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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샘 Oct 22. 2020

채식주의자를 꿈꾸지만

난 채식주의자를 꿈꾸는 보통사람이다

처음 난임을 진단받았을 때였다. 학교에서 근무 중이었는데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임신 관련 피검사 결과가 나왔다고 알려준다고 한다.

"난소 나이가 많아요. FSH(난포자극 호르몬, folicle stimulating hormone)도 높은 편이고요."

그 말을 듣고 학년 연구실에서 나와 아무도 안 보는 곳을 찾아가 통화를 하는데, 눈물이 저절로 흘렀다. 그래도 침착하게 마음을 붙들고 계속 이야기를 했다.

"아직 나이는 젊은 편이니, 노력하면 좋은 결과 있을 거예요. 우선, 고기랑 야채를 많이 드세요. 비타민 D가 많이 부족하네요."


그때부터 나는 임신을 위해서 영양을 고루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아갔다. 우리 집은 영양제 부자가 되어 갔다. 엽산만 먹던 내가 비타민 C, D, 칼슘, 코큐텐, 미오이노시톨, 오메가 3를 먹기 시작했다. 영양제는 생각보다 많이 비쌌다. 그렇지만, 임신에 좋다는데 돈을 아낄 때가 아니었다.


식사도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임신을 위해서는 균형 잡힌 식단은 필수적이다.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무기질, 비타민을 골고루 섭취해야 한다. 늘 끼니를 대충 때우던 내가 조금씩 먹는 것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끼니에 단백질을 꼭 넣으려고 노력하고 신선한 야채도 비싸지만 사 먹기 시작했다.


블로그에서 난임 관련 글을 검색하다가, 시험관 시술을 1차에 합격하신 분이 매일마다 전복을 먹었다는 글을 읽게 되었다. 때마침 내가 해안가로 이사를 왔기에 신선한 해산물에 접근하기가 용이했다. 마트에 갔더니 싱싱한 전복이 움직이고 있었다. 전복 네 마리를 사들고 집에 왔다. 보통 전복을 샀을 때는 냉동상태이거나 거의 움직이지 않는 상태라 요리하는 데 어렵지 않았는데, 이 전복은 살아있어서 손질하기가 망설여졌다. 전복이 살라고 서로 꽉 붙어 있고, 내 손이 닿자 몸을 움츠리는 것이 불쌍했다.


전복을 하나 떼어 내어 칫솔로 검은 때를 박박 문질렀다. 이 과정은 괜찮은데, 문제는 이빨을 제거하는 과정이다. 가위로 이빨을 제거하려고 하자 괴로운 듯 움츠리는 전복을 보면서 마음이 너무 아팠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미안해, 미안."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하며 이빨을 제거했다.

휴.. 나 좋자고 살아있는 생명체를 희생시키는 것이 괜스레 마음이 아팠다.


실은 우리가 먹는 고기도 도살되어 나왔을 것이고, 물고기도 잡힌 채 냉동되어 나왔을 것이다. 직접 요리를 하지 않을 땐 아무 생각 없이 먹었는데, 직접 요리를 하니 생물들이 안쓰럽고 여러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마트에 놓인 소고기를 볼 때, 소가 고통스럽게 도살당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스님이 생각난다. 스님들은 채식을 한다. 인터넷에서 스님들이 왜 채식을 하는지에 대한 내용을 찬찬히 읽어보았다.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살생을 금하기 때문인 듯하다. 예전에 미국 학교에 실습을 갔던 적이 있었는데 내가 갔던 반 선생님도 채식주의자였다. 왜 채식을 하는지 물어봤더니, 어릴 때 소가 도살당하는 과정을 학교에서 비디오로 본 후로, 채식을 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채식주의자가 될까? 잠시 생각해본다. 나 좋자고 다른 생물에게 고통을 주고 싶지 않다. 엄격하지 않은 채식의 경우 계란이나 우유 및 유제품은 괜찮다는데, 그렇게 해 볼까? 이런저런 생각이 들지만 막상 채식을 실천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그렇다면 난 그 전복을 먹지 않았는가? 미안한 마음과 함께 전복을 맛있게 먹었다. 단백질이 필요하다니 돼지고기가 들어간 김치찌개도 끓여 먹는다. 조기도 프라이팬에 구워 먹는다. 세상을 살아갈 때, 이상은 높아 채식을 지향하지만, 현실에서는 이것저것 건강을 위해 다 위해 먹는 난 대한민국의 보통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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