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무이 어릴 적

by 정수희

가끔씩

아주 가끔씩 어무이 어릴 적 이야기를 듣는다.

유독 어무이를 예뻐하던 할아버지는 엄마가 무릎에 앉아야만 할머니에게 봉급을 내놓을 정도로 어무이를 무척이나 사랑했다 한다. 그럼에도 할아버지는 여리고 조그마한 할머니와 줄줄이 철없는 네 남매를 내버려 두고 새로운 인생을 찾아 떠나셨다고 한다. 사실, 지금도 초본에 외할아버지의 부고기록이 없는 걸 보면 길에서 객사하셨거나 알 수 없는 곳에서 외로이 돌아가셨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그 어여삐 여기던 큰딸은 어깨에 가장이라는 큰 멍에를 메야하는 처지에 놓였다. 이것이 그 도도하던 어무이를 험난한 인생길로 들어서게 한 시작이었다. 학업도 마치지 못하고 생계를 유지하던 어무이에게 처갓집 식구들까지 책임지겠다며 호언장담한 우리 아버지는 당시에 무척 신뢰하고 싶은 대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무도 책임질 수 없었다.

스스로가 그러했고 시대가 그러했고 가진 것이 전혀 없었다. 마음이 있었을지는 모르나 환경이 녹록지 않았기에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어무이는 짧지만 큰 사랑받았던 탓일까, 아님 반대로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은 까닭일까 어무이는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의 아깝지 않게 사셨다. 늘 치열했고 늘 밝았다. 그리고 그 척박함 속에서도 하이틴 소설을 즐겨보는 소녀로 존재했다.

일흔이 된 그 소녀가 이제 한시름 놓게 되었을 때 병마가 찾아왔다. 이제 고작 잠시 쉬려는 참인데 말이다.

어무이는 과거의 일들을 즐겨 말하지 않는다. 그냥 오늘에 만족한다. 그간 걸어온 인생의 지혜 같기도 하다. 오늘을 충실히 사는 것, 그러면 됐다고 말씀하신다.

오늘 잘 지내면 된다고 나는 염려 말라고...

늘 나를 위로하는 어무이에게

나는 숨 가빴던 어무이의 삶에 대해 대견하다고 위로, 격려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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