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짱이엄마가 나를 사랑하는 법
나는 맥주를 참 좋아한다.
별거 아닌것 같은데 가벼운 안주에 맥주가 없으면 섭섭하다. 일주일 3~4일은 맥주를 마신 듯 하다.(요즘 줄어들었다) 매일 마실 수도 있는데 참는 편이다. 아, 이거 너무 심한거 아닌가?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매일 일일 일맥 하지만, 나 혼자서다. 남편은 주변 친구들이나 지인들과 가끔 술을 마시는 데 집에서 먹는 날은 손에 꼽을 정도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나 혼자 마실 수 밖에. 가끔 맥주를 사오라고도 주문한다. 그러면 4캔에 만원하는 편의점 맥주를 사오기도 한다.
둘째를 낳고 독박육아를 하던 시기가 있었다. 갓난아기를 아기띠하고 유모차를 밀고 근처 공원이나 카페를 전전했다. 갈 곳이 없었다. 아기가 울면 분유를 바로바로 대령해야 했다. 멀리 갈수가 없었다. 지금처럼 운전은 할수가 없었다. 갓난아기를 데리고 첫째 학교를 마중나가고 뜨거운 뙤약볕을 피하기 위해 카페에서 마시는 커피 한 잔. 그것이 나의 사치였다. 저녁마다 맥주로 나를 달래었다. 가끔이었지만, 맥주의 시원한 한 모금이 넘어가면 노곤했던 하루가 풀리는 기분이었다.
일일 일맥?!
그런데 어느 순간 혼자먹는 맥주도 맛이 없었다. 함께 짠~ 하고 분위기 좋게 마시는 맥주가 아니어서 그런지, 배만 불렀다. 마땅히 안주 할 것이 없어 더욱 그랬는지도 모른다. 매일 하루 한캔은 비워야 잠이 솔솔 왔는데, 우지끈 머리만 아팠다. 단지 맥주 한 캔인데 머리가 둔~ 하게 띵 할 때가 있었다. 이렇게 매일 먹으면 안되겠구나 생각했다. 누군가 그랬다. 술도 기분좋을 때 마셔야 한다고.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기분 좋을 때, 가족이나 사람들과 함께 기쁜 일이 생겼을 때 샴페인처럼 퐝~ 터뜨려주어야 하는 것 아닐까?
생각해보니 나는 늘 우울한날, 너무 힘든날, 일 때문에 너무 지친날, 스트레스 왕창 받아서 어디 하소연할 곳 없는 날, 그런 날 맥주를 집어들었다. 그러고선 스트레스를 맥주로 풀었다. 꿀걱꿀걱 마시는 순간은 쌓여있던 피로와 스트레스가 잠시나마 날아가주었으니까. 그런데 그 순간은 그렇게 지나간다고 해도 그 다음날, 나는 뭘 한거지. 머리만 띵~ 하니 아프니 허무했다. 그래. 이젠 좀 줄이자. 줄여나가자 생각했다.
새로운 아지트가 생겼다. 나만의 장소다. 백팩하나에 책 두 권을 넣는다. 근처 빵집 카페로 향한다. 커피값은 비싼데(자리값이겠지?) 2층 카페 자리가 마음에 든다. 남편에게 아이들을 돌 볼 시간을 준다. 나에게는 이 곳이 기분전환을 하는 곳이자, 나의 일터다. 내가 글을 쓰는 곳이기도 하다. 아늑한 창가자리에서 창밖을 바라본다. 신호등도 보고, 비오는 거리도 바라본다. 지나가는 사람도 본다. 가끔 배가 고프면 빵을 고르기도 하는데, 커피만 홀짝인다. 밀가루로 만든 빵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 소화를 잘 못 시키기 때문이다. 사 두면 집에 가져간다. 일일 일글 하는 욕심은 없다. 사는 재료로 글을 적는 일인데, 일상 생활 속 스쳐 지나가는 생각들을 하나, 둘 조각 처럼 모으다 보면 그게 글이 된다. 그래서 일일 일글 하기에는 역부족이다. 하루 8시간이상 일을 해야 하고, 아이들을 돌보고, 그 때 그 때 중요한 순간들이 나에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일주일에 한 글 정도는 가능하다. 지금의 내가 그렇듯이.
체험, 방문의 현장
방문이 많아 끼니를 거를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잠시 방문지 근처에 차를 세우고, 눈에 띄는 카페에 들어간다. 샌드위치가 있으면 다행이고 없으면 쿠키 로라도 배를 채운다. 요즘 너무 자주 커피를 마신듯하여 줄여나갈 까 생각한다. 든든이 아침을 먹고 다니지 않기 때문에 점심시간보다 일찍 배가 고픈 편이다. 어느 날은 방문가기 전 맥도날드에서 모닝세트를 주문했다. 단지 따끈한 계란 후라이와 얇은 베이컨, 빵만 곁들일 뿐인데 맛있었다. 예상 외의 기쁨. 의외의 조화였다. 이래서 맥 모닝 맥 모닝~ 하는 건가 싶었다. 단촐한 식사를 좋아하는 나에게 안성맞춤 한끼였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소화를 잘 못시키고 햄버거 하나의 양이 많기 때문이다. 남편은 한 개 반은 먹어야 배가 차는데, 나는 큰 햄버거 하나는 버겁다. 억지로 구겨넣다가 체한 적도 있기 때문이다.
