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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샘 Oct 21. 2020

시험관 시술 1차 도전

좌충우돌, 시험관 시술에 도전하다

왜 그리 울었을까? 2020년의 2월은 시리기만 했다. 2월 당시, 남편의 백내장 수술로 남편을 돌보기에 여력이 없었다. 남편이 어느 정도 회복이 될 무렵, 생리가 터졌다. 난임 병원을 갈지 말지 고민이 되었지만, 1달이라도 젊을 때 병원을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에서는 시험관을 시작하자고 하셨고, 과배란 주사를 처방해 주셨다. 그 당시 나는 휴직이 아니었기에, 소득 수준 자격에 해당되지 않아 지원도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갈등을 하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점심시간이어서 간호사분들께서도 분주하신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시험관 시술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배 주사 맞는 법을 간호사분께서 친절히 설명해 주셨다. 첫 번째 주사는 간호사분께서 놓아주셔서 수월했다. 문제는 집에 와서였다.


'흑, 내 배에 내가 주사를 놓아야 한다니.' 너무 싫었다. 내가 나에게 통증을 주는 거잖아! 맞을 주사는 또 왜 그리 많던지, 아침에 2대, 저녁에 1대 총 3대를 하루에 맞아야 했다. 가루약을 녹여 주삿바늘에 넣고, 주삿바늘을 바꿔서 배를 찔러야 했다.


둘째 날, 난 도저히 이 과정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아픈 건 둘째 치고, 배 주사를 놓는 것 자체가 너무 싫었던 것 같다. 울면서 친한 언니에게 전화했다.


"선생님, 도저히 시험관 못 할 것 같아요. 너무 힘들어요."


언니는 공감해 주었고, 주변에 시험관으로 힘들게 임신한 사례를 이야기해 주셨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마음이 진정되었고 이왕 시작한 것 끝까지 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매일 배에 주사를 놓는 것이 스트레스가 컸다. 저녁에 남편이 퇴근하고 운동을 하는데, 남편에게 불평을 쏟아놓다가 결국은 울음을 터뜨렸다. 아무 잘못 없는 남편은 나의 찡찡댐을 받아주느라 애를 써야만 했다.


용기 있게, 긍정적으로 맞닿아도 될 일을 나는 왜 이리 예민하게 반응하고 힘들어했을까? 우선은 내가 난임 여성임을 받아들이기 힘들었고, 시험관을 하면서 몸이 상할까 걱정되었고, 시험관으로 아기를 가질 수 있다는 기대감이 없었기 때문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무엇보다, 처음 겪는 일이라 불안감이 컸던 것 같다.


병원 예약일이 다가왔다. 병원 도착하자마자 피를 뽑았다. 피검사 없이 호르몬 분석하는 기구가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르몬 분석하는 기계, 내가 발명해 봐?'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해 본다. 피검사 후 원장님께서 초음파를 보시고 난자가 한 개가 자라고 있다고 하셨다. 보통은 5-10개는 자란다던데. 난자 냉동은 어려울 듯하다. 난자 한 개라도 제발 튼튼하데 잘 자라줬으면 하는 마음이 크다. 병원에서 간호사분께서 ivf-m 150과 오가루트란을 놔주셨다. 내가 놓는 것보다 더 아팠다. 난 엄청 조심해서 찌르는데 간호사분께 터프하게 놓으셔서 그런 듯하다. 그래도 내가 놓는 것보다는 간호사님께서 놓으시는 게 더 안심이 된다. 전문가시니까 말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난포 터뜨리는 주사를 맞는 날이 되었다. 저녁을 먹고 난 후, 알람이 울린다. 간호사분께서 이 주사가 가장 중요한 주사라고 하셨다. 제시간에 맞지 못하면 난자 채취를 일정대로 못 한다고 하셨다. 그 날 저녁 난포 터뜨리는 주사 포함해서 주사를 3대 맞았다. 남편이 지켜보는 가운데 모두 성공!


난자 채취를 한다고 생각하니 두렵다. 인터넷에 난자 채취에 관한 글들을 읽으니 마음이 심란해진다. 많이 아팠다는 내용, 입원했다는 내용 등 여러 사례에 걱정이 앞선다. 그래도 잘 해내리라 믿는다. 도전할 수 있는 게 얼마나 감사한가? '이유 있는 고생이라면 버릴 게 없다.'며 스스로를 다독인다.


드디어 난자 채취하는 날이 되었다. 오전 8시 30분까지 병원에 도착해 남편과 같이 난자 채취 관련해서 설명을 들었다. 수액을 맞은 후 화장실을 다녀오라고 하신다. 그리고 9시 10분경, 난자 채취실로 들어갔다. 생전 처음 보는 난자 채취실은 왜 그리도 차갑게 느껴지던지? 병실 안에 수술 의자가 무섭기만 하다. 예전 유산할 때 수술하던 그 의자가 생각난다. 그때, 내 팔다리를 다 묶었었는데. 수술 의자에 앉고 시술이 시작된다. 다행히 손을 묶지는 않는다. 대신 간호사분께서 내 손을 잡아주신다. 난자 채취 과정은 다음과 같다.



<난자 채취>


1. 소독: 따뜻한 솜으로 닦고 쇠 같은 것을 넣어 소독했다. 원장님께서 잘해주셔서 견딜만했다.

2. 국소마취: 소독 후 마취를 했는데 정신이 없어 마취주사 맞는지도 몰랐다. 나는 채취할 난자가 많지 않아 수면마취는 하지 않았다. 같이 간 분들 중에는 수면 마취하시는 분들도 계셨다.

3. 난자 채취: 난 난자가 두 개 있었다. 왼쪽에 위치한 난자 한 개는 채취 과정이 순조로웠고 오른쪽에 위치한 다른 난자는 조금 더 아팠다. 그러나 아팠던 난자는 크기가 작아서 난자로 인정이 되지 않았다. 결국 난자 채취 개수는 한 개.

4. 침대로 이동해서 안정을 취했다. 난자 1개가 제발 건강한 난자이길 계속 기도했다. 나는 난자를 많이 채취하지는 않아서 그런지 통증은 견딜만했다. 그런데 옆 침대에 계신 환자분은 많이 아파하셨다. '휴. 조금 더 아프더라도 나도 채취할 난자가 더 많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5. 난자가 어떤지 여쭤봤더니 난자 막이 있어 잘 모르고 수정을 해야 알 수 있다고 하셨다.

6. 화장실을 다녀온 후, 다시 난자 채취실에 들어가 거즈를 빼고 초음파를 확인, 다시 거즈를 넣어주셨다. 오후 5시에 거즈를 뺐다.



약으로는 항생제, 유트로게스탄, 질정을 처방받았다. 집에 돌아와 남편과 저녁을 먹었다. 남편이 이온음료를 사 주었다. 복수가 안 차려면 이온음료를 많이 마셔야 한다고 했다. 남편도 난자 채취 관련해서 인터넷에 이것저것 검색을 해 본 모양이다. 같이 걱정해주는 남편에게 고마웠다. 남편이 옆에 있으니 든든했다.


다음날 아침,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원장님이셨다. 난자질이 좋지 않아 수정란을 이식할 수 없다고 하셨다. 이렇게 1차 시험관 시술은 배아 이식까지 가 보지도 못한 채, 허무하게 종료되었다. 난 임신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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