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처럼 느릿하게 걸어볼까?
마흔이 주는 묵직함
마흔. 마흔이라는 단어 속에는 많은 것이 담겨 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한 번씩 마주하게 되는 나이, 그리고 나. 아무 걱정없이 엄마아빠의 사랑 속에서 동생들과 재미있게 놀기만 했던 어릴 때, 10대를 지나 스스로 나 혼자의 생활을 연습해야 하는 20대를 지나 진정한 책임이 무엇인지 몸소 깨닫고 체험하는 지금의 30대. 아이를 키우는 것은 나의 온몸을 들이고 마음과 정성을 들인다는 의미였다. 한 아이에게 치중했던 시간이 흐르고 둘째 아이가 태어났다. 아기띠를 다시 메고 아이를 달랜다. 무한한 책임의 한 가운데 있는 나 라는 존재, 어디로 가야할 지 알 수 없어 그 때 그때 막다른 길을 피해가고 싶은 나라는 존재. 한 없이 약하고 매번 결정을 할 때마다 헤매기 일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겹 한 겹 나의 경험이 쌓여만 간다.
아직 마흔은 아닌데, 마흔을 준비해야 할 때
어느덧 뒤 돌아 보니 30대의 후반. 서른 여덟. 그만큼 바쁘게 살아왔고 육아와 일을 병행하느라 지친 어느 날. 나 이외에도 수 많은 마흔을 앞 둔 엄마가 생각이 났다. 나의 엄마도 그랬을까? 그럼. 아마 엄마도 그랬을거야. 마흔 즈음이면 안정되고 내 생활을 찾고 아이들은 잘 커나가고 현재의 생활을 충실히 유지하면서 그런 삶을 살게 될 줄 알았다. 아직도 일은 좌충우돌이고 매번 매 순간 육아의 갈림길에서 나는 고민한다. 이 길이 맞나? 이렇게 하는 게 맞는 방법일까? 나 혼자서 결정이 어려울 땐, 주변의 도움을 받는다. 나의 소중한 아이들을 보살펴 주시는 아이돌보미 선생님부터, 지인들에 이르기 까지. 그래도 다행이다. 아직 도움을 요청할 수 있고, 나의 도와달라는 손짓에 대답해주고 마음껏 지원을 해주는 고마운 분들이 있어서.
일주일 전부터 첫째가 기침을 심하게 했다. 유독 심했다. 에어컨 바람을 잠시 쐬어서 그랬는지, 다른 증상은 없고 콧물과 기침만 심했다. 어릴 때는 호흡기가 약해 자주 병원에 입원했었지만, 초등학교를 들어가면서 면역력이 길러졌는 지 감기에 걸려도 금방 나았다. 그럴 거란 걸 믿고 기침이 잠잠해지기만을 기다렸다. 며칠이 지났는데 여전히 기침을 한다. 그 와중에 발가락에 생긴 염증으로 피부과에서 항생제를 처방받아 먹었는데 갑자기 온 몸에 두드러기가 난다. 하루 이틀이 지나자 온 몸에 발진과 두드러기가 퍼졌다.
예전 아이는 항생제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 적이 있다. 폐렴으로 며칠간 입원했었는데 주사제를 맞고 약으로 먹는 순간, 그 이틑날 부터인가 전신에 발진과 가려움이 번진것이다. 원인을 몰랐기에, 우리는 사방팔방으로 우는 아이를 들쳐안고 응급실을 찾아다녔다. 어느 날은 집 가까운 병원 응급실에 가기도 했고(소아 응급실이 없어서 너무 불편했다. 말 그대로 응급한 불만 꺼주었다) 멀리 서울에 본래 다니던 병원까지 차를 몰아 달려가기도 했다. 피부 두드러기와 가려워 자지러기게 우는 아이를 달래며 나 역시 혼란에 빠졌다.
