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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혜 Mar 23. 2023

제니 홀저(Jenny Holzer), '불화'의 텍스트

<경구들>과 <선동적 에세이>, <생존>의 수사법과 전시 형태를 중심으로

들어가며

  프랑스의 정치철학자 자크 랑시에르(Jacques Ranciére, 1940- )는 정치와 미학의 공통점이 '불일치(dissensus)'에 있다고 보았다. 정치도, 미학도 그에게는 어떤 의견이 일치할 수 없는 근본적인 대립 관계와 갈등 상황이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등장하는 용어가 '불화(mésentente)'이다. 필자는 이 불화의 전략으로 예술론을 펼친 랑시에르의 이론을 통해 제니 홀저(Jenny Holzer, 1950- ) 작품의 텍스트 기법과 텍스트가 구현된 거리의 전시 형태를 분석하려고 한다.


  홀저의 작업이 가지는 정치적 성격에 관한 분석은 이미 선행된 연구 사례가 많다. 그럼에도 필자가 비슷한 주제의 글을 또 한 번 얹는 이유는 텍스트의 수사법과 공공장소에 이루어지는 전시 형태의 정치적 전략을 '불화'에서 찾고자 하기 때문이다.


  홀저의 작품은 텍스트 저작에 있어서나 활용하는 매체에 있어서 1970년대 대학원 시절부터 지금까지 여러 변화를 거쳐 왔다. 많은 선행 연구에서 그녀의 작품이 시기적으로 변모함에 따라 정치적 성격이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는데, 그 정치적 성격이 특히 잘 드러나는 작품은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중반까지의 전기 텍스트 저작들이다. 1980년대 이후의 텍스트들은 이데올로기적 성향을 드러내기보다 개인의 사적인 일상의 내용을 이야기하고, 점차 사회적 범죄 등으로 인한 희생자를 추모하는 비가(elegy) 형식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대기에 걸친 그녀의 작업이 대개 사회적, 정치적 사안을 다루고 있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그 이유는 첫째로, 비교적 최근의 텍스트 작업들의 성격이 다르다 하더라도, 초기 텍스트들이 여전히 여러 매체로 변형되면서 '타이포그래피'의 형식으로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며, 둘째로, 작업마다 텍스트가 지니는 의미보다 수사법의 전략, 전시 형태의 전략이 정치적이기 때문이다.

 

  2000년대부터 홀저는 텍스트를 직접 작성하기를 중단하고 타인의 글이나 국가의 공문서를 차용하여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따라서 본고에서 분석하는 홀저의 작업은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중반까지의 전기 텍스트 저작, 그중에서도 〈경구들(Truisms)〉(1977-1979)과 〈선동적 에세이(Inflammatory Essays)〉(1979-1982), 그리고 〈생존(Survival)〉(1983-1985)을 중심으로 한다.



랑시에르의 예술론

감각적인 것의 나눔

  랑시에르는 '정치'와 '미학'의 개념을 기존과 다르게 독자적으로 제시하며 정치철학 및 예술론을 펼쳤다. 랑시에르에게 정치란 권력을 획득하기 위해 투쟁하고 획득한 권력을 유지,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갈등이 일어나는 특수한 공동의 공간이다. 예컨대, 정치라는 공간에서 일어나는 갈등이란 공동의 대상을 지칭하는 것에 대한 갈등. 공동의 결정에 주장을 펼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거나 인정을 받는 주체에 대한 갈등, 또는 공간의 존재에 대한 갈등과 같은 것들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갈등을 통해 정치는 공동의 것을 배분하고 규정하는 '감성의 분할', '감각적인 것의 나눔(Le partage du sensible)'을 구성한다.


