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고민은 오래도록 했다.
우리집에는 큰둥이, 작둥이가 있다. 일곱살 터울로 둘째가 태어났다. 집에 아이들을 돌보러 와주시는 돌보미 선생님이 언젠가 말했다. 단점을 찾아보기 힘들다고. 일곱살 터울이라서 좋은 점만 눈에 보인다고 말이다. 일곱 살 터울이라 둘째는 한없이 아기처럼 느껴지고 첫째는 비교가 되어 크게 느껴진다. 첫째와 데이트를 하면 한없이 아기같고 또 귀엽고 이쁘기만 한데, 함께 다같이 있으면 또 큰 어른이가 되어버린다. 내가 보기에만 그럴까?
침대에서 꽁냥꽁냥 노는 자매. 서로의 얼굴을 만지고 꼬옥 끌어안기도 한다. 투닥투닥 소리지르기도 하고 서로 목청높여 다툴때도 있다. 첫째는 맞아도 참고 울음을 터뜨린다. 둘째를 나무라면 입술을 삐죽 내민다. 이제 제법 말귀를 알아듣고 '싫어 싫어~' 표현을 하는 둘째다.
첫째는 슬라임을 너무 좋아하고 진심으로 아낀다. 그럼 둘째는 같이 옆에 붙어서 달라고 떼를 쓴다. 지금은 입에 넣을때가 지나서 다행이지만, 여전히 조물락거리다가 옷에 묻힐 때가 많아 가능하면 옷에 덜 묻는 슬라임으로 둘째 전용으로 함께 사둔다. 언니껄 좋아하는 게 많다. 사용하던 색연필도 사인펜도 모두 동이 난다. 뚜껑을 열고 닫는걸 좋아하고 안 닫아놓고 한번 색칠을 하기 시작하면 두 동강이 나도록, 다쓰도록 칠을 한다. 언니 전용 크레파스, 물감이 둘째에게 넘어가면 장난감이 된다. 그래서 '언니전용'으로 다시 사줄 때가 많다. 그렇게 어르고 달래가며 색칠을 하고 함께 칠을 하고, 오래되어 누래진 블라인드에도 색칠을 하고 베란다 벽에도 물감칠을 한다. 집안 곳곳이 그들의 작품세계이고 예술무대인 것이다. 둘이 잘 놀면 되었다. 둘이 노는 동안 엄마는 설거지도 하고, 요리도 한다. 둘이 목욕탕에서 노는 동안 집안을 정리하고 엄마의 시간을 잠깐이지만 가지기도 한다.
첫째 아이를 키우면서 분유를 뗄 때, 기저귀를 뗄 때가 육아에서 많이 벗어난 느낌이 들었다. 혼자서 쉬야를 가릴 때는 정말 행복했다. 스스로 대소변을 가리고 혼자서 손톱을 깍거나 귀를 후비거나 머리를 빗을 때. 스스로 머리를 묶을 때 정말 다 컸다 느낄 때가 많았다. 일곱 살 터울이다보니 잠깐이라도 동생을 돌봐줄 때가 많다. 울음을 터뜨릴 때 달려가주고 심심할 때 같이 놀기도 한다. 함께 동영상 시청을 하기도 하고 티비 앞에서 둘이서 춤을 출 때가 많다. 서로의 몸짓 발짓을 따라하고 깔깔 웃는다. 가끔은 동생의 기저귀를 갈아주기도 하고 나 대신 동생의 머리를 묶어주기도 한다.
내 눈이 아이만을 바라볼 때가 있었다. 매일 밤 잠들기 전 그림책을 읽어주었다. 둘째 아기가 태어나고 나는 매일같이 읽어주던 그림책을 첫째 아이에게 읽어줄 수가 없었다. 젖을 물려야 하고 어르고 달래고 기저귀를 갈아야했다. 독박육아를 하면서 아기와 늘 붙어있었다. 그러다보니 첫째 아이는 늘 혼자였다. 함께이지만 늘 혼자인 기분이었다. 그걸 알면서도 차분히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들어줄 수가 없었다.
입에 물고 빨고 쪽쪽이를 하고 수시로 분유를 먹이곤 했다. 꼬물꼬물, 한창 앉고 서고 걸음마연습을 했다. 낯을
가리고 울고 떼쓰고 육아의 현장으로 다시금 돌아갔다. 아이를 키운다는 건 품을 내준다는 걸 의미한다. 시간의 품, 정성의 품, 요리의 품, 청소의 품, 마음의 품. 다시금 흘리고 지저분해지고 어질러도 아이를 돌보다보면 마음의 폭이 조금씩 넓어지는 것을 느낀다. 남편을 보면 더 느낀다. 남편은 깔끔한 성격이다. 군대에서 빨래와 청소를 몸에 익힌 덕분인지, 양말도 짝을 맞추어 널어놓고 청소도 나보다 조금은 더 깔끔을 떠는 성격이다. (자기방은 먼지가 쌓이도록 그냥두는 편이지만..) 아이가 흘리는 걸 잘 보지 못한다. 흘리면서 먹는 것을 싫어하고 어지르는 것을 싫어했다. 그런데 둘째아이를 돌보며 여기저기 흘리고, 지저분해져도 이제는 조금은 눈을 감아주는 편이다. 그냥 그러려니.. 생각하는 것 같다.
외식이 줄었다. 가뭄에 콩나듯. 외식하다가 체하겠다. 울고 달래느라 먹다가 그냥 나왔다. 남편은 화가 나고...
