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한 때 얕게 내리던 비가 그쳤다.
뒷산에선 능선과 계곡을 따라 안개가 짙게 피어올랐다. 모래사장은 모처럼 비를 가득 머금었다.
한달만에 겨우 내린 비, 한달만에 겨우 보는 짙은 구름. 모름지기 땅의 것들은 담수를 머금어야 했나보다.
수억의 해수를 품고 있더라도 말이다.
아무리 해수가 파도로 잘게 부서져 바닷내와 소금기를 흩뿌려 놨어도, 땅은 단 한 번의 비로 눅눅한 흙냄새를 풍겨 주었다. 바다의 일부가 아닌 땅의 일부임을 자랑스레 드러냈다.
해변을 따라 늘어선 해송은 걸음걸음마다 새벽에 머금은 빗방울을 떨어뜨린다. 바닥에 폭신히 깔린 솔잎은 어느때보다 더욱 폭신했고, 솔향은 덩달아 짙게 번졌다.
너는 앞서가고 있었다.
바닷바람이 아직은 차다면서 양 손을 호주머니에 푹 찔러 놓고는 배시시 나를 향해 미소 지어보였다.
앞선 너는 뒷걸음질을 치다가, 문뜩 다시 앞을 향해 가다가, 호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핑그르르 돌다가, 팔을 벌렸다가, 오므렸다가 하며 재잘거렸다.
온 몸의 기관이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습윤한 바람이, 그늘진 하늘이, 푹신한 바닥이, 산뜻한 향기가 너를 감싸 안고 있었다. 네가 날아갈까 무서웠다. 완전해 보이는 하루가 너를 데려갈까봐 조금 걱정됐다.
네가 항상 얘기했던 금란조가 생각났다. 어느 날 딱 하루, 창을 열어 놨는데 그날로 날아갔다는 그 새가 말이다. “날아야 하는 것들은 날아야 하니까. 본성을 막아선 안되니까. 그 끝에 무엇이 있다하더라도 절대로 막아서는 안되지, 차라리 잘됐다”고 너는 그렇게 얘기했다.
나도 그렇게 해야할까.
너를 이대로 완벽한 하루에 실려 보내는 게 맞을까. 돌아오라고 소리쳐 보는 게 맞을까. 확실한 건 ‘날아야 하는 것들이 날아야 하듯이’, ‘자유로운 너는 자유로워야 했다’.
나를 떠나지 않는 것도, 떠나는 것도 자유요. 어떤 일이든 하는 것도, 하지 않는 것도 자유인데 나는 너를 몰아붙이고 있진 않은지 걱정됐다. 우리의 공간이라고 말하는 곳에 내 욕심이 채워지고 나면, 네가 둥지틀 곳은 남아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내 욕심이 네 욕심이 되는 것이 옳아 보이진 않았다. 내가 원하는 삶의 모습이 네가 원하는 삶의 모습이 되는 것 또한 옳아 보이지 않았다. 거기에 맞춰 달라, 얘기하는 것은 옳지 않다.
너는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더 가볍게 날개를 달았다. 디딤발이 채 떨어지기 전에 디뎌 올라가고 있었다. 고민은 내 몫이었지만, 결정은 내 몫이 아니었다. 날아가야 하는 것들은 어디에 묶어 두어도, 때가 되면 날아 가듯이 너 또한 마찬가지일 터이다. 날아가는 그 때가 오면, 지금처럼, 날아가려고 한다 해도, 그때에도, 연이었음을 기억하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었다.
2020년 10월. 강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