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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샘 Oct 21. 2020

집 지키는 강아지마냥

집 지키는 아내도 사랑이 필요하다

휴직이라 하루 종일 집에 콕 박혀있다. 아침, 점심을 혼자 먹고 저녁은 남편이랑 먹을 생각에 저녁을 부산스럽게 준비한다. 남편 퇴근시간이 가까워져 오면 남편이 오는지 안 오는지 목을 빼며 기다린다. 그런데, 오늘도 역시나 남편은 야근이다. 일 하느라 바쁜 남편은 연락이 잘 되지 않는다. 내가 전화를 먼저 걸면, "아, 지금 아직 일이 덜 마무리됐어요. 8시에 갈게요."라고 한다. 그럼 난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냉장고의 음식을 주섬 주섬 꺼내 먹는다.


드디어 남편이 온다. 집 혼자 지키는 강아지는 주인이 오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반갑게 주인을 맞는다. 그런데 나는 눈이 삐죽, 입도 삐죽이다.

"왜 이렇게 늦었어요?"

섭섭한 마음이 남편이 와서 반갑고 기쁜 마음을 KO승 시켜버렸다.

섭섭한 마음, 승리!


남편 밥을 차려주고 남편 밥을 먹는 것을 앞에서 본다. 이미 이것저것 먹었기에 배가 애매하게 부르다. 괜히 심술이 나서, '나 일하는 것 좀 보라!'는 듯 집안일을 한다. 낮에 해도 되었을 텐데, 굳이 저녁까지 미뤄 둔 빨래 개기, 빨래 건조기 돌리기, 쓰레기 분리수거 하기, 음식물 쓰레기 버리기 등 집안일에 부산스럽게 움직인다. 그런데 남편이 아무 반응이 없으니, 열 받아서 쿵쿵거리며 나가다가 쓰레기 일부분을 엎질렀다. 그리고 여러 불평불만을 쏟아놓는다(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하고 싶지 않다. 내가 집안일 다 한다는 둥, 내년에는 나도 일 할 거라는 둥, 여러 불평불만의 이야기였다.)


쓰레기를 버리고 돌아오는 길에 생각해 보니, 내가 말이 좀 심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섭섭한 마음이 내 이성을 놓아주질 않는다. 집에 들어오니, 참았던 울음이 터진다. 그래도 자존심이 있어 남편과 마주치고 싶지 않다. 화장실에서 평소보다 더 길게, 손 발을 씻는다.


실은 남편은 늦게 퇴근하고, 고장 난 헤어드라이기를 사러 여러 마트를 돌아다니다가 늦게 집에 왔다. 그래서 미안한 마음, 안쓰러운 마음도 있지만, 내 섭섭한 마음이 아직도 고집스럽게 나를 붙들고 있다. 남편이 이리 와서 이야기 좀 하자고 한다. 남편은 집에 오는 길에 산 만두를 전자레인지에 돌리고 우유를 식탁에 차려놓았다. "김치 만두 좀 먹을래요?" 밤 11시, 늦은 시간이지만 허기가 진 난, 만두를 먹기로 한다. 김치 만두가 맛있어서, 만두가 더 먹고 싶어 진다. 고기만두를 더 전자레인지에 돌려 남편과 나누어 먹었다. 만두를 먹으며 우유를 마시니 그리도 고집스럽던 섭섭한 감정이 녹기 시작한다. 드디어 이성이 작동한다.


[나] "여보, 내가 찡찡대서 미안해요."

[남편] "찡찡이, 괜찮아요?"

[나] "만두 맛있네. 만두 먹으니, 다시 기분이 좋아졌어."

[남편] "왜 화났어요?"

[나] "나 아침도 혼자 먹고, 점심도 혼자 먹고, 저녁도 여보가 늦게 와서 저녁도 대충 혼자 먹었잖아요. 혼자 있으니까 밥맛도 없고, 밥을 제대로 안 먹으니까 어지럽고 힘들어."

[남편] "밥을 잘 챙겨 먹어야지. 혼자 먹기 힘들면, 점심은 우리 엄마 집에 가서 먹어요. 아니면 내가 회사 그만두고 같이 밥 먹을까?"

[나] "아니, 그러지 말고. 내가 밥 잘 챙겨 먹을게요. 내가 잘 챙겨 먹으면 되는 일이지."


나의 섭섭함은, 만두 2개(김치만두 1개, 고기만두 1개)와 우유 한잔에 KO패 당했다. 마음이 따뜻해지면서 행복감이 다시 찾아왔다. 이렇게 사람이 단순하다니? 만두 2개와 우유 한잔으로 기분이 좋아진다면, 나 자신을 위해 맛있는 것을 계속 대접해줘야겠다. 실은 화를 낼 대상은 남편이 아니라, 내게 밥을 제대로 못 챙겨준 내가 아니었을까?


난임 휴직으로 집에 강아지처럼 하루 종일 있는 것은 좋기도, 싫기도 하지만 이런 평범한 일상이 내게는 참으로 소중하다. 만두 2개, 우유 한 잔은 내 마음을 풀어줄 수 있는 마법이었을까? 실은 남편의 따듯한 배려와 사랑이 내 마음을 녹여준 것 같다. 집 지키는 강아지도, 집 지키는 아내도 사랑이 필요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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