  미학에서의 감각적인 것의 나눔은 랑시에르가 사유와 지각, 행동양식에 따라 구분한 각각의 '미적 체제'에서 드러난다. 각각의 에토스(ethos, 존재방식)에 따른 삶을 사는 것이 윤리적 질서였던 플라톤주의의 감성구조에서 예술작품은 윤리적 질서에 혼란을 일으킬 뿐인, 모방(mimesis)해낸 시뮬라크르(simulacre)에 지나지 않았다. 이때 개별화되지 못한 예술은 모방과 재현을 인정했던 다음의 미적 체제(재현적 예술 체제, régime représentatif des arts)에 이르러 '가시성의 체제'로서 자율적 지위를 획득했다. 그러나 이 체제에서는 여전히 표현의 우위와 주제 및 장르 간의 우위, 정치적·사회적으로 주체가 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간의 위계 등의 구별이 공동체 내에 존재했다. 예술은 랑시에르가 세 번째로 제시한 '미학적 예술 체제(régime esthétique des arts)'가 되면서 모든 위계로부터 해방되며 고유한 감각과 감성을 구별함으로써 행해지게 되었다. 모더니즘 이후의 예술 개념을 이 세 번째 예술 체제와 관련하여 이해할 수 있다. 이처럼 미학도 정치가 그러하듯 감성의 분할을 거듭해 왔으며, 화합이나 합의가 아닌 불화, 불일치를 전제하고 있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정치와 미학의 관계에서 그가 말한 '정치의 미학'과 '미학의 정치'는 무엇일까. 그는 『해방된 관객(The Emancipated Spectator)』(2008)에서 정치의 미학과 미학의 정치의 가장 큰 구별점을 예술작품과 정치 사이의 미적 거리에서 찾고 있다.


정치의 미학의 핵심은 정치적 주체를 통해 기존의 동일화와 분류화의 체계에 도전함으로써 정치적 논쟁을 산출하는 데 있다. (…) 반면, 미학의 정치의 핵심은 가시적 실천을 통해 감각적 경험의 구조를 형식적으로 재편하는 데 있다. (…) 예술의 정치라 불리는 것은 이질적 논리들의 교착이다. 먼저 '미학의 정치'는 예술의 체제에 고유한, 감각적 경험을 구조화하는 정치적 장에 끼치는 효과이다.  
-자크 랑시에르, 『해방된 관객』, 양창렬 (역), 서울: 현실문화, 2016, p. 91 참조.

  

  정치적인 것이라 규정되어 온 기존 예술은 그 자체로 정치적 함의를 드러내고 선동성(煽動性)을 띠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는 미학의 정치가 아니다. 그러한 예술에서 예술가의 의도는 그 자신이 목표하는 바에 따라 관객에게 쉽게 전달된다. 의도된 기호 그대로 전달되는 기존 예술의 인과적 논리는 결국 합의로 이어지고, 이에 따라 예술가와 작품과 관객 사이의 동일성, 일치를 산출한다. 반면 미학의 정치에서는 작품이 그 자체로 정치적 의도나 내용을 시사하는지의 여부보다 감각적 경험 방식의 문제가 우선된다. 랑시에르는 예술의 정치성이란 역설적으로 예술작품이 정치로부터 미적 거리를 둘 때 가능해진다고 보았기 때문에, 미학의 정치를 근간으로 하는 예술을 긍정적 모델로 제시했다. 따라서 정치적 예술이란 합의에 이르지 않는 예술, 의도와 결과의 인과적 논리가 분열되는 예술, 즉 '불화'의 전략을 사용하는 예술이다. 


  그렇다면 미학의 정치를 근간으로 하는 예술은 과연 어떤 정치적 실효성을 지니는가. 예술의 가시적 실천으로 기존의 체계와 분리된 새로운 감성을 구성하는 분할, 이 전략이 수반된 예술가들의 작업에 대해 랑시에르는 허구(fiction)의 작업이라 설명한 바 있다.


그들을 가시적인 것과 언표 가능한 것의 기준을 변화시키고, 보이지 않았던 것을 보게 만들며, 매우 쉽게 보였던 것들을 달리 보이게 만들고, 연관이 없던 것에 관계를 설정하려 한다. 이는 지각의 감각적 조직과 정서의 역학 속에 단절을 만들어내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그야말로 허구(픽션)의 작업이다. 허구는 현실 세계에 반대되는 상상의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다. 허구는 '불일치'를 가져오는 작업이다.  
-자크 랑시에르, 위의 책, p. 92 참조.

