껴안고 어이구, 예쁘다, 예쁘다 탄성을 질렀다고 한다. 그리고 할머니 댁 안방에 걸린 액자 속 검은 수묵의 미인도, 당신이 가장 아끼던 그 그림의 이름을 본떠서 나는 ‘美美’의 삶을 얻었다.

어쩌면 비를 받아 마시는 태몽은 엄마의 꿈과 현실의 욕망이 뒤섞여 일상 속에서 진실인지 허구인지 구분할 수 없게 되어 버린 미담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른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엄마 자신도, 그것을 전해 들은 사람들도 모두 오해를 하게 된 것이다. 세상에는 엄마와 내가 꿈꾸던 ‘단비’도 없고, 할머니가 꿈꾸던 ‘미미’도 없었다는 사실만이 진실로 남아 구름도 없는 쨍쨍하고 마른하늘을 시시하게 동동 떠도는 것이다.

그러면 나는 그 장면을 보러 아무리 바빠도 꼭 강변에 나가야만 할 것이다.

때때로 사람들은 자신이 믿고 싶은 대로 모든 것을 믿음으로써 사실을 왜곡한다. 그들은 자신만의 추억 속에서도 진실과 허구의 흐릿한 경계를 넘나든다. 때로는 기민한 감각으로 진실을 알아차리다가도,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은 눈에 눈곱이 잔뜩 낀 것처럼 흐릿해지고 기분은 무기력하고 멍해져서, 그저 믿고 싶은 환상만을 삶의 전부라 여기고 싶어진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일종의 착란 내지는 환각에 빠진 채 살아간다. 참 다행인 일이다. 살다보면 환상이 위로가 되기도 한다.

나는 자라면서 꽤 많은 단비를 만났는데, 그때마다 단비들의 얼굴과 행동거지를 유심히 살폈다. 그리고 내가 하마터면 단비가 될 뻔했던 일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 다행히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만난 단비들은 하나 같이 매력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단비의 이름을 갖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에 점차 안도하게 되었다. 진실로 나는 미미의 삶에 만족해왔던 것이다.

적어도 나의 ‘단비’를 만나기 전까지는.



3. 피아노


초등학교 6학년 때 우리 가족은 한강 근처의 동네로 이사를 갔다. 아버지는 그동안 모아둔 돈으로 작은 약국을 하나 차렸고 엄마의 도움을 받아 함께 운영했다. 약국 일이 늘 마음먹은 대로 잘 되지는 않았는지 엄마는 자주 하소연을 하곤 했다.

동네에는 유독 학원이나 교습소가 많았다. 나는 ‘룰루랄라 피아노 학원’을 다녔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꽤 오랜 시간 동안 그 학원에서 피아노를 쳤는데 그 첫인상이 퍽 오래 기억에 남았다. 학원의 문을 열면 오른쪽에 기다란 신발장이 있었고 아무렇게나 놓인 크고 작은 실내화 중 하나를 골라신고 안으로 들어서면 눈앞에 거대한 그랜드 피아노가 놓여있었다. 그랜드 피아노 옆에는 넓은 테이블이 있었는데 거기에 놓인 원통의 문구함에는 몽당연필과 부러진 색연필들이 아무렇게나 꼽혀있었다. 테이블 뒤 벽면에는 반질반질한 유광의 윤기를 뽐내는 음악 교재들이 낮은 책장에 색깔 별로 가지런히 꽂혀 있었다. 그때 나는 그 책들을 모두 가방에 넣어 집으로 가져가고 싶은 이상한 충동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테이블이 놓인 곳을 지나면 그랜드 피아노만큼 크지는 않아도 각자의 육중한 몸집을 자랑하는 피아노들이 마치 사육당하는 가축들처럼 공간 안에 갇혀있었고, 문을 닫았음에도 피아노 연습하는 아이들의 느리고 서투른 연주 소리가 둥둥 동동 들려왔다. 마치 유치원처럼 벽면이 밝은 하늘색이나 분홍색으로 페인트칠 된 좁은 방 안에는 대부분 검은색 피아노가 한 대씩 놓여 있었지만 가장 마지막 오른쪽에 있는 방에는 하얀색 피아노도 한 대 있었다. 각 방의 창문은 늘 아이들의 손 지문이 묻어서 지저분했고 그 안에 있는 피아노의 건반에서도 오이를 절인 것처럼 시큼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내가 처음 학원을 갔을 때만 해도 까치발을 들어야만 방 안이 들여다보였으나, 나중에는 빠르게 복도를 지나가면서도 누가 어떤 곡을 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키가 자라게 되었다.

룰루랄라 피아노 학원 원장은 긴 파마머리를 화려한 레오파드 핀으로 날렵하게 잡아 꽂는 재능을 가지고 있었는데 우리 집 바로 위층에 살았다. 원장네 부부는 맨날 싸우는지 자주 큰 소리가 들렸고 나는 늦은 밤 침대에 누워 천장의 벽지를 바라다보며 부부가 싸우면서 나는 웅웅거리는 소음을 느껴보곤 했다.