응급실을 몇 군데 돌아다니며 가까스로 주사를 맞고 (피부 가려움증을 일시적으로 억제하는 항히스타민제) 진정이 되며 몇 시간이 있다가 다시 가려워 울기 시작했다. 내가 해줄수 있는건 그때 그때 약을 먹이고 수시로 온몸에 연고를 덕지덕지 발라주는 것 뿐이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이틀, 삼일이 지났다. 항생제 알러지가 이렇게나 무서운 것이었다니. 당시에는 저확히 진단을 내려주는 곳은 없었다. 다행히 4~5일이 지나자 피부 발진이 조금씩 옅어지기 시작했다. 흉으로 남는건 아닐까 걱정하고 우려했었는데, 근처 일산의 한 병원 교수님이 보자보자 약물 알러지라고 정확히 진단을 내려주었다. 다행히 색이 점차 옅어지면서 흉은 남기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 일을 겪어보아서 이번 일도 만만치 않음을 느꼈다. 차이점이 있다면 3~4일이 지나 팔과 다리 발진이 난 부위 위주로 아프다고 잘 걷지를 못했다. 다리를 펴면 아프다고 했다. 어느 날은 몸이 아파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잠을 잘 수 없다고 했다. 일을 하면서도 아이 생각이 간절했다. 빨리 병원에 가봐야 하는데.. 돌보미 선생님에게 부탁해서 항생제를 처방받았던 피부과 진료를 보았고 페니실린계 항생제 알러지라고 했다. 일주일 넘게 지속될 수 있다고 하며 발진을 가라앉히는 약과 연고를 처방해주었다. 그렇게 약을 먹이고 연고를 발랐는데도 팔과 다리의 통증과 움직임의 제한은 심해졌다. 요즘 상황이 상황인지라 병원가기도 무서운 요즘. 급기에 37.6도~38도 까지 열이 나는 것이아닌가.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회사에 양해를 구하고 아이를 데리고 근처 가정의원으로 갔다. 안으로 들어가는 데 열을 체크해보더니 안으로 들어오지 말라고 했다. 그러면서 아이가 잠시 머물렀던 공간에 소독제를 뿌리고 바깥에서 대기하라고 했다. 의사에게 아이의 증상과 발진 사진을 보여주었다. 직접 진료를 보지 않았지만, 일시적으로 증상을 가라앉히는 진통소염제를 포함한 약을 처방받아 왔다. 나는 단지 항생제 알러지가 이토록 심하게 오는 것인지 묻고 싶었다. 나를 달래줄 곳은 어디에도 없어보였다. 그저 열이 계속 안떨어지면 혹시나 모르니 선별검사를 해보라고만 했다. 병원에 오기 전 나도 보건소에 연락을 했고 아이의 증상을 말하니 약먹고 열이 떨어지면 굳이 검사를 안해도 된다는 확답을 받은 상태였다. 그런데 병원진료 문앞에서 거절당하니 서러웠다. 절뚝절뚝 걷는 아이를 부축하며 약국에 들러 약을 받고 다시 차 안으로 돌아왔다.
근처 유일하게 선별검사를 하는 종합병원으로 차를 몰았다. 휑한 분위기. 썰렁한 선별진료소 앞. 한참을 고민했다. 아무도 오가는 사람이 없었다. 컨테이너 박스안에 사람이 있는건지, 지금은 운영을 하는 건지 확인할 길이 없었다. 아이를 바라보고 또 생각했다. 검사를 받기도 애매한 상황. 그래, 오늘은 일단 약을 먹어보자. 보건소에서도 약 먹고 열이 떨어지는 거면 선별진료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하지 않았나. 나의 직감을 믿고 아이와 병원을 빠져나왔다. 그동안 일하면서 매번 아이의 끼니가 부실했다. 그럴수 밖에 없는 것이 아침일찍 나가서 늦게 퇴근하는데 아이는 온종일 혼자있다. 학교는 형식상 개학은 했지만, 텅빈 학교이다. 학교에 등원하지 못하는 생활이 이어지며 아이는늘 혼자였다. 텅빈 커다란 집에서 혼자 밥을 먹고, 따근한 식탁에 함께 앉아 밥먹을 식구가 없다. 반찬도 부실하고 좋아하는 라면을 한 번씩 끓여주는 수밖에. 반찬을 사는 것도, 먹는 것도 한계에 이른 요즘이다. 그런 아이를 보면서 고기를 먹이기로 했다. 선별검사를 하는 비용만큼 그동안 나도, 아이도 부실했던 영양을 제대로 맛보기로 한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고깃집에 가서 아이와 나란히 앉았다. 고기를 구웠다. 먹음직스런 핑크빛이 도는 고기의 도톰한 육즙이 입안에 번졌다. 부드럽게 씹어 넘어가는 오래간만의 고기. 아이에게 제대로 영양을 보충해주고 싶었다. 잘 못먹어서 몸이 약한 것 같았다. 누룽지도 주문하고 아삭한 김치와 함께 하루동안 긴장했던 마음을 보상받았다. 아이도 꼭꼭 잘 씹어먹고 맛있다고 했다. 병원에서 문전박대를 당해 슬픈 얼굴이었는데, 이내 밝아졌다. 종알종알 이야기도 한다. 엄마 맛있다며 말한다. 그래. 우리 일주일에 한번은 이렇게 고기데이트 하자. 말했다.
다행히 그날 하루만 미열이 났고 약을 먹으면서 체온은 정상으로 돌아왔다. 하루 이틀이 지나니 발걸음도 가벼워지고 신경쪽으로 갔던 지릿한 통증이 이제는 많이 없어졌나보다. 어제 저녁은 둘째와 함께 춤까지 추며 가볍게 몸을 움직였다. 항생제 알러지와 몸살을 검색해보니, 심한 경우는 일주일~2주일까지 가고 발진, 두드러기 뿐만 아니라 정말 일상생활이 힘들정도로 말초신경까지 전해진다고 했다. 그래서 아이가 그렇게 아팠나보다. 글쓴이도 아파서 제대로 잠도 못잤다고 했다. 내 아이도 그랬다.
