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하나는 무엇이었을까? 하나의 모임, 한 명의 사람, 한 개의 원고, 하나의 책, 한 개의 동영상, 한 명의 손님. 조금 전 원고를 어떤 내용을 써야 하나 빈 여백을 앞에 두고 앉았다. 그러던 중 핸드폰 벨소리가 들렸다. 누구지? 보통 이 시간은 남편이 퇴근길 마치고 전화 와서 오늘도 그러겠거니 핸드폰 액정화면을 봤다. 어라? 송현옥 더블엔 대표님의 전화다. 무슨 일이지? 잠시 생각하다가 통화버튼을 누른다.
"롯데마트 문화센터에서 강의요청이 들어왔어요~!"
송현옥 대표님과는 오랜 인연이 있다. 출간될 뻔한(?) 책이 있었다. 내가 방문간호사로 일하면서 매일의 일상을 기록하던 원고를 출판사로 보냈고, 대표님과 그렇게 인연이 시작되었다. 방문간호사 일을 그만두면서 회사내부적인 사정으로 <달리니까 좋다, 엄마간호사> (가제)는 출간되지 못했지만, 그 인연을 시작으로 대표님과 연락을 주고받았다. 이번 책도 그런 인연으로 시작되었다.
일 년 전 나는 <하루 10분 그림책 읽기의 힘> 원고를 작성하고 있었다. 제목에서 보는 바와 같이 그림책육아에 관한 이야기다. 당시 그림책 수준을 넘어서 '성교육' 그림책도 섭렵하고 있었는데, 해당 내용을 원고에도 기재했다. 브런치에 올린 그림책성교육 원고글을 우연히 사서선생님이 보고 연락이 왔다. 그림책성교육이 평소 들어보지 못했던 강의이기도 하고, 꼭 필요한 교육이라는 걸 알기에 강의요청을 해온 것이다. 난생처음으로 '성교육' 강의를 진행하게 되었다. 성교육 강의로는 첫 번째였다.
단원시 어린이도서관 주체로 진행되었던 '부모와 아이가 함께하는 성교육'은 대성공이었다. 코로나상황이라 줌온라인강의로 대체했는데, 가정에서 엄마와 아이가 함께 들을 수 있어서 더 좋았던 것 같다. 초등 저학년친구들도 있었고 어린 친구들도 있었다. 나의 이야기가 도움이 많이 되었다며 사서선생님은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우연이지만 브런치의 글을 보았고, 나에게 강의요청을 해왔고, 그 강의를 시작으로 나는 그림책성교육 강사의 길로 접어들었다. 하나의 관문을 지났더니 또 다른 문이 보였다. 김포지역 커뮤니티카페에서 활동하고 있었는데 매달 무료로 진행되는 그림책모임 회원을 모집하기 위해서였다. 평소에도 그림책모임 공지글을 올리고 모임에 참여하는 분들이 있었다. 매달 각기 다른 주제로 모임을 열었다.
한 번은 그림책으로 함께하는 성교육이 주제였다. 자녀를 양육하고 있는 부모들은 단연 궁금한 주제다. <엄마씨앗 아빠씨앗> 그림책을 시작으로 다양한 그림책을 선보였다. 함께 읽고 그림을 보면서 '그림책 성교육 시간'에 빠져들었다. 당시 부모님들이 남겨준 후기만 보아도, 자녀들과 함께하는 성교육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다. 그 여파는 내가 간호사로 일하는 동안 계속되었다.
내가 일하던 강화비에스종합병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봄길책방이 있었다. 인천 강화와 김포 사이에 위치한 봄길책방은 내가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곳이다. 고즈넉한 저녁노을을 바라볼 수도 있고, 따듯하고 잔잔히 나를 맞이해 주는 책방 부부대표를 만날 수 있어서다. 좋은 책들도 참 많았다. 유치원에서 오랜 기간 일해온 대표님과 편집자로 책을 만들어오신 남자대표님이 손수 고른 책들로 서가를 가득 채웠다. 책들 속에서 새로운 책, 재미있는 책, 울림이 있는 책을 만날 수 있었다.
어느 날 봄길책방에서 연락이 왔다. 인스타를 통해 나의 성교육강의사진을 접하게 된 부모님에게 강의요청이 온 것이다. 경기도 광명에 거주하는 초등학생 친구들과 함께 책방스테이를 하면서 성교육강의를 듣고 싶다고 했다. 나는 흔쾌히 알겠다고 했다. 나의 도움이 필요한 곳이라면 당시 없는 시간을 빼서라도 강의를 다녔다. <그림책으로 시작하는 성교육>에서도 언급했듯이 광명에서 방문한 친구들과 부모님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아이들은 해맑고 순수하게 나의 강의를 들었고, 가끔 진지하거나 장난기 가득한 행동을 취할 때가 있었다.