내가 피아노를 치는데 소질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할머니는 머지않아 고급 일제 피아노를 사주셨다. 나는 등교 후 손과 발을 닦고 나서 피아노 뚜껑을 열고 악보를 받침대 위에 올린 후에 바이엘과 하논을 연습했다. 레오파드 원장은 곡명이 쓰인 악보의 오른쪽 상단에 사과를 열 개씩 그려주었고 나는 곡을 한 번 연습할 때마다 붉은 색연필로 사과를 색칠했다. 피아노를 계속해서 치다 보면 해가 져서 집안이 어두컴컴해졌고 방 안에 어스름한 어둠이 내려앉을 때면 알 수 없는 기분에 압도당한 나머지 훌쩍훌쩍 눈물을 흘렸다. 그 이상한 기분은 느닷없이 들이닥쳤고 마치 싸리 눈이 휘날리는 어느 겨울날의 기습 추위같이 나를 아프게 했다.

그때는 너무 어려서 강에 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로 서글퍼질 때면 나는 검정색 모나미 펜으로 사과를 두세 개씩 더 그려 넣고 피아노 앞에 앉아 오래도록 연주를 멈추지 않았다.

종종 할머니와 친척들이 우리 집에 모일 때면 나는 모두를 위해 피아노를 연주했다. 특히 고모와 고모부는 유일한 조카 딸인 나의 재롱에 지극히 기쁜 얼굴로 환호했다. 나는 노상 어린 딸들은 그래야만 하는가, 하며 무감하게 그들의 호응에 응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단 한 번도 자신이 피아노를 사주었다는 이야기를 가족들 앞에서 꺼낸 적이 없었다.

“너희 할머니가 다른 손주들 질투할까봐 그런갑다.”

엄마는 할머니가 나를 유독 예뻐하고 있다는 사실을 은근히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느끼기에 할머니는 후회하는 것이 분명했다. 할머니는 내게 피아노를 사주었던 자신의 행동에 화가 난 것이다.

“할머니, 이 피아노는 독일 거보다 좋다. 그지?”

한 번은 할머니와 단둘이 주방에 앉아 있던 내가 물었다. 호박 나물을 무치고 있던 할머니는 그 말을 분명히 들었을 텐데도 아무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나는 조금 뜸을 들이다가 다시 물었다.

“할머니, 내 피아노 독일 수입제보다 좋은 거지?”


할머니는 잠시 내 눈을 바라보았다. 나는 그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그때 할머니는 눈먼 봉사처럼 보였다. 아주 먼 곳을 바라보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나는 단 한 번인가 그런 눈빛을 보았던 일을 떠올렸다. 우리 가족이 제주도 여행을 갔을 때 사라봉에 올라 일몰을 바라보던 아버지의 눈빛과 같았다. 해가 지면서 바다 위 하늘색이 서서히 붉게 스며들었고 빛들은 아버지의 눈 속에서 선연하게 물들어 있었다. 할머니는 무언가 해야 할 일을 잊고 있었던 사람처럼 다시 고개를 숙이고 슥슥 호박 나물을 무쳤다. 그 후로 나는 할머니 앞에서 피아노의 ‘피’자도 말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엄마와 아빠는 나의 음악적 소질에 믿는 구석이 있었는지 학업을 강요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틈틈이 학교 수업이 끝나면 과목별로 노트를 정리했고 시험 기간에는 문제집을 풀면서 선생님이 집어 준 예상 문제를 암기했다. 그래서인지 나는 평범하긴 해도 나쁘지 않은 성적을 받곤 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단짝 친구인 가연이의 제안으로 학교 근처의 영어 수학 전문 학원을 함께 다니게 되었는데 후회할 일이었다. 내신 준비를 하면서 학원 숙제까지 하는 일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어서 늘 마음이 무거웠다. 중간고사는 항상 5월 초에 치르는데, 시험을 잘 보고 말겠다는 학기 초의 굳센 의지는 4월부터 갑자기 모든 과제와 수행평가들이 몰려오고 모든 계획이 뒤죽박죽 꼬이기 시작하면서 순식간에 허물어지고 말았다. 5월에는 밀린 학원 과제를 다 해야 한다는 생각을 모두 포기하게 되는데 이때부터 엄청난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완벽에 가까웠던 학기 초의 계획들은 엉망진창이 된 채 나는 극심한 스트레스 속에 중간고사를 준비해야만 했다.

학업에 쫓기느라 예전만큼 피아노를 많이 칠 수가 없게 되었지만 옆집에서 들려오는 둥댕둥댕 피아노 소리를 듣고 있자면 몸이 근질거려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참지 못할 때면 경쟁적으로 피아노 뚜껑을 열고 아무 악보나 꺼내들고 두 배에 가까운 속도로 빠르게 연주했다. 평소에 잘 안 쳐지던 부분도 그때만큼은 틀리지도 않고 술술 넘어갔다. 그 즈음 옆집 사람이 치던 곡은 기껏해야 하논 1번이나 2번일 뿐이었는데 이상하게 경쟁 심리가 발동해서인지 나는 훨씬 어려운 곡들을 골라서 치면서 건너편에 사는 것으로 추정되는 미지의 연주자를 이겨 먹는 재미에 빠졌다. 물론 그도 그렇게 여기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지루하게 모의고사 오답 노트를 정리하던 그 날도 역시 하논 2번을 스타카토로 연습하는 소리가 들려왔고 나는 피아노 뚜껑을 열고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11번을 빠른 속도로 연주하기 시작했다. 긴 곡의 연주에 집중하느라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는데 한참이 지났을까 갑자기 누군가 대문을 쾅쾅 두드렸다. 나는 연주를 멈추고 그대로 얼어버렸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옆집의 연주 소리가 멈춰있었다. 다시 쾅쾅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온몸의 털이 쭈뼛 올라서는 것 같았다. 옆집에서 쫓아온 것이 아닐까, 불안해졌다. 집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조심조심 까치발을 들어 방에서 나왔다. 거실에 있는 인터폰으로 현관 밖을 내다보니 웬 남자아이가 고개를 숙인 채 서 있었다. 내 또래로 보였다. 나는 인터폰 수화기를 천천히 들어올렸다.


