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나의 글을 본다면 어떨까? 혹시 주변에 내가 아는 지인, 직장 동료, 친구, 아는 사람이 나의 글을 본다면? 글 쓰는 일은 자유지만 공개된 장소에서 나의 글을 오픈 한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잘 쓰든 못 쓰든 나의 속마음이 그대로 묻어나오는 글이기에 상당히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남들에게 좋은 면만을 보이기 위해서, 내가 잘 나가는 모습만 보이는 sns랑은 차이가 있는 듯하다. 무엇보다 나는 sns를 못한다. 잘 하지도 못한다. 남에게 나의 잘난 모습을(잘나지도 않았고 잘난 체 하는 건 내 영역이 아니다) 찍어 올리는 건 더더욱 잘하지도 못한다. 그저 있는 그대로 지금 지내는 일상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는 것, 그것이 나의 일부분이고 나의 전부이다.
나를 깨우다.
글을 쓰면서 나는 내가 되어 간다. 하루 중 유일하게 나와 대면하는 시간이다. 그 시간이 아침 시간이건, 저녁 시간이건 중요하지 않다. 그저 묵묵히 나의 글을 기다려주는 노트북만 있으면 충분하다. 내 마음이 온 종일 외면당했던 시간을 거침 없이 흐르는 물에 씻어 주는 듯하다. 바깥에 미세먼지 처럼 덕지덕지 앉은 군더더기들을 한껏 벗어던지는 시간이다. 써야지, 써봐야지 생각했던 내용이 비엔나 소시지처럼 줄줄 딸려오는 그런 시간이다. 내 곁에서 젤리를 야무지게 먹고 있는 아이 곁에서 나는 오늘도 하얀 바탕에 한 자 한 자 글을 쓴다.
글을 읽는 것도, 쓰는 것도 자유다.
글을 읽는 것도, 쓰는 것도 자유지만 느끼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책을 읽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느끼고 생각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책을 읽을 때도 그렇듯 어떤 글이 나에게 위로가 되는 날이 있다. 꾸밈 없는 있는 그대로의 날 것으로 나의 글 또한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어 주지 않을까? 하루 종일 비바람이 불어 축축했던 이불이 햇빛을 만나고 시원한 바람을 만나 뽀송해지는 것처럼 누군가에게는 상쾌한 바람이 되어주기를 살며시 바래본다. 가식적인 건 나와는 어울리지 않다. 평소 높은 하이힐이나 깍쟁이 같은 멋스러운 신발을 좋아하는 대신 수수하고 편안한 신발을 좋아한다. 딱딱한 구두는 보기에만 이쁘지 나에게는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한다(물론 화려하고 빛나는 신발이나 옷이 필요한 경우도 있지만 말이다).
누군가 나의 어깨를 톡톡 두드려 주던 날, 오늘은 그런 날이었다.
수다를 떨고 싶은데 곁에 아무도 없을 때, 엄마가 되어 보니 더 그렇다. 누군가와 실로 오래간만에 이야기를 했고 또 이야기를 나누었다. 감추고 싶은 나의 속내를 드러내는 일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어쩌면 그동안 나는 누군가를 기다렸는 지도 모른다. 누군가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를, 꽈악 다물어진 나의 문을 누군가 톡 톡 두드려주기를 기다려왔는 지도 모른다. 노트북의 환한 불빛을 따라 성가진 모기도 지나가고 이른 저녁 피곤한 지 내 곁에서 놀다 일찍 잠이든 아이의 땀이 송글 맺힌 얼굴도 바라본다. 일상의 이야기를 한 여름밤의 소나기처럼 퍼붓기도 하고 깊은 물웅덩이를 자아내듯 퍼붓기도 한다.
나도 엄마고 당신도 엄마다
본디 목적이 있는 글이 아니기에 그저 물 흘러가듯 쓰는 나의 일상이지만, 나도 그래요. 당신도 그렇지요? 우리 조금만 더 힘내요. 같은 아줌마이기에, 잔잔한 물 위에 내 마음을 흘겨쓴다. 아줌마가 어때서! 아줌마도 우아할 수 있고 아줌마라서 더 생활의 지혜가 깊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 아이를 키우면서 먹거리가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고 내 자식 입에 좋은 건 하나라도 더 넣어주고 픈 엄마의 마음이다. 집 안에서건 집 밖에서건 발을 동동 구르는 엄마의 역할을 하느라 오늘도 비오듯 흐르는 땀으로 샤워를 했다. 길을 찾아다니기 어려웠고 주차할 곳을 찾아다니느라 애를 썼다. 골목 골목을 빙 돌아다니며 애꿎은 골목길을 탓하기도 했고 늦은 저녁 약속시간에 늦을 까 조마조마하며 운전을 하기도 했다. 주유소에서 5만원의 주유를 가득 하고 오면서 내일을 안심한다.
