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라는 양념을 일상에 한 꼬집
느린 걸음일지라도
에라이.. 모르겠다. 글이나 쓰자. 지금의 내 생각이다. 아침 돌보미 선생님이 오시고 둘째 아이가 맘마~ 하길래 분유를 아침에 타주었다. 일정량을 남기고 아침인사를 나오는 길.. 출근길이다. 매일 차에 시동을 걸고 유유히 주차장을 빠져나온다.
지난 저녁, 남편은 늦게 들어왔다. 회식이었다. 단체 회식이란다. 아마도 많이 늦을 거고, 많이 술에 취해서 들어올 거다. 둘째 아이와 함께 누워있는데 남편이 들어오는 소리가 난다. 약간은 슬퍼보이는 듯한 얼굴을 하고 둘째 아이를 바라보는 그.. 무슨 일이 있었나? 법률사무소에서 사무장으로 최근 일을 시작한 남편은 여러차례 직장을 옮겼다. 그리고 마케팅이라는 것이 눈에 보이는 실적이 있어야 하는데, 요즘 같은 상황과 (코로나와 사회적 거리두기 등) 정착하지 못하는 직장으로 알게 모르게 여러가지 서러움을 당했을 터였다.
어제도 그런 상황이었나보다. 대표는 자신이 투자한 몇 천만원의 돈이 마케팅으로 들어갔으니, 빨리 실적을 내주길 원했고 이제 겨우 한 달이 지나가는 상황에 눈에 보이듯 빠른 결과물을 얻기란 결코 쉬운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무시하는 말투로 아마도 남편을 대했을 터였다. 모든 직원들이 있는 회식자리에서 꾸지람아닌 꾸지람과 면박을 주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이라는 무거운 짐을 어깨에 짊어진 그는 묵묵히 그 자리를 버텨주었다. 그리고 나서.. 집에 돌아왔다.
남편에게 용돈을 주는데, (남편은 돈 관리에는 약하다) 오늘도 정말 약간의 용돈을 주면서 기분 풀기를 바랬다. 나 역시 환자와의 소통이나 회사 일로 머리가 지끈 거릴 때가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금의 인생길을 살아가면서 묵묵히 그 길을 버티어 낸다.
출근 길에 운전을 하는 데 앞에 천천히 탈탈탈 가는 계란차가 보인다. 정차하면서 사진을 한 컷 찍었다. 뒤에서 보았을 때 유독 천천히 간다고 생각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계란을 한 트럭이나 싣고 있으니 천천히 운전을 할 수 밖에.. 빨리 운전하거나, 혹여라도 도로길 위에 움푹, 볼록 튀어나온 구간을 쌩~쌩~ 달리다보면 계란들은 와장창 깨질 터였다. 그렇게 계란차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어제도 딸아이 학교 앞에서 주차를 하는데 슬금 슬금 아주 천천히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차를 따라들어갔다. 운전을 하면서 나 역시 아,, 좀 빨리~~ 왜 이렇게 느려~ 하는 생각들이 주춤할 때가 많다. 어제도 살짝 그런 생각이 들고, 입 밖으로 좀 빨리 가라~ 라는 말을 하는 대신 아이가 옆에 있으니 꿀꺽 삼켰다. 그렇게 천천히 아주~ 천천히 차를 따라들어갔다. 방문을 하고 운전을 하고 주차를 하는 동안에 나도 꽤나 쎄진 모양이다. 입 버릇도 그렇고 마음도 그런 듯하다. 주차를 하고 내리는 사람들을 보았다. 아주머니 세 분이서 차례로 내렸다. 아마도 친구들과 함께 마실 나온 것이겠지? 나의 어머니 또래인 듯 보였다. 차 안에 누가 타고 있을 지 모른다. 내리는 사람이 나의 부모님과 같은 연배일 수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차를 운전하다 보면 조심해야 하는 상황이 많고, 특히 나이가 들어가면서 천천히 속도를 내는 경우가 많다. 위험하기도 하고, 나의 아버지도 며칠 전 비오는 거리를 운전하면서 많이 힘들었다는 이야기가떠올랐다. 나의 부모님이 떠올랐다. 앞에 차가 천천히가면 아,,, 나의 부모님이 운전하신다.. 라고 생각할 때가 있다.
둘째 아기의 유모차를 밀면서도 그렇다. 아기와 함께 가면 걸음이 느려진다. 매우 느려진다. 길을 가다가 꽃도 구경해야 하고, 사뿐 사뿐 내미는 걸음걸이를 발맞추어 걸어간다. 독촉할 수가 없다. 나의 아이의 걸음을 맞추어 뒤에서 지켜보면서 걷는다. 아장 아장 걸음마를 하는 아기들, 총총총 뛰어가는 아이들, 그 곁에서 느린 걸음으로 천천히 걸어간다. 길을 가면서 구름도 보고, 새 소리도 듣는다. 길가에 핀 민들레 꽃, 네잎클로바도 본다. 입으로 후~~ 불어본다. 아기의 걸음을 맞추면서 천천히 걷는다. 그렇게 나는 지금의 순간을 집중하게 된다.
어느 책에선가 본 구절이 생각이 난다.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 날. 우수수 바람의 리듬에 맞추어 떨어지는 낙엽들. 낙엽들은 어차피 소복히 소복히 쌓인다. 빗자루로 아무리 힘껏 쓸어보았자 또 떨어진다. 조금씩 우수수 떨어지고 또 소복히 쌓인다. 그렇게 낙엽을 쓸고 또 쌓인다. 또 쌓이고 또 쓴다. 떨어지는 낙엽들 사이에서 그저 벤치에 앉아 커피를 마시거나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여유. 우리의 일도 그렇지 않을까? 매일매일 새로 할 일들이 생기고 전 날 미루어두었던 일들이 쌓여간다. 매일 사야할 것들이 생기고 또 장 볼 것들이 생긴다. 남편, 아이, 나를 위해 사야할 것들, 챙겨야 할 것들이 많다. 하나씩 해결해 가지만 또 하나가 생긴다. 회사일도 그렇다. 하나를 겨우 해결해 놓았더니 또 다른 일이 생기고 밀물처럼 일이 몰려올 때가 있다. 어차피 할 일은 우리 주위에 넘쳐난다.
잠시... 일은 일대로 두고 벤치에 앉아 커피를 마셔보면 어떨까? 눈을 들어 하늘도 바라보고 눈을 감고 새소리도 한번 들어볼까? 그대로 멈춰라.. 처럼 하루에 단 10분이라도 근처 벤치나 공원에 앉아서, 꼭 공원이 아니라도 좋다. 그저 내가 있는 그 자리에서, 차 안에서 그대로 멈춰라 시간을 가져보는 것. 그리고 내가 무슨 말을 하는 지 잠시 나만 생각해보기. 나의 소중한 가족의 눈을 잠시 들여다보기. 내 아이가 말하는 말이 어떤 말인 지 잠시 귀기울여보기. 끄덕여보기. 일상 속에 소중한 귀기울임 양념 한 꼬집을 떨어뜨려 주는 것. 그거면 충분하다. 굳이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그저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는것. 나는 일을 하려다가 말고 지금 내가 하고싶은 글을 쓰고 있다. 글을 쓰고 싶었고 내 앞에는 어제 선물로 받은 시원한 아메리카노가 한 잔 놓여 있다. 비가 올 듯한 우중충한 날에 마시는 시원한 아메리카노는 나에게 여유라는 양념 한 꼬집이다.
오늘 나에게 여유 한 꼬집은 무엇일까? 한 번 찾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