“누구세요?”

남자아이가 고개를 들어 화면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인터폰 화질이 좋지 않아서 잘은 보이지 않았지만, 살짝 고개를 움직이는 품이나 화면을 바라보는 시선 같은 것이 좀 느리고 부드럽게 느껴졌다. 순간 아주 짧은 머리를 한 여자아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옆 라인 사는 사람인데요.”

그 아이의 목소리에는 사춘기 남자아이의 것처럼 바람 소리 같은 것이 섞여 있었다. 나는 그 애가 여자일지도 모르겠다는 짐작에 조금 더 확신을 갖게 되었고, 그래서인지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지면서도, 여전히 놀라서 바들바들 몸이 떨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무슨 일이시죠?”

그 애는 그림자처럼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왜 찾아오신 거죠?”

내 목소리는 기어들어 갔다. 내가 했던 말소리가 왜 찾 아 오 신 거 죠 한 자 한 자 분리되어 머릿속에서 제각기 유영하며 움직이는 것 같았다. 일이 분이 흘렀을까. 정적 속에 그 애는 천천히 그 자리를 떠났고 나는 인터폰 수화기를 들고 그 자리에서 얼어붙은 채 한참을 얼빠진 사람처럼 서 있었다.

그 후로 나는 집에 있을 때 옆집의 피아노를 연주하는 인기척이 들리면 피아노를 치지 못했다. 나는 그때 집을 찾아온 그 아이가 옆집의 연주자라고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그 애는 꿋꿋하게 서투른 하논을 연습했다. 때때로 교회 찬송가 반주곡을 연습하는 것도 같았다. 나는 그가 연주하지 않을 때만 시간을 내어 나의 악보들을 연습했는데 이상하게도 그때마다 경쟁을 부추기기라도 하듯 옆집에서 연주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금요일과 토요일, 일요일에만 독서실을 다녔는데 책상에 앉아 있는 것이 지긋지긋하게 느껴질 때면 독서실을 함께 다니던 가연이와 함께 동네를 돌았다. 우리는 옛 경의선 철길을 따라 걷고 걷다가 어느덧 한강변까지 갔다. 가연이와 나는 한강 주변을 허정허정 끝도 없이 걸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 몸에 자기장이 흐른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었다. 알 수 없지만 묘하게 이끌리듯 강을 향해 계속 걷다 보면 가연이는 이제 그만 걷자, 허리 끊어지겠어, 하며 보챘다. 나도 골반 있는 데가 뻐근 해올 때쯤이면 멈추고 싶기도 했지만 계속해서 수다를 떨면서 걷다 보면 아픈 기분을 잊어버리게 되기도 했고, 이상하리만큼 강변에 가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사슬처럼 나를 감고 있는 듯했다.


우리는 하드를 다 먹어서 막대기를 버릴 쓰레기통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한강 근처에 있는 공원에 쓰레기통이 있어 그쪽을 향해 걷는데 어떤 남자애 둘이 구석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한 애는 반삭 머리에 커다란 기타 가방을 등에 메고 있었고 한쪽 귀에는 작은 도끼 모양 피어싱이 달려 있었다.

“나 쟤네 알아.”

“어떻게 알아?”

“교회에서 봤어.”

함께 서 있던 남자애의 실루엣이 익숙하게 느껴졌다. 짧지만 숱 많은 머리카락이 흔들거리는 것이 어둠 속에서 바람에 느리게 움직이는 무성한 나뭇잎들의 모양 같았다. 나는 남자애가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애가 현관문 앞에 그림자처럼 오래도록 서 있던 그 아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나는 그 애가 맞는지 확인을 하느라 계속 쳐다봤는데 시선을 의식한 그 애도 나를 계속 보는 바람에 한동안 우리는 서로의 눈을 응시했던 것 같다.

“이름이 단비라고?”

“응. 같이 있는 애 이름이 단비라고 들었어. 아버지가 우리 교회 목사님. 왜?”

나는 조금 머뭇거렸다. 이런 걸 물어도 될지 조심스럽게 느껴졌다.

“조금 보이시한 분위기가 있는데? 보통 단비는 여자애 이름이잖아”

계속 걷고 있었는데 갑자기 가연이가 다시 길을 돌아 그 아이들에게 가보자고 이끌었다. 이름이나 성별 때문이라면, 굳이 확인할 것까지는 없는 것 같다고 해도 가연이는 뭐라도 결심한 듯 급한 발걸음을 했고, 나는 가연아, 가연아, 부르며 그 뒤를 따랐다. 가연이가 하도 성큼성큼 앞서 걷는 바람에 담배를 피우는 아이들도 놀라서 일시 정지한 화면처럼 멈추어 서서 우리 쪽을 바라보았다.