  

  사람들은 예술을 통해 그동안 쉽게 보았던 것들을 달리 보게 되거나 보지 못한 것들, 지나친 것들을 다시 보게 됨으로써 새로운 감각에 대한 자극을 받는다. 미학의 정치가 발휘하는 정치적 효력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다시 정리하자면, 정치적 예술이란 예술가의 의도로부터 자유롭고 관객이 이해하는 데 이르기까지 인과성을 지니지 않으며 그로부터 정치적 주체화의 전략이 개입되지 않는, 정치로부터 거리를 둔 예술이자 감각에 분열과 단절, 재정의, 재구성을 일으키는 예술이다. 이러한 전략은 홀저의 작업 전반에서 발견된다. 



제니 홀저의 작품에 나타나는 불화의 전략

1) 전기 텍스트 저작(1970년대 후반-1980년대 중반)

  홀저는 1975년 로드 아일랜드 스쿨 오브 디자인(Rhode Island School of Design) 대학원에 진학한 이후, 이미지와 언어의 관계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1977년 첫 텍스트 작업이었던 〈경구들〉을 시작으로 현재까지도 문자 기반의 텍스트 작업을 이어가고 있는 미국의 개념미술가이다. 그녀가 1960-1970년대 개념미술에 영향을 받았던 것은 대학원 시절이었는데, 특히 미술에 언어를 도입하게 된 데에는 조셉 코수스(Joseph Kosuth, 1945- )의 영향이 컸다. 코수스 외에도 로렌스 와이너(Lawrence Weiner, 1942-2021)나 솔 르윗(Sol Lewitt, 1928-2007) 등으로부터 영향을 받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그들과 차이를 두기도 했다.


관객이 예술작품을 보고 작가의 개념을 이해하는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며, 작품이 작가의 손에서 벗어나면 관객이 작품을 지각하는 방식을 통제할 수 없고 저마다의 사람들 모두 동일한 작품을 각자 다른 방식으로 이해할 것이다.  
-Sol Lewitt, "Paragraphs on Conceptual Art," 1967, p. 14 참조.


  관객 관점에서의 능동적 해석을 긍정하는 르윗의 이러한 입장을 홀저 역시 계승했다. 텍스트가 가지는 구문적 특징, 일반 대중을 향하는 작업의 방식, 작품을 해석·이해하는 관점의 중심을 관람자에게 양도하여 능동적 해석을 열어두는 점 등의 영향이 그녀의 전반적인 작업 방향에 기원이 되었다. 그러한 이유로 홀저는 개념미술의 계보를 잇는 미술가로 알려져 있지만, 그 작품들은 초창기부터 이어진 활동과 관련하여 공공미술의 일종으로서 논의되기도 한다. 자신의 초기 작업 〈경구들〉을 포스터로 만들어 맨해튼 거리에 붙인 이후, 소호 거리를 중심으로 포스터, 명판, 리플릿, 책 등의 형태로 전시하는 등 도시의 공적 영역에 관여하는 거리미술을 구현하기 시작하면서 40여 년간 지속적으로 실천해 왔기 때문이다.


  〈경구들〉은 그녀가 대학원을 졸업한 직후 바로 참여했던 뉴욕 휘트니 미술관(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의 독립 연구 과정(ISP) 진행 중에 제작한 텍스트 작업이다. 텍스트는 제목과 같이 어디선가 본 듯한 상투적인 문장들로 이루어져 있다. 초기에는 40개에서 60개 정도의 문장으로 구성되었으나, 이후 200개 이상의 문장이 추가되었고, 문장이 시작되는 첫 단어의 알파벳 순서로 정렬되었다. A로 시작하는 문장, "사소한 지식이 오래간다(A LITTLE KNOWLEDGE CAN GO A LONG WAY)"부터 Y로 시작하는 문장에 이르기까지 총 275개의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니 홀저, 〈경구들(Truisms)〉 中 일부, 1977-1979.