엄마는 누가 위로해 주나?
오징어를 질겅 씹어대며 맥주를 홀짝인다. 자갈치를 그릇에 담아 소시지를 함께 그릇에 담아낸다. 내 유일한 안주, 그리고 위로의 시간이다. 친구들과 하하호호 수다를 떨던 시간이 생각이 났다. 유난히 맥주를 좋아하던 나였다. 그렇게나 좋아했던 맥주가 예전처럼 맛이 있지는 않다. 짠~ 하고 부딪힐 친구가 없어서인지, 안주가 빈약해 천천히 마셔서 거품이 다 빠져서인지, 알 길이 없다. 내가 그렇듯, 요즘 부쩍 친구를 만날 일이 없는 첫째가 안쓰럽다. 혼자서 시간을 보내는 데에도 한계가 있을 텐데. 마음껏 뛰고 놀고 친구들과 하하호호 떡볶이도 사먹고 장난도 치며 그렇게 시간을 보내야하는 소중한 시간을 간직할 너 일텐데. 엄마가 채워주지 못하는 많은 부분이 있어 너에게 미안하고 너의 일상을 그저 묵묵히 곁에서 응원하는 수밖에.
어제 쓴 글이다. 어제의 글이 오늘의 나를 만들고 오늘 내가 생각하고 끼적이는 것들이 또 내일의 나를 이루겠지. 와이파이가 더디게 켜진다. 기다림의 시간, 뜸을 들이는 시간이다. 엄마에게도 느린 와이파이 처럼 뜸을 들이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언제나 하하호호 웃을 수도 없고 언제나 파이팅 넘치게 아이들을 육아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냥 내버려두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방긋 웃어보인다. 축 쳐저 있던 어깨가 시간이 지나고 뜸을 들이면 펴지기도 한다. 마음에 조각조각 나있던 퍼즐이 맞추어지기도 한다. 뾰족뾰족하고 날카로웠던 가시들이 어느새 뭉그러지고 보들보들한 살갗을 부비기도 한다.
육아란 해 보았기에 익숙한 듯 하면서도 또 늘 새로운 것 같다. 매일 매 순간이 그렇다. 육아에 고수가 있을까? 아이를 키워보았다고 다시 키우면서 지혜와 경험이 생기지만, 아이마다의 성향이 다르듯이 각자 키우는 방식도 다 다르다. 더 많이 안아주고 더 많이 살을 부비기. 나의 육아의 모토이기도 하다. 엄마가 필요하지 않은 때는 없는 듯하다. 아이가 어릴 때도 엄마의 사랑과 품이 필요하고 초등학교를 들어가서도 엄마의 지지와 사랑, 그리고 귀 기울여 들어줌이 무엇보다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이 혼자 밥을 챙겨먹고 숙제를 하지만, 잠시 뜸을 내어 영상통화를 하고 '지금 뭐해' 카톡을 보내기도 한다.
반짝이는 초록 신호등 불이 켜진다. 엄마 마음에도 초록 신호등 불이 켜진다. 가끔 위태위태하게 경고등 노란불이 켜지기도 한다. 나 지금 쉬고 싶어요. 잠시만 나를 내버려 두세요. 엄마가 신호를 보낸다. 잠시 잠깐이라도 좋다. 근처 카페에서 커피 한 잔도 좋고, 비가 오던 축축한 길을 단 5분이라도 걷는 것으로 힐링이 되기도 한다. 마음껏 수다떨 상대가 없다면 내가 친구가 되어 나에게 글을 쓰는 것도 좋다. 술을 그렇게 좋아하진 않는데, 하루의 녹록함을 달래어 줄 자몽 맛의 맥주 한 캔을 들이키면서 휴식을 취하고 목마름을 채우기도 한다. 맥주 한 캔으로 하루의 고단함을 달래고 상쾌하고 달콤한 맛의 맥주의 맛이 또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