가연이의 당당한 걸음걸이는 마치 당장이라도 잘못된 무언가를 강하게 요구하거나, 빼앗겼던 물건을 받아내기라도 하려는 몸짓으로 보였으나 막상 아주 근접했을 때 조금 머뭇거렸다. 가연이가 주춤거리는 바람에 그 아이들의 놀란 기색도 조금 가라앉는 듯 보였다. 가까이서 보니 단비라는 아이는 아주 예쁘게 생긴 소년 혹은 아주 잘생긴 여자아이 같았다. 가연이는 나를 단비 쪽으로 세게 밀어붙였다. 그래서 나의 어깨가 단비의 어깨에 툭 닿았다. 마치 나룻배가 강둑에 닿은 것처럼 툭.



4. ㅅ ㅔㄱ스


다른 사람에게 말할 수는 없었지만 중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부터는 자주 섹스에 대해 생각했다. 엄마와 아빠가 안 계시는 시간 동안에는 인터넷으로 성인물을 찾아보기도 했다. 짜릿짜릿 나를 압도하는 기분이 스트레스를 해소하기엔 제격이었다. 포르노는 작위적으로 느껴지기는 했지만 ‘섹스’라는 행위 그 자체에 관해서라면 상스러운 것이라 생각지 않았다. 나는 그즈음부터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종종 팬티 위를 만지다가 머리가 띵 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어느 부위는 아무런 느낌이 없지만 어떤 부위는 자꾸 만지고 싶어질 정도였다.

학교 뒷마당에 가면 담벼락에 ‘ㅅ ᅟ겍스’ 혹은 ‘S E X’ 같은 것들이 커다랗게 적혀있었고 교무주임은 학생회 애들 몇을 데리고 그런 것들을 지우기 위해서 락스와 걸레를 들고 고군분투했다. 교실에서 상스러운 섹스 조크를 하는 남자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대부분의 여자애들은 에이 미친놈아 질색하며 핀잔을 주는 것이 보편적인 반응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사실 나는 속으로 귀엽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것은 모두 관념적 차원일 뿐이었다. 어떻게 ‘살과 살이 닿느냐’란 ‘접촉’의 문제는 중학생인 내게 너무 어렵고 먼 얘기였다. 특히 남성이 여성 안으로 삽입하는 방식이 지나치게 폭력적으로 느껴져서, 모든 야동의 장면들이 나를 속이고 있는 게 아닐까, 의심할 정도였다.

내가 배운 건 조금은 덜 폭력적인 방식이라 생각했다. 가연이가 내게 단비와 무슨 사이냐고 물었을 때 나는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저스트 프렌드? 애인? 소울메이트? 우리의 관계를 뭐라 설명할 수 있었을까. 무엇보다도 우리는 마음으로 친해지기 전부터 서로의 몸을 알았다. 손을 잡고 포옹을 하고 입을 맞추게 되었고 이후로는 매일 매일 온몸을 탐색했다. 마치 단비의 몸에 S극 자석을, 내 몸에 N극 자석을 붙여 놓은 것처럼 우리는 밀착했다. 서로의 몸이 주는 감촉은 알아갈수록 새로웠고 온종일 만지고 만져도 지루하지가 않았다. 나는 그 안에서 영원히 안전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나의 피아노는 거실과 주방을 잇는 공간에 놓여 있어서 해가 잘 들지 않았지만, 어둑하지도, 밝지도 않은 그 애매한 분위기에 싫증이 날 때면 나는 아예 암막 커튼을 다쳐서 햇빛을 막고 피아노를 쳤다. 피아노 뒷 편에 긴 스탠드 램프가 놓여있어서 불을 켜 놓으면 피아노에 악보를 두는 자리 위로 어스름한 빛과 집 안 가구들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부모님이 안 계실 때 휴대폰 메시지를 보내면 단비는 우리 집에 건너왔다. 우리는 암막 커튼으로 빛을 막고 램프를 켜서 그림자놀이를 했다. 나는 평소에는 모르다가 단비와 피아노 앞에 단둘이 앉으면 램프의 빛이 유독 등에 닿아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우리가 그림자를 만들어서 피아노 위에는 아기 토끼가 뛰어다녔다. 그리고 여우나 늑대가 귀여운 아기 토끼를 잡아먹었다. 하늘에는 그것을 지켜보는 매가 날았다.

그림자놀이를 하다가 내가 피아노를 치기 시작하면 단비는 안 어울리게 과장된 몸짓으로 환호성을 하며 손뼉을 쳤다.그럴 때면 단비가 교실에서 어울리는 남자아이들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중국어로 미미가 뭔 줄 알아?”

단비는 귀에 가까이 대고 속삭였다.

“비밀.”

나는 꼭 눈물이 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옆으로 길게 뻗은 피아노 의자에 똑바로 앉은 단비 위로 나는 포개어 올라가 다리로 단비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그래서 나의 교복치마는 시들어가는 커다란 호박꽃처럼 뒤집어졌다. 그리고 우리는 오래도록 입을 맞췄다. 단비의 입에서는 교실에서 남자애들에게 가까이 갔을 때 풍기는 땀 냄새 같은 것이 났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는 서로의 가장 깊은 곳을 만지고 싶어했다. 단비의 손가락이 내 안에 틈을 비집듯 가까스로 들어왔을 때 나는 비명을 질렀다.

“아파?”

단비는 내가 아파할 때마다 무릎을 꿇고 앉아서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나는 아프면서도 단비가 모든 것을 멈추고 두려워하는 표정을 짓고 있는 모습이 왠지 처량하게 느껴져서 아프지만 아프지 않다고 말했다.