그래도 제대로 확인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전에 근무하던 곳에 알고 지내던 소아과 의사에게 말을 전했다. 아이의 증상을 전해듣더니 이내 경과와 양상이 약물알러지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 일주일 이상 지속될 거라고 나의 마음을 안심시켜주었다. 이내 나의 마음도 답을 찾고 안정되었다. 안심이 되었다. 누구하나 내 고민을 시원하게 답변해준 사람이 없었는데, 지인을 통해 이내 안심이 되었다.
혼자서 결정해야 하고, 이럴 땐 어떻해야 하나? 망망대해에 떠 있는 기분이 들 때가 많다. 왜 아닐까? 나 혼자 스스로 살아가는 데에도 결정할 일이 수두룩하고, 이 길 저 길 가보아야 알 수 있는 것을. 거기다 엄마의 위치에서 아이의 안전과 일상을 책임을 지는 입장이기에 더욱 조심스럽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어느 길이 아이의 입장에서 최선인지 고심하고 또 노력한다. 나 혼자의 생활이 아니기에, 가족의 안전과 안위가 나의 결정과 나의 선택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렇기에 더욱 조심스럽다.
어떨 때는 강단있게 밀어붙어야 하는 경우가 있고, 어느 경우는 살짝 간만 보듯이 여지를 두고 움직여야 하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어느 부분에서는 무뎌지고 또 어느 부분에서는 예민하다. 내 아이의 건강과 관련된 부분은 더욱 그러하다. 그러면서 아이도 크고 나도 크는 것이겠지. 하영아, 이렇게 한 번 경험을 하고 나면 또 엄청 크겠다~ 했더니 엄마 나 더 크면 안되는데 한다. 자기는 키가 크다고 주위에서 자꾸 그런단다. 자기는 더 크는 건 싫다고 한다. 그게 그런 의미가 아닌데. 아이는 또 한번의 성장통을 겪으면서 마음도 몸도 크게 성장할 거라 믿는다.
이제는 엄마의 결정보다는 아이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는 일을 믿고 기다려주는 부모의 일이 남은 것 같다. 아직 둘째는 손이 필요한 시기이지만, 첫째는 엄마의 지원과 말을 아끼되 묵묵히 지켜봐주는 인내와 끈기가 필요한 순간이 아닐까 생각한다. 학원을 다니는 것도, 스스로 공부계획을 세우는 것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선택한 결정에 대해서는 스스로 책임을 질 줄 아는 배려깊은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엄마도 이런저런 일에 휘둘리고 매번 결정장애에, 매 순간이 시험의 연속이지만 이 또한 엄마통을 겪고 성장해가는 과정이리라 생각한다. 엄마통 한번 제대로 겪는다. 마흔을 앞 둔 요즘, 나의 일에 대해서 그리고 나에 대해서 생각이 많아진다. 하지만 조급히 하진 않을거다. 물 흐르는 대로 자연스러운 것이 좋다. 그러다보면 이 생각 저 생각도 하게 되고 또 어느 순간 또 글이 마려워지기 시작한다. 글이 쓰고 싶다. 지금도 그 순간이다.
내가 잘하는 것이 글이 될 수 있고 쓰다보면 또 글이 좋아진다. 핸드폰에 찍어두었던 사진을 보고 혼자 생각하며 끼적여두었던 내용을 본다. 딸아이가 그런다. 엄마, 나는 나와 대화하는 창이 없는데.. 카톡창을 보고 말한 것이다. 나와의 대화창에 나는 일적인 부분도 적어두고, 해야 할일, 생각나는 말들을 모조리 적어둔다. 그걸 보더니 자기는 자기와의 대화창이 없다고 말한 것이다. "만들면 되지~" 생각은 벌떼같아서 이리 몰려다니다가 또 어느 순간 저리 몰려든다. 정신없는 일상 중에 내 정신을 차리게 만드는 것이 나와의 채팅이다.
이제는 '나'를 우선순위에 두어야 할 때
누구나 마흔의 성장통을 겪는다. 아이도 커나가고 엄마의 손길이 조금은 줄어들 때. 자기 앞가림을 조금씩 해나가면서 엄마의 시간도 조금씩 생기는 시기. 이제는 나를 돌아볼 때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나는 무얼 하고 싶은 지. 이제껏 코 앞의 일을 해결하느라 바쁘게만 지내온 시간 들 속에 가만히 웅크리고 있는 '내'가 있다. 넌 무엇을 하고 싶니? 하고 싶은 게 있어도 환경적으로나 물질적으로 제약이 많이 요즘이다. 하지만 나 다운 것을 찾고 싶다. 어떤 일을 할 때 신나는 지, 내 마음이 조금씩 움직이는 지, 쿵짝쿵짝 흥이 나는 지 가만히 관찰해볼 시간은 꼭 필요하다. 지금이어도 되고, 또 나중이어도 괜찮다. 타이밍이 딱 떨어져 나에게 맞는 걸 찾게 되는 순간이 올 지도 모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