무엇보다 그림책 속으로 진지하게 임하는 친구들이 내심 흐뭇하고 뿌듯했다. 아이들이 자신의 몸의 변화에 대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신체건강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는 과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기를 바랐다. 아기는 어디로 나와? 아기는 어떻게 생겨? 를 시작으로 아기가 어떻게 커나가는 지를 그림책을 보면서 함께 알아갔다. 성교육은 말로만 전하기에는 참으로 어렵다. 그래서 그림책이 필요하다. 추천하는 그림책을 연령대별로 보고 읽어준다면 아이들도 일상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성교육이 가능하다. 내가 운영하는 김포의 "최고그림책방"에는 해당연령별로 추천할 만한 그림책들로 가득하다.
오늘 전화받은 강의소식에 이전 처음 강의할 때를 떠올려본다. 사실 첫 강연은 경북 구미에서였다. 고향이자 나의 친정인 구미는 나와의 인연이 아주 깊다. 가끔 친정으로 향할 때마다 들르는 곳이 있었는데 바로 구미 삼일문고다. 이름처럼 서점 맞다. 일반 서점이 아니라 아주 큰 대형서점이다. 교보나 일반 대형서점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저자강의도 제법 많이 열리는데, 삼일문고의 대표님이 전국을 돌아다니며 좋은 서점을 일구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걸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하고 있다. 나도 그런 서점이 될 수 있을까? 감히 생각해 본다.
첫 강의도 그냥 열린 것이 아니었다. 내가 첫 번째 책에 삼일문고 이야기를 적었고, 첫 책이 나온 이 후 똑똑 노크를 했다 (진짜 노트가 아니다!). 서점 관련 메일이나 기재된 연락처로 연락을 주기적으로 보냈다. '나라는 사람도 여기 있어요!' 알아봐 주든 단번에 알아보지 않든 손을 흔들며 나를 알리기에 열중했다. 메시지가 통했던 것일까? 대표님에게 핸드폰으로 연락이 왔고, 그렇게 부랴부랴 첫 번째 강의가 진행되었다.
두려워만 했다면 이루지 못했을 성과이고 결과다. 완벽해지기까지 기다렸다면 강의를 하는 기회조차 얻지 못했을 거다. 그저 나에게 온 기회라고 생각했다. 내가 열심히 씨앗을 뿌렸고 거름을 부었으니 싹이 틔울 날이 오겠거니 지켜보고 또 지켜보았다. 그러는 동안 나는 매일의 내 할 일에 집중했다. 간호사로 주어진 업무를 이루어냈고, 직원들과 불편한 사항이 생기면 건의하거나 개선하기 위해 방법을 찾아보았다. 수간호사라는 직책만큼이나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는 없었다. 내가 근무하는 장소에서는 나의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고, 더 나은 개선할 부분이 있는지 늘 고민하고 생각했다. 실제로 매뉴얼을 만드는 작업을 진행하기도 했는데, 새로운 직원이 올 때마다 통일화된 매뉴얼로 교육하면서 시간도 단축하고 업무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였다.
연차를 사용하거나 쉬는 날에는 강의하는 업무에 주력했다. 멀리서 찾아온 분도 있었고 김포 가까이에 거주하는 분도 있었는데 늦은 저녁 퇴근하자마자 강의를 하고 온 날도 있었다. 나를 찾아주고 성교육이 필요한 곳이라면 주저하지 않았다. 진심과 정성으로 내 아이에게 교육한다는 마음으로 매 순간 임하고 시간이 흘렀다.
나는 책방을 열었고, 지금도 강의와 성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처음 책과의 만남이 그림책 읽어주기로 이어졌다.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준 시간이 어쩌면 나에게 다가온 행운의 열쇠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덕분에 나는 아이들과 오롯이 함께 있는 시간을 늘려나갈 수 있었다. 한 명에서 시작한 모임이 제법 규모가 커졌고, 한 명의 가입에 불과했던 네이버카페가 100명이 넘을 정도로 무럭무럭 자라나 가고 있다. 그림책에 관심 있는 분들이 많다는 사실에 기쁘고 보람차다. 처음의 시작에서 주저하거나 머물렀다면 지금의 나와 책방은 없었을 거다.
하나에서 시작하면 된다. 한 명이라도 모임을 꾸려보자. 그 한 명이 좋으면 다른 친구를 데리고 온다. 매일의 일상 속에 나는 나에게 미션을 건넨다. 출판사에 원고를 보내는 일도 그랬고, 강의를 하는 일도 그랬다. 매일에 충실하고 준비하면서 하나씩 만들어나가는 보람도 느낀다.
점을 하나 찍으면 그 점이 다른 점으로 이어진다. 나의 노력과 씨앗, 도전, 시도가 아주 자그마한 점이다. 점은 또 다른 점으로 이어지고 그렇게 선이 되고 마침내 별이 될 것이다. 내가 오늘 무수히 찍은 작은 점들이 모두 선이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점을 찍지 않았다면 이어질 선도, 나의 영향력도 없었을 거다. 지금 내가 있는 자리에서 점 하나를 찍어보자. 긍정확언도 좋고, 필사도 좋고, 이렇게 글 쓰는 일도 좋다.
모두 하나에서 시작한다. 내가 마주하는 한 사람, 내가 행했던 한 걸음, 내가 끄적인 한 줄 그렇게 당신의 한 줄기 인생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