“느낌이 어때?”

“응. 좀 아프긴 해. 너는?”

“나도 좀 아파.”

어느 날은 단비의 손가락이 내 안에 거침없이 쑥 들어왔는데 예전만큼은 아프지 않았고 단비도 그 느낌이 부드럽고 따뜻해서 좋았다고 말했다. 그 일이 있었던 몇 일간 팬티에는 계속 피가 묻었다. 나는 약국에서 몰래 연고를 가져다가 단비와 함께 발랐다.



5. 돌


내가 초등학교 때 할머니가 종종 해준 얘기였는데, 마포대교와 원효대교 사이의 강물 깊은 곳에 엄청나게 커다란 돌이 있단다. 커다란 돌이라 하면 통상 조금 투박한 바위의 인상이다. 그 거친 표면 위에 묻은 이끼나 미생물들, 그 위를 기어 다니는 큰빗이끼벌레처럼 갖가지 불결한 것이 떠오르고, 그러한 연상에서 확장해서 바위의 거처라 할 수 있는 한강의 검은 물이나, 바람이 많이 불 때 빨라지는 유속 같은 것이 떠오르고, 결국 한강변의 나무와 무성한 수풀, 그 안에서 울어대는 개구리 울음 소리와 같은 여러 감각의 경험이 한 데 모여 기억에 동원되면서 돌을 둘러싼 상상 속에는 원초적인 분위기가 있다.

하지만 그날에 내가 확신하게 된 사실은, 그 돌은 실제로 정확히 말발굽의 모양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말발굽은 자성을 띤 물체이고 자연적으로 만들어지지 않고 누군가가 애써 가공하고 푸른색을 입혔을 테니까, 그다지 야생적인 느낌은 아니라는 것이다. 차라리 조금 도시적이고 세련된 모양이랄까. 나는 강의 북쪽에 살고 있으므로 내가 N극의 자기장을 가진 것이라면 그 돌은 S극의 성질을 띤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나는 자주 홀린 듯 강을 향해 가야만 했던 것이다. 마치 산타클로스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아이처럼, 나는 그 사실을 어느 날 깨달았다.


몸 안에 든 돌과 돌이 가진 자기장의 기미를 알게 된 그 날, 나는 단비와 할머니의 집에 가고 있었다. 할머니가 혼자 사는 집은 강변과 용산역 사이에 있는 아주 오래된 빌라였다. 할머니의 집이 우리 집과 멀지 않아서 가족들은 자주 방문하곤 했다. 그 옆에는 용산역으로 이어지는 오래된 철길이 있었고 기차가 잘 다니지 않는 길이어서 좀 썰렁하게 느껴지는 편이었다. 내가 마포대교와 원효대교 사이에는 바위 같은 것이 하나 있다고 이야기하자 단비는 검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가만히 끄덕이며 우리가 향해 가던 할머니의 낡은 빌라를 가리켰다.


“여기야?”

“응”

할머니 댁의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갔을 때 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무래도 모임이나 운동을 하러 나가신 것 같았다. 나는 단비에게 벽에 걸려있는 그림들을 보여주었다.

“우리 할머니 작품이야.”

단비는 짧은 머리카락들이 흔들리도록 갸우뚱거리며 방안에 걸린 그림들을 유심히 보았다. 그 중에는 미인의 수묵화가 있었다. 단비에게 미인도와 나의 이름 이야기를 하려다가 왠지 시시해질 것만 같아서 관뒀다. 차라리 우리는 아무도 없는 할머니 집 안방의 찬 바닥에 누워서 서로를 만지다가, 뽀뽀하다가를 반복했다. 그러다가 왠지 할머니가 돌아오실까 내심 불안해져서 다시 집을 나섰다.

할머니에게 단비를 보여주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해서 아쉬웠다. 조금 허탈해진 마음이었다. 엘레베이터가 없는 낡은 빌라의 계단을 내려와 그 앞에 있는 작은 놀이터로 걸어갈 때 흐린 하늘에서 조금씩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가 많이 오지 않아 우리는 그냥 비를 맞으며 그네를 탔다. 그리고 다시 한강으로 갔다. 한강으로 걷는 길 위에는 지렁이가 많이 나와 있었다.

“엄청 길어.”

걷다가 보니 또 지렁이를 발견했고, 잊을만하면 또 바닥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단비가 지렁이를 하나를 집어 들고 나한테 던졌다.

꺅 소리를 지르며 도망가는데 입에서 침이 튀었다.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있어서 침인지 비인지 구분이 잘 가지 않았는데, 자꾸 입에서 무언가가 튀어 나왔다.

“돌 조각이야.”

단비가 내 입에서 튀어나온 조각을 주워들고 깜짝 놀란 표정을 짓다가 깔깔 웃었다.

“이것 봐.”

별안간 가슴이 몹시 아프게 느껴졌다. 나는 내가 강가로 가까워질수록 괜찮아질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욱신거리는 가슴을 움켜쥐면서 나는 펜스 쪽으로 다가갔다. 강에 더욱 가까이 가야할 것 같았다. 단비가 나를 붙잡았다. 나는 단비에게서 도망가려고 했다. 단비는 필사적으로 쫓아와서 나를 붙들었다.