땀이 비오듯 옷을 적시고 일을 한 적이 많았다. 주구장창 날씨가 흐렸던 50여 일 동안의 장마 기간에도, 그 기간이 지나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여름에도 집을 방문할 때마다 땀이 흘러내렸다. 방문 가는 사이에 잠깐 동안의 시원함을 달래줄 곳으로 향한다. 그 곳에서 나는 맛있는 음식들로 허기를 채우고 책을 한 번 쓰윽~ 훑어본다. 나도 이런 책을 쓰고 싶다. 이런 책은 어떻게 써야 할까? 요즘의 신간도 둘러본다. 나를 기분 좋게 하는 것은 책과 맛있는 음식이었다. 바쁜 걸음을 하면서도 맛있는 음식을 먹고 나면 기분이 좋아진다. 내가 좋아하는 책과 같은 공간에 있으면 그 또한 기분이 좋아지는거다. 곧 나올 나의 책도 조금씩 아니, 아주 많이 기다려지는 거다.
나를 사랑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나에게 파란색 원피스를 선물해 준날, 나에게 책 한 권을 선물해 준 날, 나에게 맛있는 식사를 대접한 날. 그런 날들이 있어서 나는 나를 사랑할 수 있었다. 지친 더운 여름 날에 우거지탕을 먹으러 달려갔다. 나는 국물 속에 든 고기를 사실 좋아하진 않는다. 하지만 내가 자주 찾아가는 식당의 우거지탕은 야들야들한 고기가 들어있어 아삭한 김치와 함께 먹으면 나를 든든히 대접해주는 기분이 든다. 시원하고 얼큰한 국물, 뜨근한 국물을 한 입 먹고 나면 뱃 속이 든든이 채워진다. 기운이 쭈욱 빠졌던 날도 기운이 거뜬이 생기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좋다.
내가 거의 매일 혼밥을 하고, 오늘 먹은 것을 찍어 보내니 아이가 묻는다. "엄마, 오늘은 뭐 먹어?" "우와~" 아이도 요즘 집에서 거의 매번 혼자 식사를 하는 터라, 엄마가 부러웠는지 묻는다. 다음에는 같이 오자~ 한다. 일을 쉬는 날, 아이를 데리고 여기저기로 놀러도 다니고 싶다. 맛있는 것도 사주고 같이 서점에도 책도 보는 일상을 좋아한다.
나는 본디 베짱이인데, 개미처럼 바지런히 돌아다닌 건 아닐까?
나는 원래 흥이 많은 여자이다. 흥이 많은 여자 인 것 같다. 음악을 들어도 그렇고 멋있게 춤추고 노래하는 모습에 흥분하기도 한다. 나 자신을 걸크러쉬로 여기고 싶다. 나는 띵가띵가 돌아다니며 춤추고 노래하는 베짱이의 모습인데, 바지란히 개미처럼 돌아다닌 건 아닐까? 원래 문과체질인데 이과에 간 것처럼. 나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해, 생각할 시간이 없었기에 그랬는 지도 모른다. 이과 체질이면 어떻게 문과 체질이면 어떤가. 모든 것이 나 인걸. 가을에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처럼, 매일매일 해야 할 일이 산더미 처럼 쌓이는 요즘이지만 베짱이처럼 잠시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책도 보는, 그리고 글도 쓰는 생활을 이어가고 싶다. 베짱이 엄마이기에 살림은 젬병이고 그때그때 보이는 짐들을 안보이는데 쑤셔넣고 집안일 했다고 말하는 엄마지만, 그래도 베짱이 나름의 방법으로 이 정도면 잘했지! 말해본다. 베짱이 엄마에게서 베짱이 딸의 모습이 보인다. 베짱이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열심히 한다. 지금의 내가 그렇듯이. 아이도 말한다. "엄마, 나는 할 때 제대로 해. 집중력이 대단한 것 같아"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은 순간에 제대로 해내는 것. 그것또한 삶의 지혜와 노하우가 아닐까.
함께 나눌 수 있어 좋은 느낌!
맥주가 나이고 내가 맥주이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혼자 먹는 맥주는 맛이 없었다. 맥주로 잠깐의 피로를 가시게 할 순 있지만, 헛헛한 마음은 채워지지가 않았다. 맥주보다는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나를 더 사랑하기로 했다. 나에게 책 한권을 더 사주고 나에게 말을 걸고 나를 돌아보며 글을 쓰는 일. 그게 나를 돌보는 일이고, 나를 생각하는 일이었다. 어느 사람에게는 술친구가 위안이 되고, 또 나 같은 사람에게는 글 한 줄이 위안이 되기도 한다. 친정엄마에게도, 동생들에게도, 남편에게도 하지 못하는 무수한 속 이야기들은 나만이 들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오는 일상이지만, 일 분 일초도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없다. 한 사람의 내면에는 다양한 사상과 생각들이 내재해있고, 이걸 담아만 두지 않고 생각을 글로 정제화해서 풀어내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게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었다. 감사한 일은 그 속이야기를 누구에게 들려줄 수 있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어쩌면 누군가는 내 흔해빠진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수도 있고, 깊게 공감할 수도 있다. 맥주는 함께 어울려 마셔야 진정한 맛과 멋을 내는 것처럼, 나도 글을 쓰면서 내가 조금씩 더 좋아지고 있음은 분명하다. 나의 글도 함께 공감할 수 있는 멋스러운 맛과 풍미를 가질 수 있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