  문장들은 실제 경구로서 자명한 것처럼 보이는데, 읽고 나서 한 번에 이해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한 문장의 문장구조를 먼저 살펴보면,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도덕성과 관련되거나 당연한 것들에 대한 재언급 정도로 보이는 문장이 있는가 하면, "나쁜 의도는 좋은 결과를 낳는다(BAD INTENTIONS CAN YIELD GOOD RESULTS)"와 같이 일반 도덕과는 상이한 문장도 있다. 또는 보는 즉시 의미가 이해되지 않는 문장들도 존재한다. 각 문장은 진술문의 형식을 띠고 있고, 발화하는 주체가 문장 속에 드러나지 않는다. 그렇기에 보이지 않는 익명의 사사로운 의견에서 나아가 개인적, 사상적 신념 혹은 이데올로기, 편견이 텍스트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문장들은 독립적으로 존재할 때 분명하게 피력되는 하나의 진리로서 위치하지만, 두세 문장, 혹은 전체가 모일 때에는 이질적으로 보이거나 의미가 상충된다.


  이어지는 두 문장 "사소한 지식이 오래간다(A LITTLE KNOWLEDGE CAN GO A LONG WAY)”와 “많은 전문가들은 괴짜다(A LOT OF PROFESSIONALS ARE CRACKPOTS)"에서 텍스트를 읽는 사람은 첫 번째 문장의 연장선상에서 '지식'과 관련된 다음 문장을 파악하고자 할 것이다. 그러나 곧 두 문장의 호응관계에서 연결되지 않는 이질성이 드러난다. 그다음 문장과의 관계에서도 인과관계란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알파벳 C로 시작하는 또 다른 경구의 배열을 보면, "아이들은 미래의 희망이다(CHILDREN ARE THE HOPE OF THE FUTURE)"와 "아이들은 다른 무엇보다 가장 잔인하다(CHILDREN ARE THE MOST CRUEL OF ALL)"처럼 의미가 대립되는 문장이 나란히 배치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할 포스터(Hal Foster, 1955- )는 홀저가 일상의 담론을 차지하는 사고들로부터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고, 저작자의 주체를 배제하여 전시함으로써 기존의 모든 질서와 논리, 법칙의 방향을 교란시켜 언어를 위기에 빠뜨린다고 보았다. 이처럼 문장이 하나로서 그 자체로 존재할 때 그것은 어떤 사상이나 진리를 표현하는 경구로서 존재할 수 있지만, 이질적이고 상충되는 다른 문구들 중의 하나로 제시될 때 각 경구들이 지니는 지위는 격하되어 버린다. 

 

  홀저의 작업을 정치적 예술이 되도록 하는 가시적 실천은 수사법에서 볼 수 있는 '캡션(caption)'의 전략으로 드러난다. 다이앤 윌드먼(Diane Waldman, 1936- )과의 인터뷰에서 홀저는 가장 명료하고 순수한 방식으로 발화할 수 있는 표상을 '캡션'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자신의 글쓰기에 적용하게 되었다고 말한 바 있다. 이와 같이 질서를 분열시키고 혼란에 빠뜨리는 효과는 홀저가 직접 쓰고 지우길 반복하면서 완성한 문구와 문구들 간의 배치에 따른 수사적 전략에 의해 드러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포스터가 「전복적 기호들」에서 홀저의 텍스트가 하나의 통념 사전으로 기능하여 결속과 단결, 일치를 강요하는 언어의 파시즘적 권력을 강탈한다고 설명하였던 것과 같이,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조작된 문장들의 배열은 각 의미를 흩트리고, 문장의 이데올로기적 구조를 분열, 파열시킨다. 이때 모순에 빠지는 지각적 경험이 가능해진다. 그리고 이러한 지각적 경험이 기존의 감성을 분할하고 새롭게 구조화한다는 점에서 홀저의 텍스트 전략은 불화를 통한 정치성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제니 홀저, 〈선동적 에세이(Inflammatory Essays)〉 中, 1979-1982.


