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같은 가설.

가설 속에 묻힌 나.

by 정수희

이천 년.. 밀레니엄이 막 들어선 분주한 때에
긴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 준비해 두면 좋다는 가족들의 권유로 운전에 도전하고 면허증을 어렵사리 취득했다.
하긴 당시에는 도전이라기보다는 의례적인 과정 중 하나로 취득을 했다.

평소 놀이동산에 가도 어린이용 놀이기구도 불안해 탈 수 없던 내가 도로 한복판에서 운전을 한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먼저는 겁 많고 고소공포증이 있는 내가 누군가를 다치게 안 하고 또 물리적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었기 때문에 운전 자체가 공포스러웠다.

그럼에도 당시에는 꼭 해야만 하는 시험 같았다. 우여곡절 끝에 면허증을 받고 십수 년을 장롱 속 지갑에 고이 모셔놓았다가 몇 해 전부터 운전을 하게 되었다. 이것 또한 지인을 통해 어쩔 수 없이 운전대를 잡게 된 것이다. 일주일에 두세 번 시간을 내어 주행 연습을 같이해주는 정성에 못 이겨 나가게 된 것이 내 운전의 시작이었다.
결국 거절 못하는 내 우유부단한 성격이 만들어낸 긍정적 결과라고 봐야 할지도 모른다.

이렇게 '자동차'라는 거대한 물건과 '도로와 사람들'이라는 위험천만한 상황을 매일마다 직시하며 매일 도전적인 모험을 해내고 있다.
어찌 보면 과거에는 상상치 못할 일을 지금 아무렇지 않은 듯 누리고 있는 것이다. 겁 많던 나는 내 안에 질주본능 있다는 것도 이제야 알았다. 우습게도 말이다.

운전을 통해 '겁이 많다'라는 사실 같은 가설이 내 안에 존재하고 지배하고 있었다는 것을 마흔이 가까운 나이에 깨닫게 된 것이다.

어떤 일들은 그 안에, 그 상황 안에 들어가 봐야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사실 같은 가설'

얼마나 많은 가설이 나를 조정하고 있는가
두려움으로 위장하고 '나는 할 수 없어'라고 말하고 있는가

진짜 사실을 알고 나면 두려움과 좌절로 허비한 시간들을 안타까워하며 어리석음으로 한탄할지도 모른다. 나처럼....

이제.. 나를 스스로 보는 시간을 갖자. 그리고 거짓으로 숨겨진 내면의 가능성을 찾아보자.

아주 적은 가능성이라도 좋다.
이 작은 도전과 성공이 더 큰 도전과 성공을 이끄는 힘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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