“이야아아아”

이상한 괴성을 지르는 단비가 우스워서 나는 숨넘어갈 듯 웃었다. 단비를 껴안고 컥컥 기침을 하다가 웃다가 했다. 단비는 가슴을 움켜쥐고 몸부림을 치는 나를 세게 껴안았다. 나는 단비에게 이제 그만해, 웃으며 말했지만 단비는 그런 나의 눈을 정면으로 바라보면서 더욱 세게 붙들었다.

얼마나 세게 껴안았던지 집에 돌아와 잠옷을 갈아입으려고 보니 목이나 팔뚝 같은 데에 벌겋게 자국이 나 있었다.

그날 밤 생리가 시작되어서 나는 극심한 통증에 시달렸지만, 엄마는 내성이 생길 수 있다는 이유로 내게 진통제 하나 주지 않았다. 날이 흐려서 방이 어두웠다. 나는 투둑투둑 비 내리는 소리를 들으며 한강과 입에서 나온 돌 조각들을 떠올렸다.



6. 그림자


그 일이 있고 얼마 후 단비와 내가 한강변을 걷고 돌아오는 길에 키가 큰 남자애와 나의 어깨가 부딪치는 일이 있었다. 단비와 그 애가 시비가 붙어서 두 눈을 부릅뜨고 서로에게 험담을 해대는 바람에 나는 그들을 말리느라 진땀을 뺐다.

사실 그날은 단비와 오래도록 키스를 하고 싶은 날이었는데, 단비의 기분이 좋아 보이지가 않아서 눈치만 봤다. 그러면 안 될 것이었는데 집 앞에서 단비야, 뽀뽀하고 싶어 말했다. 단비가 다가왔을 때, 엄마가 멀리서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하마터면 엄마에게 들킬 뻔해서 단비를 밀쳐내고 말았다. 그리고 어두운 골목에서 흔들리는 단비의 눈동자를 살짝 보았다. 단비는 몹시 지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얘가 단비야.”

엄마가 다가오자 나는 조용히 단비를 소개했다. 엄마의 미간이 높이 올라갔다가 내려왔다. 그리고 잠시 뒤 엄마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네가 단비구나, 밥 먹고 가거라.”

단비는 아니요, 부모님이 일찍 들어 오라셔서요, 들릴 듯 말 듯 작은 목소리로 말하고 목례한 후 내게 눈을 맞추었다.

“조심히 가.”

내가 말하자 빠르게 뒤돌아서는 단비의 뒷모습이 저렇게 초라했나, 내가 아는 단비는 늘 씩씩하게 인사를 하고 떠났었는데, 생각했다.

“미미야, 너 단비가 좋으니?”

내가 곡을 연습하는 동안 엄마가 주방에서 별안간 크게 소리쳐 물었을 때, 나는 내가 연주를 멈추었으므로 그럴 필요가 없었음에도 덩달아 큰 목소리로 말했다.

“응, 난 단비랑 친해. 단비 좋은 친구야.”

엄마는 어느새 연주하고 있는 내 곁으로 와서 가만히 듣다가

“그래, 친하게 지내라.” 너무 살갑지도, 박정하지도 않은 투로 말하고 가버렸다.

그날 이후로 내 기분은 좀 시들해졌다. 왜인지 모르게 한동안 단비는 연락이 없었다. 나는 헛헛한 기분을 느끼면서 괜히 아는 남자애들에게 연락을 해서 두어 번 만나고 시덥잖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놀기도 했다. 그 아이들 중에서는 내게 관심을 보이는 애들이 있었고, 함께 분식집에 가서 떡볶이를 먹고, 한강변을 걷다가 손을 잡기도 했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면 참을 수 없이 텅 빈 기분이 들었다.


단비에게서는 미미야 뭐해, 하고 메시지가 왔지만 할 말이 모조리 고갈된 사람처럼 입이 건조하게 느껴졌다.

나는 내가 좀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더이상 단비에게 이야기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미미야 뭐해,

하는 메시지가 어떤 의미인지 뻔히 알면서도 나는 무감해졌다. 내가 뜸해지자 단비도 다시 메시지를 보내거나 집으로 찾아오지 않았다.

일주일 쯤 지났을까, 주말 아침에 참을 수 없이 잠이 쏟아지는 와중에 겨우 깨어나 밖으로 나갔을 때 날은 화창했고 하늘에 구름 한 점이 없었다. 비가 내릴 기미도 없이 날이 맑았다. 단비가 집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강에 갈래?”

낡은 거리의 모퉁이에서부터 단비는 나의 손을 꼭 붙잡았다. 한강을 향해 걸으면서, 하늘을 바라보면서 나는 문득 비가 내릴까봐 두려웠다. 화창한 날에 이렇게 가슴이 아픈데 비가 내리면, 조금이라도 하늘이 흐려져 버리고 말 때가 오면 정말로 참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우리는 한 마디도 말도 없이 멈추지 않고 한강을 걸었고 가야할 만큼을 다 걷고 나서는 소임을 다한 노동자들처럼 다시 돌아왔다. 방으로 들어가서 나는 종이쪽지를 썼다.

길을 걷고 있었는데 등 뒤에 그림자가 있는 거야. 빛이 나를 정면으로 비추니 그림자가 뒤에 있을 수밖에. 그림자가 옆으로 오기도 하고 – 이건 빛이 옆에서 비춰서겠지. - 뒤에서 비추니까 그림자가 앞서 걸어.