  두 번째 텍스트 저작 〈선동적 에세이〉는 〈경구들〉과는 달리 문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문장들의 성격은 안정적 어조의 진술문 형식에서 보다 명령문이 증가하여 격정적이고 단호한 어조의 선언문 형식으로 바뀌었다. 수사적 전략은 〈경구들〉과 마찬가지로 이질적 문장들이 문단을 이룬다. 경구처럼 보이는 문장과 명령적 어조의 문장이 혼재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선동적 에세이〉에서도 역시 일반적 관념과는 반대되는 내용의 문장이 삽입되어 있다. "근심을 고문의 수준까지 강요하거나 공적 신뢰를 서서히 손상하라.(FORCE ANXIETY TO EXCRUCIATING LEVELS OR GENTLY UNDERMINE THE PUBLIC CONFIDENCE.)"와 같은 문장이 그러한 예가 된다.


제니 홀저, 〈선동적 에세이(Inflammatory Essays)〉 中, 1979-1982.


  물론 〈선동적 에세이〉의 내용 가운데 정치성이 강하게 드러나는 문장들이 존재한다. “조작은 사람들에 한정되지 않는다.(MANIPULATION IS NOT LIMITED TO PEOPLE.)”의 경우 정부나 기업에 의한 대중매체 조작, 여론 조작이 일어나고 있음을 함의하고 있고, 정치권력의 존재를 이야기하기도 하며, "너는 비옥한 땅으로 살아왔다. 지금 너는 곧 도살당할 돼지다. … 네 뒤를 봐라.(YOU HAVE LIVED OFF THE FAT OF THE LAND. NOW YOU ARE THE PIG WHO IS READY FOR SLAUGHTER. … LOOK OVER YOUR SHOULDER.)"와 같이 텍스트의 독자가 되는 누군가를 지칭하면서 훈계의 어조를 취하고 있기도 하다. 텍스트 내용의 의미를 파악할 때, 분명 정치적 의식을 건드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선동적 에세이〉라는 작품의 제목에서 '선동적'이라는 말은 '프로파간다'적 선동성이 아닌 정치적 예술이 지니는 '잠재성'이다. 텍스트의 익명성으로 정치적 주체화의 개입을 차단하고 있고, 정치성을 띠는 문장들이 그 자체로 독자를 정치적 변혁으로 이끌고 있지 않으며, 그러한 문구와 상충되는 또 다른 문구들 간의 충돌로 언어의 분열, 파기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제니 홀저, 〈생존(Survival)〉 中 "PROTECTME FROM WHAT I WANT", 1983-1985.


  〈생존〉에서는 공적 발화를 보였던 앞선 두 작품과 다르게 사적 발화의 면모가 조금씩 드러난다. 중성적, 중립적 진술문과 선언문 이후 〈생존〉에 이르러 홀저는 좀 더 자신의 말에 가깝게 글을 썼으며, "내가 원하는 것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라.(PROTECT ME FROM WHAT I WANT.)"에서 한 번 발화의 주체를 나타내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그럼에도 여전히 간단한 캡션의 문구 같은 간단한 진술문, 명령문, 그리고 이질적 문구들을 배열하는 수사법을 사용하고 있다. 텍스트 내용의 측면에서 〈생존〉은 계급, 인종, 성별 등에 관한 문제를 모호하고 완곡하게 다루고 있다. 


제니 홀저, 〈생존(Survival)〉 中, 1983-1985.


