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미완성이기에 살만한 것

나의 실수 였는 지? 계획 이었는지!

by 정희정

내 인생을 돌아보면 학창시절까진 아무런 걱정 없이 부모님 곁에서 먹고 자고 입고 하며 편한 생활을 보냈고 이후 집을 떠나면서 생각이 많아지고 방황도 많이 했던 것 같다. 방황이라고 하면 으레 대학생이 되면서 하는 장래에 대한 생각, 나의 꿈, 뭐 그런 것들 말이다. 대학교를 서울에 있는 곳으로 가고 싶어 편입시험을 준비했다.

나의 용기라기보다 그 당시 내 인생 최대의 고비가 왔었기 때문이다. 충북에 있는 대학교에 다닐 때 간호학과에 다니면서도 늘 학벌에 대한 콤플렉스가 따라왔다. 다음 학기부터 실습을 다녀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그해 여름에 총 8개나 되는 것들을 배우기에 이르렀다. 수화, 기타, 합기도, 댄스, 테니스 등등. 내가 생각해봐도 참 어이가 없다. 도대체 왜? 그런 짓을 했는지. 몸이 바쁘면 마음이 갈 데가 없었나 보다.


그러다 결국 사고가 터졌다. 합기도를 배우는 중이었는데, 관장님이 없이 보조해 주는 사람 곁에서 방심을 했는지 손을 짚지 않고 텀블링한 것이다! 그야말로 순간 목이 바닥에 곤두박질치면서 정신을 잃었다. 정신을 차렸을 땐 손에 감각이 없어지고 아찔한 상황이었다. 집으로 와서도 손에 감각이 없어서 근처 개인병원을 거쳐 대학병원으로 향했다. 인대가 파열되었고 견인치료를 병행하면서 수술실로 향했다. 이게 무슨 일인지…. 이것저것 배우러 다녔다가 내 인생 최대의 고비를 맞이하게 되었다. 목이 뻣뻣하고 구부러지지 않았다.

병실 침대를 타고 수술실로 향하는 길. 나는 그 걸음에서 아버지의 눈물을 보았다. 아버지가 울고 있었다. 다 큰 딸아이가 혼자 합기도를 배우다가 다쳤으니, 경추(목) 아랫부분이 조금 더 다쳤더라면 나는 전신 마비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아찔한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으로 나는 목 뒤를 절개하면서 수술을 했고, 그렇게 회복실에서 깨어났다. 일자목이 된 것이다. 한순간의 방심으로 인해, 내가 제대로 된 방법을 지키지 않고 손을 짚지 않은 실수로 인해서 나는 평생을 일자목으로 지내게 되었다.


경북대병원에 입원해있는데, 같은 병실에는 교통사고를 크게 당해 입원해있는 언니가 있었다. 속 깊은 얘기를 나누어보진 못했지만, 엄마와 보호자 분을 통해서 큰 사고를 겪었고 전신이 골절되고 여기저기 성한 곳이 없어서 여러 차례를 수술하고 입원치료를 하고 있다고 했다. 잔잔하고 평온했던 일상에 엄청나고 굉장한 출렁거림이었다. 입원 생활을 하면서 나는 엄마와 늘 함께였다. 늘 삼 남매를 평생 돌보시느라, 사실 엄마와 단둘만의 시간을 가져본 것이 드물었다. 병원 생활을 하면서 엄마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입고 자고 먹고 했다. 퇴원 후 집에 와서도 목 깁스를 6개월 동안 차고 있어야 했는데, 그 상태로 금오산에 오르기도 했다. 산을 좋아하고 숲의 냄새를 그때 그 시절 엄마와 함께 많이 음미할 수 있었다. 엄마와 손을 잡기도 하고 숲의 길을 걸었다. 엄마와 단둘이 함께하는 시간이 좋았다.


모든 것이 멈춰버렸다. 인생에서 큰 고비가 한 번쯤 오는데, 나는 그때라고 말하고 싶다. 어리고 여리기만 했던 나는 그때를 계기로 편입 공부를 준비하기로 했다. 어차피 목 깁스를 하면서 학교에 다닐 수 없었고 1년간 휴학을 하기로 한 것이다. 그동안에 준비를 시작했다. 편입은 편입영어가 우선이기에 집에서 몸을 돌보면서 짬짬이 영어공부를 했다. 그리고 복학할 때쯤 본격적으로 학과공부와 편입 공부에 열을 올렸다. 학과공부에 소홀히 하게 되었지만, 대신 편입 공부에 몰입하기로 한 것이다. 방학하고 나는 서울행을 준비한다. 서울에 아는 친척이 있는 것도 아니고, 미리 준비해 둔 거처도 없었지만, 나는 용기를 냈다. 일생일대의 용기를 내고 편입학원 근처에서 먹고 자며 공부하기로 한 것이다. 딱 3개월. 3개월 동안 편입 공부를 하고 내가 지망하는 학교에 편입시험을 치르기로 했다. 그 당시 유명한 편입학원에 가서 등록하고 근처 가까운 고시원을 구했다. 난생처음 지하철이란 것도 타보았다. 지금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상이지만, 서울에 처음 와서 지하철을 탄다는 것은 그것도 혼자서 길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편입학원 근처 조그마한 고시원에서 쪽잠을 자고 자정까지 편입 공부를 했다. 새벽 4~5시에 일어나 준비를 하고 새벽 5시에 편입학원에 가서 줄을 섰다. 자습하기 위해서였다. 편입을 준비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나도 그 과정에 합류해서 이번에 꼭 붙어야 한다는 마음 하나로 편입시험 공부에 매달렸다. 수업을 듣고 복습하고 암기했다. 잠시 잠깐 쉬어가기도 했지만, 마음은 바빴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고 이번에 떨어지면 나는 다시 예전의 학교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절대로 그럴 수 없었다. 아니 싫었다.