나는 밤에 다시 노크를 해서 단비를 불러내었다. 단비는 꽤 오랜 시간 동안 뜸을 들였다. 나는 단비가 기분이 상했을 만도 한데 가지도 않고 엉성하게 서성거리는 모습을 불안하게 지켜보았다. 그리고 아주 예상지 못한 시점에 단비는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나는 우는 단비를 내버려 두고 방으로 들어왔다. 눈물이 한 방울도 나지 않았다. 나는 목이 마른데도 물도 안마시고 텁텁한 입을 재차 다시며 침대에 누워 천장만 올려다보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모든 것이 괜찮아졌다. 나는 두려웠다. 보통의 날들은 나무 그늘 잎사귀 사이로 내리는 햇빛처럼 조심스럽게 내게로 왔다. 그 빛들은 나를 한 없이 불안하게 만들었다. 나는 불안하고 또 불안했으며 그럴 때면 한강으로 갔다.

얼마 후에 단비네 집이 이사를 가는 바람에 우리는 굳이 연락을 하지 않는 이상 예전처럼 만날 수 없었다. 나는 혼자가 되었고 몸 안에 자기장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비로소 확신하게 된 것은 그 즈음이었다. 산타할아버지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아이처럼 나는 분명해졌다.



7. 실과 바늘


나는 원하는 대학은 아니었지만 서울에서 중위권 정도의 평을 받는 학교의 작곡과로 진학을 했는데 좀처럼 학과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했다. 이상하게도 나는 학교에 적을 두지 못하고 대신 가연이의 학교 근처를 배회했다. 가연이는 공부를 잘해서 서울의 명문대에 장학금을 받아 갔는데 그곳에서도 교내 철학 동아리에 들어서는 자신과 비슷한 부류의 친구들을 만나 알아들을 수 없는 난삽한 토론을 즐기는 듯 했다. 우리의 학교는 거리 상 멀지가 않아서 나는 종종 그 동아리 방 사람들과 어울렸다. 나는 나를 ‘단비’라고 소개했다. 나중에 가연이 물어보긴 했지만, 나는 “그냥” 하고 얼버무렸다. 그 이후로 고맙게도 그는 모른 체 해주었다.

동아리 방이 있는 학생회관 건물 1층에는 하얀색 그랜드 피아노가 있었다. 그랜드 피아노의 새하얀 겉면을 가만히 바라보면서 ‘룰루랄라 피아노 학원’의 마지막 방을 생각했다. 마지막 방에 어울리지 않게 놓여있던 하얀색 그랜드 피아노를 떠올리면 나는 단비와 피아노를 생각하게 되었고 찌르르르 가슴을 누르는 이상한 통증에 시달렸다. 저녁 즈음 빛이 어스름하게 남고 인적도 없이 고요할 때면 그 자리에 앉아 피아노를 연주했다. 연습할 때만큼은 잡념이 없어서 마음이 편안했다.

그 즈음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2번을 연습하고 있었다. 현악기와의 협주 없이는 썰렁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손이 작은 나로서는 완성하기 어려운 곡이었지만 교수가 한번 해보라고 악보를 던져주었기 때문이었다. 피아노 옆에는 커다란 거울이 하나 놓여있었다. 거울을 통해 피아노를 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엄마가 다려 놓은 하얀색의 스웨터와 짧은 분홍색 스커트 아래로 검정색 스타킹을 신은 어린 여자가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었다. 그 어린 여자를 보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자꾸 눈길이 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어서, 나는 스스로가 나르시시스트가 아닐까 잠시 진지하게 생각했다.

종종 SNS를 통해 단비가 어떻게 지내는지를 확인했다. 단비는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군무원 시험에 합격했다고 들었다. 나는 그에게 짧은 쪽지를 썼다.

나는 죽은 것 같아. 죽은 사람에게도 그림자가 있을까. 실체를 잃어버린 날 위해 넌 영원히 그림자가 되어줄 수 있을까? 피터팬이라는 영화, 본 적이 있니? 거기서 피터팬은 그림자를 잃어버리지. 하지만 웬디는 그 그림자를 피터팬의 몸에 꿰매어 피터팬에게 달아 주거든. 계속해서 네가 나의 그림자였으면 좋겠다. 나는 실과 바늘을 가지고 있어.  

대학생이 되고나니 고등학교 때보다 많은 남자아이들을 만나게 되었다. 엄마는 늘 내게 여자는 몸을 조심해야한다며 외출을 할 때마다 신신당부를 했지만 나는 내 또래의 남자아이들에게 좀처럼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가연의 학교에는 미술사학을 전공으로 하는 학과가 있어서 나는 학점 교류를 신청해서 서양미술사 수업을 들었다. 가연과 더불어 어울리던 철학 동아리 친구들과 함께 듣는 수업이었지만 전공자가 많지 않아서인지 수강생 또한 많지 않았다. 더군다나 철학과 친구들은 자주 날을 새워가며 술을 마셨기에 수업에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 것도 예사였다. 마치 소수 정예 과외처럼 열 명 남짓의 학생들이 띄엄띄엄 둘러앉아 토론하는 수업이어서 학기가 끝날 무렵에는 거의 모든 사람들의 얼굴을 기억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나는 좀처럼 친해지지 못했다. 내가 소속되지 않은 곳에서 제3자로 소속되기를 바랐다. 제3자로의 정체성은 내 생활 속에서 부드럽고 단단한 소파처럼 견고해지고 있었다. 종종 데이트 신청을 하는 남자아이들과 예술의 전당이나 시립 현대 미술관을 들러 기획 전시를 구경하기도 했다. 할머니가 어려서부터 자주 보여주던 동양화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운 선의 모양과 그 힘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색들이 생동하며 춤추는 화려한 서양화들을 보고 있으면 마치 내가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를 발견한 것처럼 가슴이 뛰었다.


