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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샘 Oct 21. 2020

남편은 장난꾸러기

남편 덕분에 시험관 주사, 성공하다

연애할 당시 남편은 참으로 진중한 사람이었다. 농담을 하는 모습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이야기를 나눌 때면, 차분하고 조리있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가끔씩 통찰력있는 조언을 할 때면, 참 어른스럽고 지혜롭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보니, 남편은 완전 장난꾸러기이다. 어떻게 그런 장난기를 감추고 있었을까? 아니면 내가 눈에 콩깍지가 씌여서 못 발견했던 것일까?


남편의 장난은 시험관 시술 중에도 발휘되었다. 시험관 시술 첫날, 주사기를 받아들고 집에 와서 벌벌 떨며 내 배에 주사를 놓을 때였다. 인터넷에 시험관 주사 후기를 읽어보면 '남편들이 주사를 직접 놓아준다,' '같이 울어준다,' '괜찮은지 많이 걱정해준다,' 등의 믿음직한 남편의 모습이 많이 등장했다. 그런데 우리 남편은 울고 있는 나를 보며,

"에헤헤!! 겁쟁이다~~~!!!" 하고 놀린다.


'이거 뭐지?' 싶다. 조금 화가 나기도 하지만 주사를 배에 놓는데 집중한다. 혹시나 잘못 주사를 놓아 피가 나거나 멍이 들면 안되니까. 그런데 내 배에 바늘을 꽂는 것이 왜 그리 겁이 나고 무섭든지. 바늘이 배에 1cm, 5mm, 2mm, 1mm 점점 가까이 닿을수록 용기가 사라진다. 배에 바늘이 닿아서 바늘을 밀어넣는데 피부를 뚫지 못하고 멈추어 있다. 겁이 나서 세게 못 찌른 것이다. 공포감이 몰려온다. 주사를 맞는게 무서워서 울고, 주사를 맞아야 하는 사실이 서러워서 운다.


남편은 뭐가 그리 재밌는지 내가 배에 주사를 놓으려 애를 쓰며 울고 있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는다. 공포와 서러움이 '화'로 변한다. 남편은 사진을 내 카카오톡으로 보낸다. 사진 속에 나는 참으로 일그러진 얼굴로 울고 있다. 그런데 그 모습이 슬프기보다 코믹하다. 남편을 향한 분노에너지를 빌어 내 배에 주사 놓는데 성공했다.

'바늘이 배에 닿을 때가 무섭지 막상 밀어 넣으면 쑥 들어가는구나!'


남편 덕분인지, 때문인지 주사 놓는데는 성공했는데 기분이 뭔가 웃기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한다. 다른 남편들은 그렇게 다정하게 챙겨준다던데, 내 남편은 개구장이다. 완전 장난꾸러기. 이 어려운 시기를 이겨내기 위한 '해학적 장난'일까? 아니면 진심 내가 주사놓는 모습이 재밌어서 '놀리고 싶은 장난'일까? 아니면 반반일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해 본다. 어쨌든 남편 덕분에 시험관 주사 놓기 입문과정, 성공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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