그렇게 총 여덟 군데의 대학교에 지망했고 시험을 치렀다. 다른 곳은 떨어졌는데 내가 진정으로 가고 싶었던 학교의 학교에 합격했다. 합격자 명단을 보는 순간, 아빠 생각이 났고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 울면서 합격했다고 말했다. 아빠는 잘했다고 장하다고 내 딸~ 하면서 함께 기쁨을 나누어주었다.


내가 원하던 학교에서 원하던 캠퍼스 생활을 누렸지만, 내 안은 공허했다. 학교만을 바라고 왔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었다. 나는 나름으로 열심히 했고 만족했다. 하지만 나의 10년, 20년 후에 내가 진정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을까? 취업이 잘 된다고 입학한 간호학과에 대해 회의가 들었다. 강동경희대병원에 입사하고 소아청소년과, 이비인후과 입원 병동에서 간호사로 근무를 했다. 5년 동안 일을 하면서 제법 일도 능숙해졌고 주변 사람들과 친해지고 돈독해졌다. 단지 주말에 쉬고 싶고 상근직을 하고 싶다는 이유 하나로 나는 그곳을 박차고 나왔다. 5년 동안 몸담았던 나의 첫 직장이었고 나에게 큰 애정이 담긴 직장이었다. 그곳을 나와서 나는 어느 한 곳에서 정착하지 못했다. 보험회사 계약직 간호사, 임상시험 간호사, 법률사무소 간호사, 그리고 종합병원, 개인병원 간호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직장을 전전하며 다녔다.


오래 일하는 사람이 부러웠다. 나는 찔끔찔끔 여기 다녔다가 저기로 갔다가 한 곳에 정착하지 못했다. 그런데 한 직장에서 10년, 20년 넘어가면서까지 오래 일하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이력서 쓰기가 취미였고 늘 직장에 안정하지 못하고 다른 곳을 기웃거렸다. 직장은 다 같은 곳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늘 나에게 더 잘 맞는 직장이 있지 않을까? 고민하며 찾아다녔던 것 같다.


강동경희대병원을 계속 다녔으면 어땠을까? 월급도 많았을 거고, 집도 안정되었을 텐데. 지금 그 곳은 어떨까? 수 선생님, 선생님들도 여전히 잘 다니고 있겠지? 가끔 생각이 났고 후회가 밀려올 때가 있었다. 지금의 내 상황이 좋지 않으면 더욱 예전에 몸담았던 병원이 그리워지는 것이다. 하지만 100% 나에게 맞는 완벽한 직장은 없다는 걸 안다. 지금까지 많은 곳을 다녔고 또 그만큼 다양한 일을 경험해보았다. 각 직장에는 어떤 성격의 사람이 맞는 지도 이제는 조금씩 보이는 것 같다.

방문간호 회사에 다니면서 운전을 할 때가 좋을 때도 있고 싫을 때도 있다. 내 시간을 자유로이 사용할 수 있다는 건 좋지만, 혼자 밥을 먹을 때나 혼자 고충을 해결해야 할 때는 동료 간호사들과 함께 일할 수 있는 공간이 그립기도 하다. 교통사고가 크게 난 적이 있었는데, 다행히 겉으로 외상은 없었지만 차는 거의 폐차 수준이었다. 졸음운전으로 뒤에서 차가 박은 것이다. 한 번의 큰 사고로 둥둥 떠다니는 구름처럼 나는 또 갈팡질팡했다. 그동안 아이를 육아하고 나의 시간을 충분히 가지고 난 후 다시 지금의 회사에 다시 들어왔다. 예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다르고, 또 어제의 나와 지금의 나도 다르다.

합기도를 하다가 크게 다친 것, 잘 다니고 있던 병원을 관둔 것, 일하다가 크게 사고를 당한 것, 이 모든 것이 나의 실수였는지, 계획이었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사건을 계기로 나라는 사람이 다른 방향을 되돌아볼 수 있었고 부모와의 시간을 깊이 가질 수 있었다. 몸에 상처를 입으면 굳은 딱지가 생기는 것처럼 순간순간의 일들이 계획이든, 실수이든 어떤 계기가 되어 내 마음에도 굳고 단단한 딱지가 생길 수 있게 해주는 것 같다.


오늘도 나는 큰 인생의 지도라는 그림에 아주 작은 퍼즐 조각 하나를 맞춘다. 이 조각이 맞는지, 틀린 지는 맞추어보면서 알 수 있다. 그리고 인생이라는 퍼즐은 다행히도 몰랑몰랑해서 내가 퍼즐 모양을 바꾸기도 하고 슬라임처럼 조 물락 만지면서 내가 원하는 모양으로 만들어 나가는 데 매력이 있는 게 아닐까?

매일 나는 새로운 곳을 향하고 또 새로운 점 하나를 찍는다. 자잘한 점 들을 하나씩 찍어가다 보면 어느샌가 선이 되고 별이 될 날이 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