칼국수집에 간 적이 있다. 홍합이 아주 엄청 듬뿍 올려져 있어서 탱글탱글 싱싱한 오동통한 홍합을 초장에 콕 찍어먹는 맛이 일품인 칼국수 집에 간적이 있다. 남편을 구슬러서 아이들과 함께 자리에 앉았는데 둘째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마침 오기전 분유를 먹고 왔기 때문이다. 휴대폰 동영상을 보여줘도 자리에 앉아있기 힘들어했다. 어르고 달래기도 해보았지만, 결국 먹는둥 마는둥 홍합이 코로 들어가는 지, 채 느끼기 전에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다. 외식은 우리에겐 사치였다. 남편은 있는대로 화가 났고 맛있는 홍합과 칼국수를 제대로 못 먹어서 뿔이 났다. 겨우 구슬려서 칼국수집에 갔는데 남편도 화를 내고 나도 제대로 먹지 못해 속상했다.
둘째 고민은 오래도록 했다. 해가 갈수록 둘째? 경제적인 상황도 생각하고 육아의 대부분을 엄마인 내가 오롯이 감수해야 한다는 걸 이미 알기때문에 쉽게 결정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일곱살 터울이 되어서야 둘째를 맞이했다. 아이를 진심으로 돌보고 좋아해야 한다. 아이를 좋아하지 않는데, 육아와는 정말 체질이 성격이 안 맞는데 혹시 '첫째 아이를 위해서' 둘째를 고민한다면 그만 내려놓기를 바란다. 순번의 차이일 뿐이지 첫째를 위한 둘째는 없다.
오히려 경험한 바로는 첫째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 눈맞추던 시간, 함께 놀고 먹던 시간이 송두리째 없어져버린다. 첫째 아이에게 향했던 모든 정성과 감동이 둘째 아기가 크는 몇년간은(2~3년) 송두리째 사라져버린다. 첫째 아이를 위해 둘째를 생각하는 건, 첫째 아이에게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제공하게 만든다. 나는 참 많이 미안했다. 갓난아기 곁에서 있으면서 한창 초등학교 입학 시기에 엄마가 옆에서 봐주고 돌봐주어야 하는 많은 것을 함께 못 한것 같아 내심 많이 미안했다. 그림책 읽어주는 것도 뚝 끊겨버려서 너무 속상했다.
아기가 대장이 되고. 그의 곁을 따르고. 묵묵히 같이 걷고 걸음을 맞추고 느리게 걷고. 또 함께 하고.
다행히 꼬물이던 둘째 꼬맹이가 걸음마를 하고 함께 맛있는 걸 먹고 함께 외출을 하면서 우리는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함께 솜사탕을 먹고 비누방울을 불고 함께 길을 걷는다. 늘 작은 아이가 앞장을 서면서 우리는 함께 걸었다. 자기주장도 생겨 고집을 부리기도 하고 언니에게 대들기도 한다. 언니에게 질 세라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마음대로 잘 안되면 엉엉 울어버리기도 한다. 삐지기도 하고 장난치기도 한다. 졸업했던 키즈카페를 다시 입학하고. 동생의 편을 들어주고 일러주고. 함께 미끄럼틀을 타고. 동생이 울면 엄마에게 혼나기도 하고...
혼자여서 그리고 함께여서 좋다. 너의곁에 내가 우리가 함께해서 좋다.
따사로운 햇살처럼 둘째가 왔다. 서툰 엄마였고 부지런하지도 않은 엄마였다. 그런데도 네가 왔다. 엄마라서 네가 선택해서 나에게도 온 것이겠지? 매일 함께하는 순간이 때로는 버거울 때가 있다. 당연한 거지. 먹고 자고 입고 모든 것을 너무 다 잘하려고 하지마라. 나에게 말을 건넨다. 내 곁에는 일곱살 터울의 자매가 있으니까. 두 아이를 바라보는 눈이 일상이 되었다. 가끔은 엄마의 빈자리를 언니가 채워주고 함께 춤을 추고 함께 뒹군다.
p.s. 나의 딸에게
너는 아기였고 엄마를 세상 전부인양 바라보던 아기였다. 그런 네가 언니가 되었고 엄마의 흉내를 내기도 한다. 언니라는 자리가 좋지만은 않았을 텐데. 동생이 울면 너를 닥달하기도 했지. 동생에게 물마시라며 따라주던 물컵을 동생이 떨어뜨려 깨졌을 때, 너는 혼이 났지. 왜 동생에게 유리컵을 주었냐며. 아빠는 흘린 물과 깨진 컵조각을 치우고 엄마는 화난 표정으로 너를 바라보았지. 동생이 잘못 딛어 넘어지기라도 하면 엄마가 화를 내었지. 조심좀 하지!하고 말이야.. 네 잘못이 아닌데. 네 잘못이 아닌걸 알면서도 엄마는 너에게 화를 내었다. 미안하다. 동생과 낮은 침대에서 놀고있는 모습을 네가 촬영한 적이 있었다. 그 동영상에서 엄마는 화내는 나의 모습을, 그리고 그런 화를 묵묵히 받아주는 너의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가슴이 아팠다. 뭐라 말할 수 없지만, 엄마에게 토씨하나도 달지 않고, 늘 그런듯이 받아들이는 너의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후회했다. 객관적으로 보니 알겠더라. 엄마가 많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걸. 너에게 이유없이 화를 내어서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네 잘못이 아닌데 동생이 울거나, 다칠 뻔하면 엄마도 놀라서 옆에 있는 너에게 화를 내어서, 엄마 감정을 너에게 화풀이해서 정말 미안했어.
생각해보면 어쩌면 나보다 내 딸인 네가 더 어른인것 같다고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늘 웃어주는 네가 있어, 너희가 있어 참 행복하다. 지금처럼 오늘이란 테두리안에서 재미를 느끼고 함께하는 즐거움을 알아가고 채워가고 싶다. 일곱살 터울이어서 참 좋다. 그리고 너희들의 엄마로 엄마를 선택해줘서 고맙다.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