  "그들이 당신을 심문할 때에는 빠르게, 조용히 죽거나 아니면 그들이 당신을 상처 입히는 것을 수치스러워할 때까지 아주 오래 살아라.(DIE FAST AND QUIET WHEN THEY INTERROGATE YOU OR LIVE SO LONG THAT THEY ARE ASHAMED TO HURT YOU ANYMORE.)"라는 문장은 권력 주체와 이데올로기가 함축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생존'에 대해 불확실하고 모호한 수사적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 이에 대해 포스터는 '위기의 수사(rhetoric of crisis)'라고 하였다. 


불화는 하얗다고 말하는 사람과 검다고 말하는 사람 사이의 갈등이 아니다. 그것은 하얗다고 말하는 사람과 하얗다고 말하는 사람 사이의, 하지만 같은 것을 알아듣지 못하는, 또는 상대방이 하양이라는 이름 아래 같은 것을 말하고 있는지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들 사이의 갈등이다.  
-자크 랑시에르, 『불화: 정치와 철학』, 진태원 (역), 서울: 길, 2015, p. 17 참조.


  불화는 같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합의에 이르지 못하는 상황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홀저의 텍스트 작업에서 불화의 전략은 즉, 이질적 문구들의 부조화와 대립으로 의미를 분열시키고, 정치적 주체가 개입되지 않은 문구들을 통해 의미를 파기하며, 위기의 수사법으로 불확실함을 드러내는 것으로서 정치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2) 텍스트가 구현된 거리의 전시 형태

제니 홀저,  〈경구들〉 포스터가 창문에 부착된 모습, New York, 1977-1979.


  초기 작업이었던 〈경구들〉과 〈선동적 에세이〉는 대개 텍스트 전문이 포스터로 인쇄되어 거리의 벽에 붙여짐으로써 도시의 시민들에게 스며들어갔다. 당시 행인들은 길을 걸어가다가 텍스트를 보고 멈춰 서서 글을 읽으며 일부 문장들에 밑줄을 긋거나 단어를 수정, 변형하는 한편, 자신의 의견, 제안을 낙서처럼 적어놓고 가기도 했다.


제니 홀저, 〈경구들〉 포스터, 1977-1979.


  당시 홀저의 작업이 미술인지 아닌지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고, 혹자는 그녀의 작업을 프로파간다라고 일컬으며 예술의 형태가 아니라는 문구를 남겨놓기도 했다. 도시 공간 속에서 거리미술로 구현하는 전시는 뉴욕 시와의 협의의 과정을 거쳐 합법적 절차를 따른 것이 아니었다. 그녀 자신의 자발적 의지에 따른 것이었기 때문에 많은 자연현상이나 시민들에 의한 훼손에서 자유롭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일상생활에서 많은 사람들이 작품과 마주칠 수 있었기에 오히려 행인들을 능동적인 관람객으로 변화시키는 결과를 이끌어냈다. 


제니 홀저, 〈경구들〉 中, 1980년대.
제니 홀저, 〈생존〉, 1983-1985.


  포스터를 배포하는 형태의 전시 이후 ‘허구의 전략’이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는 전시 형태가 나타난다. 〈경구들〉의 문구는 건물의 파사드에 띄워지고, 〈생존〉도 ‘타이포그래피’로 개별 문장을 새긴 청동 명판으로 제작되어 도시 곳곳의 건물에 부착되거나 일상생활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표지판, 옥외 광고판의 형태로 길거리에 전시되었다. 뉴욕 시내에 있는 쓰레기통 뚜껑 위에 스티커로 붙여지기도 했다. 이렇게 제작·전시되는 형태는 다수의 시민, 대중을 향하고 있는데, 일상의 장소에서 예상치 못한 문구를 발견하는 개별 시민들은 마치 ‘실재계와 조우(tuche)’하듯 개인적인 지각의 경험을 하게 된다. 랑시에르가 예술가의 허구의 전략을 통해 연관성이 없던 것에 새로운 관계를 제시하고, 보이지 않던 것을 보게 만든다고 하였듯이 말이다. 홀저의 텍스트는 기존의 공간 안에서 의미로 작용하기보다 그 공간을 분할하고 재구성한다. 일상 속에 스며들 듯 침투한 이질적 문구들이 기존의 공간에 대한 익숙함으로부터 분리하고 감각을 재편하는 것이다. 


