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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책을 사겠어, 계속 좋아지는 책을 위해

살때마다 좋아진다

by 정희정

내가 태어나고 자란 경북 구미에는 큰 백화점이 있었다. 엄마와 동생들과 돈가스를 먹으러 자주 갔다. 에스컬레이터를 당시에는 낯설어 타는 걸 힘들어했다. 7살 정도의 어린 나이였고 백화점에 돈가스를 자주 먹으러 갔던 기억이 있다. 백화점 맨 위층에는 서점이 있었다. 크지 않은 작고 아담한 서점. 지금 생각해보면 서점이라기 보다는 상품 진열코너 중에 약간의 공간에 책이 꽂혀있는 공간이었던 것 같다. 그 공간에서 동생과 나는 책을 구경하기도 했다. 그 당시 동그라미로 시작해서 따라그리기가 재미있어 보였고, 그 책을 사고 싶었다. 그런데 당시의 나는 용기가 없었던 것인지, 엄마에게 사달라고 말하지 못했다. 결국 나는 그 책을 훔쳤다. 지금에서야 말하지만 책을 훔친 건 그때가 처음이고 마직막이다. 책이 너무 갖고 싶었고 옷안에 슬그머니 감추어서 훔친 것이다. 그것이 나쁜 짓인지 알고 절대 해서는 안되는 행동인 건 알았지만 결국 그런 행동을 저지른 것이다.


가슴이 쿵쾅쿵쾅 거렸다. 그 후 부모님에게 솔직히 자백을 했는 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지금에서야 어릴 적 내실수를 인정하고 잘못한 행동을 한 것에 대해서 자백을 하고 싶었다. 바코드를 찍는 기계가 없었을 것이고 책은 갖고 싶었을 것이다. 용기내어 책을 사고 싶다고 말하면 흔쾌히 사주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부모가 되어보니 책 한권 사주는 것이 그렇게 쉽지도 어렵지도 않은 걸 안다. 내가 어릴 적 책을 못 산 것이 후회가 되니, 아이에게 가능하면 원하는 책을 살 수 있도록 많이 지원하는 편이다.


구미의 작은 서점에는 내 친구가 자주 들렀다. 약속시간에 기다리거나 잠시 시간을 보내기위해서 서점에 들르기도 했다. 그리고 구미의 오래된 도서관에는 오래된 책들이 많이 있었고 오래된 향이 있었다. 도립도서관이라 지은지 오래되었고 헌책, 손때가 많이 묻은 책들도 있었다. 책장에 빼곡이 꽂힌 책들 사이에서 재미있는 책을 고르기는 쉽지 않았다. 책과 친하지 않았고 책을 고르는 방법도 몰랐다. 이런 저런 책을 펼쳤지만, 그저 그때그때 필요한 지식들을 찾고 덮었다. 내 진심으로 보고 싶어서 빌린 책은 연애소설 뿐이었다. 당시에 나 이외에 내 친한 친구와 내 여동생은 의외로 책을 좋아했다. 내 친한 친구 덕분에 연애소설을 빌려보게 되었고 시리즈물을 차례로 보게 되었다. 추리소설이나 소설류도 가끔 빌려읽기도 했다. 여중여고를 다니면서 남자아이들과 친하게 지낼 기회가 없었다. 자주 만나고 대화해보고 남녀사이에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면서 지내고 싶었는데, 그럴 기회가 없었다. 그러다보니 남자아이에 대해, 남자에 대해 혼자 상상만 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특히 연애소설은 그렇지 않은가? 모든 남자가 튼실한 어깨에 늠름하고 후광이 비추는.. 뭐 그런류의 묘사가 주를 이룬다. 여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허리는 잘록하고 가슴은 풍만한.. 현실과는 와닿지 않는 외모와 상황에 대한 묘사가 아주 세밀하고 자세히 되어 있다. 그렇다보니 나는 허구의 상상을 하기도 했었고 나중의 내 남자친구, 남편에 대해 헛된 상상력으로 현실과는 동떨어진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약 3년 전. 크게 교통사고를 당했다. 방문을 하던 중에 뒤차가 나를 들이받는 3중 추돌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내차는 앞뒤로 찌그러지는 사고를 당했다. 나는 몸이 확 접히면서 온 몸이 경직이 되었고 이후 2주가까이 한방병원에 입원해있어야 했다. 물리치료를 받고 아침 저녁으로 삼시세끼 챙겨주는 밥을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한방병원도 오래된 곳이었지만 대기실에는 책이 있었다. 굉장히 무료한 하루하루였다. 대기실에 꽂힌 책들도 무료했다. 너무 오래된 책들 뿐이었다. 나는 새 책이 읽고 싶었다. 도서관에 가면 신간도서를 제일 먼저 훑어본다. 신간서적들을 읽으면 최근 동향을 알 수 있고 새로운 생각과 새로운 의견을 접할 수 있다. 무엇보다 남이 걷지 않은 눈길을 맨처음 밟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새 책장을 넘기는 기분은 이루말할 수 없이 좋았다.

