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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샘 Oct 22. 2020

임신의 기쁨도 잠시

몸도, 마음도 아픈 유산


우리는 결혼을 했고 자연스레 자녀가 생길 줄 알았다. 그렇지만 자녀는 기대처럼 쉽게 찾아와 주지 않았다. 그러던 중 2017년 2월, 난 임신을 하게 되었다. 생리를 안해 이상하게 생각하던 중 임신 테스트기를 해 봤더니 두줄이 선명하게 나왔다. 너무나도 신기하고 설레기도 했다. '나에게도 아기가 생기다니' 이것은 세상의 성취가 줄 수 없는 특별한 경이로움이었다.


미세먼지가 가득하던 그해 봄, 꽃은 아름답게 만발했고 난 꽃들을 내 뱃속 아가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인터넷 어플에 산전 일기를 기록할 수 있는 어플을 다운받아 아가에게 일기를 썼다. 태명은 '은총'이었다. '은총아, 안녕? 엄마야." 하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써내려갔다. 병원에서 임신 확인서를 써 주셔서 보건소에 가서 임신도 등록했다. 보건소에서 엽산도 받고 임산부 보호 목걸이도 받아왔다. 남편에게 자랑을 하며 보여주었다.

              

아기가 잘 크도록 밥을 제때 챙겨먹고, 산책도 미세먼지를 피해서 열심히 했다. 같이 공부하는 대학원 선생님에게 임신 사실을 말했더니, 미세먼지 마스크를 선물로 주셨다. 그 따뜻한 마음이 고마웠다. 그리고 그 마스크를 쓰고 산책도 하고 좋은 생각만 하려고 애썼다. 고난주간이라, 새벽기도를 가야 하는데, 6시 기도라 무리가 되지 않을 것 같아서 새벽기도 가서 기도하는 시간도 가졌다. 은총이를 위해서도 기도했다.    

           

그러던 어느날, 의사선생님이 2주 있다가 오라고 하셨는데, 빨간 피가 비쳤다. 인터넷에 보니 빨간피는 좋지 않은 징조라고 했다. 그래서, 불안한 마음에 아침 일찍 산부인과를 갔더니 의사선생님이 굳은 얼굴로 초음파 사진을 보셨다. “괜찮나요?”하고 여쭤봤더니, “좋지 않네요. 유산 같아요. 아기집도 모양이 이상하고 난황도, 아기도 없어요.”라고 말씀하시는데, 눈물이 주체없이 흘렀다. 눈물을 좀 참을 수 있으면 더 좋았을텐데..나도 모르게 눈물이...


"유산인 것 같아요. 입원하셔야겠어요."


유산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난 유산을 경험했다. 남편과 엄마에게 전화를 했고, 남편이 조퇴하고 올라왔다. 오후 2시, 의사선생님께서 더 불안한 말씀을 하셨다. 아기 집 주변으로 출혈이 너무 심하다고..ㅠㅠ 아무튼 그 자리에서 바로 수술을 예약했다. 수술할지도 몰라 점심을 안 먹었는데 물도 금식해야 했다. 물을 12시경에 마신 것으로 인해, 4시에 수술을 하기로 했다. 국민행복카드도 아직 수령하지 않은 상태라, 카드사에 문의를 해서 가까스로 6시경에 남편이 집에 가서 받아오기로 했다. 대학원 과제와 논문 생각에 난 기다리는 시간도 마음이 불안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컴퓨터를 가져오는 것을...' 그런 와중에도 이런 생각을 하다니 공부에 집착하는 내 자신이 한심했다.


4시가 되었고, 수술실로 이동하는데 너무 무서웠다. 수술대기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조금 기다리다가 수액을 맞으러 수술실로 오라고 했다. 수술실 의자에 앉았는데 너무 무서웠다. 수액을 놓는 간호사님이 왼손에 주사바늘을 두 번 꽂으셨는데 혈관을 못찾으셔서 다시 오른손에 주사바늘을 꽂으셨다. 눈물이 막 흘렀다. 유산인 것도 너무 슬펐고, 수술을 하는 것도 너무 무서웠다. 간호사분이 울지 말라고 울면 마취하고 호흡에 방해가 된다고 해서, 마음을 독하게 먹고 울음을 참았다. 호흡기를 입에 설치하고 손발을 묶으셨다. 의사선생님이 도착하자 다리가 저절로 덜덜 떨렸다. 간호사님이 마취를 하시며 숫자를 따라 세라고 하셨고, 10, 9, 8,...5정도 세고는 정신을 잃었다.


깨어보니 아까 왔던 수술대기실에 내가 누워있었고, 남편이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너무 배가 아팠고 화장실에 가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손이 파랬고 정신이 어질어질했다. “화장실 가고 싶어..아, 배아파..”를 반복하자 남편이 잘 들어주고, 손도 주물러 주었다. 하루 입원하기로 결정하고 입원실로 이동했다.


입원실 가자마자 화장실에 갔으나 일을 볼 수 없었다. 그 때 간호사님이 들어오셔서 지혈했던 솜을 제거했고 그 후로, 그토록 가고싶었던 화장실에 갈 수 있었다. 아픈 통증을 화장실 가고 싶은 것으로 착각했던 것 같았고 수술후 맞았던 진통제 덕분에 통증이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했다.


금식을 해서 너무 배가 고파 어떤 음식이라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막상 음식이 나오자 속이 미식거려 거의 먹을 수 없었다. 침대에 누워서 쉬다 밤이 되어 잠을 자려는데 구토가 났다. 화장실에 가서 살짝 토하고, 계속 토할 것 같아 중앙 데스크에 가서 말했더니 주사를 놓아주셨고 속이 진정되었다. 그리고 잠을 억지로 청하며 밤을 보내었다.


퇴원 후, 전복찌개탕을 점심으로 먹고 이불을 새로 사서 집에 돌아왔다. 남편이 저녁을 준비하는데 미안했다. 그리고 밤에는 엄마가 오셨다. 엄마와 남편이 곁에 있으니 그들의 온기로 내 몸도 마음도 편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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