제니 홀저, 〈타임 스퀘어 프로젝트〉,1982.


  1982년 공공 기금의 지원을 받아 참여한 〈타임 스퀘어 프로젝트〉에서 홀저는 타임 스퀘어의 전광판 사인보드에 다양한 형태의 타이포그래피로 〈경구들〉과 〈선동적 에세이〉, 〈생존〉 시리즈의 텍스트를 띄웠으며, 1986년 라스베이거스에서는 〈생존〉 텍스트의 문장, "내가 원하는 것으로부터 나를 보호해 줘"를 LED 전광판에 투사했다. 


[좌] 라이프치히 라이트 프로젝션, 1996./[우] 피렌체 라이트 프로젝션, 1996.


  1996년에는 라이트 프로젝션을 도입하여 건물의 외벽에 빛을 통해 텍스트를 표출하는 작업으로 매체를 확장시켰다. 독일 라이프치히(Leipzig)에서는 〈라이프치히 전투 기념비(Vökerschlachtdenkmal)〉에 텍스트를 투사하고, 그 해 피렌체 비엔날레에서 아르노 강과 건물에 라이트 프로젝션을 이용한 텍스트를 비추었다. 홀저의 라이트 프로젝션 도입은 이후 제논 라이트 프로젝션(Xenon Light Projection)에 이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렇게 텍스트 표출의 기반이 되는 매체가 변모함에 따라 대중의 더욱 실효적인 감성의 분할이 가능해졌다. 


  익명의 누군가가 발화하는 텍스트를 예기치 않은 곳에서 조우했을 때 사람들은 그림이나 조각 등의 조형적 오브제를 감상하는 것과 달리, 읽고 이해하기 위해 집중해서 보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행인에 불과했던 사람들은 텍스트를 스스로 독해하며 주체자로서 개입하게 된다. 이때 관람자의 개입은 랑시에르가 비판하였던 기존의 사회비판적 예술과 다르다. 그녀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효과는 관람자들을 세계 변혁의 주체가 되기를 촉구하는 것도, 작품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길 독려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 반대로 랑시에르가 제시한 비판적 예술의 모델에 더욱 근접하다고 볼 수 있다. 〈경구들〉, 〈선동적 에세이〉, 그리고 〈생존〉은 수사적으로는 이질적인 논리들이 뒤섞여 합의와 단절하고, 읽히면서도 읽히지 않도록 공간에 침투하고 분할하면서 새로운 감각적 경험을 유동적으로 열어둔 것이다. 



미학적 예술 체제에서의 예술작품

  그렇다면 개념미술의 계보를 이으며 언어를 중심으로 작업을 이어가고 있는 홀저의 작품에서 미적·예술적 측면은 무엇으로 논의할 수 있을까. 랑시에르는 자신이 제시한 예술 체제의 변화가 연대기적 흐름을 절대적으로 따르는 것은 아니라고 하면서도 오늘날의 예술 체제는 명백히 '미학적 예술 체제'로 넘어와 있다고 보고 있다. 미학적 예술 체제에서 재현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의 구별은 사라지고 어떤 주제든 재현이 가능해졌다. 이 체제에서 미학은 모든 구별과 위계로부터 벗어나 "예술 작품으로서 전시되는 중화된 공간"에서 고유한 감각적 경험을 할 수 있는데, 이 공간은 바로 미술관이 된다. 