교수는 40대 중반의 미혼 여성 특유의 당당함과 히스테릭함을 두루 갖춘 것처럼 보였다. 그는 조교를 구한다고 했다. 강의가 끝나고 나는 연구실로 향하는 그를 따라갔다. 교수는 좀 쌀쌀맞은 듯했지만 나를 교수실까지 데리고 갔다. 조교로 발탁된 후로 나는 종종 교수와 함께 교수실에서 업무를 도왔다. 그의 조교로 일하는 것은 좋았다. 그의 고즈넉한 교수실에는 피아노가 한 대 있었고, 그 위에 올려놓은 디퓨저, 바질과 시트러스의 향을 내는 그것이 여러 악보들의 곰팡이 핀 냄새에 섞이어 기묘한 애착을 불러일으켰다. 창가에 놓인 화분 위로 촉촉하게 비가 내리고 날에는 방안에 냄새가 더욱 진하게 올라왔다. 이해할 수 없지만 이상하게 끌리는 냄새를 맡으며 작은 소임을 해나가는 시간에는 좀처럼 불안하거나 우울하지 않았다. 방에는 그림이 몇 점 걸려있었다. 나는 그 중에서 윈슬로 호머의 『여름밤』을 좋아했다. 내가 가만히 그 그림을 바라보고 있자 교수는“꼭 비가 내릴 것 같지?” 물었다.

우리는 교수실에 단둘이 있다가도 좀처럼 대화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좀 어색하기는 했지만 나는 한번 대화를 시작하면 말을 붙여준 점에 고마움을 느끼고 열심히 응하는 편이었다.

“바람이 불고 해가 지기는 했지만 아직 어스름한 빛들이 남아서 지평선이 넓은 풍경을 뒤로 하면 그 앞에 선 주인공의 모습이 실루엣처럼 보여요. 희미하게요.”

“아주 아름다운 그림이야. 바람이 불고 남자아이의 숱 많은 머리카락이 휘날리고.”

나는 단비를 생각했다.

“그 뒤에 나무들도 함께 흩날리고. 그 장면 속에는 분명 무언가가 있어요. 하지만 말로 표현을 할 수가 없어요.”

“이 무수한 엉겅퀴들. 하늘의 빛깔. 해가 다 져도 회색으로 빛나는 하늘의 잦고 슬픈 무늬.”

그날 저녁 나는 학생회관 건물 1층에서 눈을 감고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연주했다. 지나가던 학생들이 멈추어 서서 듣다가 다시 가던 길을 가곤 했다. 어쩌면 손끝으로 만들어내는 이 리듬만이 내게 가장 익숙한 표현 방법이었을지도 모른다. 연주를 마치고 교수실에 돌아갔을 때 교수는 없었다.


단비가 기다란 골목의 저편에서 내게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림자가 길게 드리운 길 위로 비가 내렸다. 가물었던 지난여름에 해명하듯 세차게 가을 소나기가 내렸다. 하늘이 깨질 것처럼 번개가 내리쳤다. 요란한 천둥소리와 함께 비가 내렸다. 나의 얼굴은 하늘을 향했다. 이 빗줄기는 지나치게 굵다. 나는 생각했다. 얼굴을 아프게 때리는 빗물을 향해 나는 입을 벌렸다. 아아. 단비. 나는 달콤한 빗물을 오래도록 입안에 받아먹었다. 나는 혀를 굴려 맛을 느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너무 많은 빗물을 마셔서 배가 불렀다. 배는 빠르게 불러왔다. 나는 구역질이 나서 빗물을 마실 수가 없게 되었지만 어느 새 배는 동산처럼 빵빵해졌다.


교수는 교수실의 소파에 깜빡 잠이 든 나를 깨웠다.

“여기가 수면실이니?” 교수는 핀잔을 주며 어디서 가져왔는지 새로운 액자를 걸었다. 여인의 수묵이었다. 두 손에 실과 바늘을 쥐고 있는 여인의 두 눈은 진주처럼 동그랗고 밝게 빛났다.

“정리하고 문단속하고 가라.”

교수가 떠날 때까지도 나는 잠이 깨질 않아서 잠이 깰 때까지 마치 눈먼 봉사처럼 수묵화를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가슴께가 욱신욱신 아파왔다.


잠이 깨자 나는 단비에게 전화를 걸었다. 거의 일 년 만이었다.

“내 쪽지 받았어?”

“아니. 못 받았어.”

“거짓말.”

“어, 거짓말 맞아.” 단비가 너무 곧장 대답을 하는 바람에 나는 내심 놀랐다.  

우리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나는 갑자기 스스로가 좀 한심하게 느껴져서,

“단비야, 날 이해할 수 있겠어?”

물었고,

“아니, 이해 못 해.”

말하고 나서 단비는 느리고 낮은 음성으로 흥흥 웃었다.


끝 (113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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