새책 사는 날은 언제나 좋다. 매일 매일 신간은 들어온다. 매대에 진열되어 있는 책도 좋지만, 책장에 꽂혀있는 책을 발견하는 기쁨도 크다. 별 생각없이 제목을 보고 집어들었는데 의외로 나와 맞는 책이 있다. 그런 책을 발견하면 가슴이 쿵쾅거린다. 한 구절, 한 페이지를 읽다보면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책은 바로 구입한다. 정해진 예산 안에서 해결해야 하는 경우, 아쉬운대로 사진으로 찍어둔다. 책 제목만 찍어두면 집에서 온라인으로 주문해도 된다. 그 때 살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 책들이 있다. 그럴 때 제목을 모른다면 낭패다. 그럴 때를 대비해서 조금이라도 마음에 드는 책이 있다면 늘 사진으로 찍어둔다.

책을 사는 이유를 만든다. 월급 들어온날, 술김에 용기로 지르기, 사은품 굿즈를받기위해. 어떤 이유든 좋다. 우리는 온라인으로 책을 살 때는 제목으로 구입하는 경우가 많다. 미리보기 기능이 있으면 좋은데, 그마저도 없다면 책 제목을 보고 책 소개를 보고 구입해야 한다. 살까? 말까? 고민되는 책들이 있는데 일단 장바구니에 넣어둔다. 월급이 들어오면 정해진 예산 안에서 책을 지른다. 5~10권 가까이 되는 책을 구입하기도 한다. 아이가 보고싶다고 한 책도 있고 새로나온 신간 중에 아이가 좋아하겠지? 생각한 책도 장바구니에 넣어둔다. 그냥 주문하면 나중에 관심도 없고 안보는 경우가 생긴다. 주문하기 전에 꼭 아이에게 의견을 물어본다. 이거 살까? 말까? 그러면 아이는 이거 살래, 혹은 아니 이건 안사도 돼. 답해준다.

김포에는 큰 대형서점이 없다. 그래서 일산의 교보문고에 자주 간다. 시민들의 의식에는 서점이나 문화시설의 영향이 매우크다. 특히 도보나 지하철로 가까운 거리에 자주 접할 수 있는 곳에 서점과 책방들이 즐비했으면 좋겠다. 그 한가운데는 도서관이 지역주민들과 가장 가까운 곳에 중추적인 역할을 이끌어야 하지만, 지금의 상황에서는 어려운 점이 있다. 그런 사각지대에 책방이나 서점이 (편의점보다는 더 자주) 눈에 띄이고 접할 수 있으면 좋겠다.


고개만 돌리면 눈에 띄이는 카페나 편의점처럼, 우리 일상 곳곳에도 책이, 서점이, 책방이 눈에 띄이는 거리가 만들어지기를 바래본다. 최근 방문한 이마트 트레이더스 식당코너에는 눈에 띄는 배치가 있었는데, 바로 소파와 같은 편안한 자리와 그 곁을 둘러싸고 있는 책들이었다. 진열식, 전시만 되어 있는 책이 아니었다. 2단 짜리의 길게 짜여진 책장 안에는 빼곡이 책들이 자리해 있었다. 웹툰, 만화책처럼 단시간에 빠르게 읽을 수 있는 책도 있었고 전면 배치가 된 책도 있었고, 다양한 책들이 식당코너 곳곳에 비치되어 있어 놀라웠다. 구매하는 책도 아니었고 보고 제자리에 가져다 놓으면 되는 방식이라 더욱 반가웠다. 누구의 아이디어 인지 모르겠지만, 책과 가까이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 것에 대해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눈에 보여야 읽는다. 손이 가요 손이 가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말이 있다. 눈에서 보이면 자꾸 보게 된다. 손이 가게 된다. 손이 가게 되면 책을 펼치게 된다. 책을 펼치게 되면 읽게 된다. 읽다보면 재미있어진다. 책이 재미있어지는 환경이 그래서 중요하다. 어른이 되어서 책이 좋아지는 계기도 생긴다. 어린 시절부터 책을 가까이하더라도 멀어지는 경우도 생긴다. 책이 좋다가도 싫어지는 경우도 생긴다. 그러다가 다시 책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밭에 씨를 뿌리듯이 나는 장바구니에 씨를 뿌려놓는다. 주문하면 책이 도착하고 책을 읽으면서 씨앗이 싹튼다. 그 씨앗이 어떤 싹으로 뻗어 나갈지는 지금 당장은 알 수 없지만, 훗날 다양한 책들을 접하면서 내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좋아하는 것이 보이고 꿈이 생길 것이다.


엄마도 지금 꿈을 꾸고 있고 어떤 자양분이 되어 나에게 돌아올지 모른다. 그저 묵묵히 책을 고르고 또 책을 읽다보면 촉촉이 내 땅을 적셔주고 싹을 틔워주고 내 꿈을 키워줄 것이다. 엄마는 꿈이 없는 것이 아니라, 아직도 꿈을 꾸고 있다고. 엄마도 하고 싶은 일이 많고 꿈을 키워가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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