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의 방황은 없어야 하기에
작년 이맘때 쯤이었다. 둘째 아이가 돌이 지나던 무렵, 결혼 10년의 우리는 10년 전과 달라진 게 없었다. 첫아이의 유치원 숙제로 만들어두었던 커다란 도화지 속 우리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 때도 경제적으로 힘들었고, 풍족하지 못했기에 지금의 상황과 너무나 똑같았다. 이대로라면 10년 뒤에도, 20년 뒤에도 똑같을 것 같았다. 멈추고 싶었다. 멈추어야 했다. 먹을 것 하나 살 때도 고민해야 하는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 안정되지 않은 지금의 상황을 당장 멈추어야 했다. 그래서 시작했다.
둘째 아이를 1년 동안 독박육아를 하면서 돌보았다. 경제적으로 풍족했다면 나는 육아를 계속 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편 역시 대표와의 불협화음이 있었고 여러 차례 직장을 옮겨다녀야 했다. 그렇게 안정되지 않은 생활을 이어나갔다. 빚은 빚대로 쌓였다. 나는 둘째아이가 돌이 지나면서 근처 작은 병원에서 일을 다시 시작했다. 저녁근무와 주말 근무가 있었지만 당장 일을 해야하기에 시작했다. 어린이집과 아이돌보미 선생님의 도움을 받으며 일을 시작했다.
하나의 책에서 시작된 경매과정 수업. 일을 하면서 어떻게든 지금의 상황을 멈추기 위해 시작했다. 무엇이든 시작해야 했다. 토요일에 쉬는 날을 신청하고 토요일마다 수업을 들으러 갔다. 먼 거리였고 남편은 싫어했지만, 나는 시작했다. 몇 주간의 수업을 들었지만, 실제로 필요한 건 약간의 목돈이 있어야 했다. 실행하기에는 약간의 돈 조차 나에게는 사치였다. 은행마다 대출가능 여부를 알아보러 다녔다.
한 은행에서 내가 생각했던 금액보다 훨씬 더 적은, 거의 대출이 불가능하다는 상황을 직시하고 난 이후에 나는 은행 직원 앞에서 울어버렸다. 단지, 주부라는 이유만으로, 일년 간의 육아를 하고 난 후에 남은 건 대출이 안된다는 거였다. 은행 입장도 이해가 된다. 나의 신용을 무엇을 증거로 확인을 하고 돈을 빌려준단 말인가. 하지만 그 당시 다시 일도 새로 시작했고, 신용등급도 좋았던 나는 당연히 얼마정도의 생각한 금액을 빌릴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주부이고,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으면 아무리 신용등급이 좋아도 대출이 불가능했다(은행권에서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조금이라도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아이를 위해 적금해 둔 청약통장을 해지하고 비상자금을 마련했다. 그리고 나는 경매에 투자하는 대신에(경매를 했더라도 대출이 가능할 지 불확실한 상황이었다) 책쓰기 수업에 등록했다. 한 마디로 나의 모든 것을 투자한 것이다. 나의 안방 화장실에는 작가가 되어 책을 출간한다는 목표이자 꿈을 적어두고 매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나는 책 한 권을 출간하기 위해 책 쓰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쓰기 수업에 등록했다.
작년 이 맘때부터 책쓰기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그 당시에도 주말에 일을 마치자마자 부리나케 김포에서 분당으로 차를 몰아 다녔다. 수업 중간에라도 들어가서 들었다. 너무나 비싼 수강료였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지금 여기에서 관두면 나는 다시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거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매주 수업을 듣고 새벽이나 점심시간에 혼자서 밥을 먹으면서 원고를 썼다. 아이들이 잠을 자는 시간, 조그만 드레스룸 창고에 불을 켜고 노트북으로 열심히 원고를 적어내려갔다.
수업을 들으러 가는 동안, 남편이 대신 아이들을 돌봐주었다. 매번 늦은 귀가시간에 남편 역시 불만이 한껏 쌓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의 상황을, 가족의 상황을 조금이라도 바꾸고 싶었다. 책쓰기 수업 과정을 들으면서 대출을 많이 알아보았고, 극기야 현금서비스까지 받고 카드발급을 받아야 했다. 부족한 자금을 그렇게 해서라도 마련해야 했다. 남편이 자는 시간에도 글을 썼고 병원에서 일하는 동안에도 혼자 점심시간을 보내는 시간에 원고에 쓸 내용을 생각했다. 그렇게 지난 11월 나의 첫 책 <책 먹는 아이로 키우는 법>이 출간되었다.
방황을 멈추기 위해 시작했고 무엇보다 나 자신을 바꾸고 싶었다. 나만의 책을 만날 수 있었고 그 계기를 시작으로 나는 새로운 일에 도전했다. 아이들을 육아하고 자유롭게 일하고 싶어 나는 이전에 그만두었던 방문간호 회사에 다시 입사했다. 그리고 방문간호를 하면서 겪은 에피소드, 경험, 노하우들을 글로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누가 시켰던 것도 아니었지만, 이번에는 나 혼자의 힘으로 나만의 책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또 시작했다.
매일 아침 출근시간에 글을 썼다. 코로나의 영향으로 재택근무를 권장하면서 나는 매일 아침 카페로 출근했다. 카페에 앉아 이른 시간이기에 30분 정도, 적게는 10분 정도라도 그날의 일상을 기록해나가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양압기 라는 새로운 분야를 접하면서 좌충우돌 나 혼자 겪은 일들이 많았고, 어디에라도 해소할 공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누가 내 얘기 좀 들어주세요~ 라고 외치며, 나 혼자 겪은 문제들을 글로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원고가 하나 둘, 쌓여가고 나에게도 독자분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브런치에 글을 올리면서 누군가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 준다는 것이 얼마나 가치있는 지 알아가기 시작했다. 그런 용기 덕분에 나는또 도전할 수 있었다. 지난 주말 노트북 앞에 앉았다. 지금까지의 원고를 모아서 출판사의 문을 두드리기로 한 것이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이야기를 책으로 엮어주기를 바랬다. 다행히도 나의 이야기에 공감해주고, 다시 일을 시작하는 엄마의 입장에 관심을 보인 출판사와 만나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오로지 나의 힘으로 쓴 '나는 대한민국 방문간호사입니다(가제)' 에세이를 계약했다.
지난 일년 간의 시간을 되돌아보니 우여곡절도 많았고 내 결정이 옳은 결정이었는 지는 아직 모른다. 방황을 멈추기 위해 나는 다시 시작했다. 새로운 일을 시작했고, 또 새로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곁에는 가족이 있었다. 나 혼자만 생각했다면 시작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남편의 도움이 있었기에, 아이들을 잘 돌보아 주는 선생님들이 있었기에, 그리고 엄마를 응원해지고 따스히 안아주는 나의 사랑하는 아이들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오늘도 나는 다시 시작하고, 또 그 길 선상위에 걸어나갈 것이다. 나의 가족들과 함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