  홀저는 미술관 외부에서 다시 미술관으로 들어와 재현의 전통을 비판하는 담론을 이끌어낸 작가이다. 1980년대 후반 이래로 미술관과 비엔날레에서 전시하기 시작하면서 화이트 큐브와 공적 영역에 모두 참여하였던 홀저는 그때 당시 LED를 주된 매체로 사용했다. 텍스트의 타이포그래피는 아래에서 위로, 혹은 위에서 아래로 움직이는 기본적인 무빙에서부터 빙글빙글 돌아가는 효과, 물결이 일렁이는 효과, 글자가 퍼지는 효과 등의 기능이 접목 가능하여 특정 부분을 강조할 수 있고, 생동적으로 표출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닌다. 홀저는 LED의 이러한 표현 기능이 말을 구두로 전달할 때의 소리와 억양, 속도를 표현하는 것과 유사하다고 보았다. 텍스트 작업이 LED를 통해 미술관에서 구현될 때, 설치되는 공간에 따라 달라지는 양상을 보인다. 특히 1990년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Solomon R. Guggenheim Museum)의 나선형 건물 구조를 따라 설치된 LED가 그 예다.


제니 홀저, 구겐하임 미술관에 설치한 LED 설치 작품, 1990.


  2004년에는 〈흉곽(Rib Cage)〉(2004)를 비롯한 LED 조각을 제작하기 시작하였고, 〈파란색의 교차(Blue Cross)〉(2008), 그리고 〈모두 떨어지다(All Fall)〉(2012)와 같이 설치 작품에서 점차 미니멀리즘 조각의 특징인 사물성도 드러났다.


[좌] 제니 홀저, 〈흉곽〉, 2004./[중] 제니 홀저, 〈파란색의 교차〉, 2008./[우] 제니 홀저, 〈모두 떨어지다〉, 2012.


  홀저의 텍스트 작업들은 텍스트 자체보다는 지금까지 살펴본 매체들을 통해 그 조형적 특성과 미적 측면이 논의되고 있다. 미술관이라는 중화된 공간 안에서 사물 오브제라 할 수 있는 LED 조각은 예술 작품으로서 감각적 경험의 지평을 열어주고, 이에 따라 재현의 위계적 목적이 없는, 모든 것이 예술이 될 수 있는 미학적 예술 체제에서의 예술 작품이 된다고 할 수 있다.



나가며

  랑시에르는 68 운동을 겪으면서 과학주의에 물든 좌파 지식인들의 대중에 대한 위계적 관점들을 비판적으로 재고했다. 지식인들에게 대중은 세계에 대한 인식이 부재하여 스스로 사유할 수 없는 존재였다. 대중에 대한 이러한 의식은 그들이 착취당하는 이유를 정당화했다. 그러나 랑시에르는 대중이 착취당하는 것은 인식의 부재에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변혁할 자신들의 능력에 대한 신뢰가 없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의 정치 철학은 모든 대중의 지식이 평등하다는 것을 전제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이에 따라 사람들이 스스로를 지적으로 평등하다고 인식하고 자신의 경계를 뛰어넘음으로써 진정한 해방을 이룰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결국 평등을 지향하는 랑시에르의 정치는 주체에 관한 투쟁이며, 불평등과 권력 구조로 점철되어 있었던 기존의 질서(치안)를 재구조화하는 시도라 할 수 있다.


  필자는 앞서 그녀의 작업이 공공미술로서 논의되기도 한다고 언급했었다.


"나의 작품은 사람들이 단지 거리를 걷다가 포스터나 간판을 통해 흔치 않은 문구를 발견할 때 가장 큰 효과를 갖는다. 오히려 갤러리나 미술관에서 전시될 때에는 작품이 도서관에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서 공부하게 되는 그런 곳 말이다."  
-Jeanne Siegel, "Jenny Holzer's Language Games: Interview with Jenny Holzer," 1985 참조.


  미술사가 진 시겔(Jeanne Siegel, 1929- )과의 인터뷰에서 위와 같이 말했던 것을 통해 볼 때, 홀저 자신도 공공성에 관심이 많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초창기 작업에서부터 미술관 바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간소한 매체를 이용하여 거리미술로 작품을 선보인 것은 예술을 일상으로 끌어들임으로써 예술에 관심 없는 불특정다수의 대중에게도 작품을 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복수의 시민들이 공존하는 공적 영역에 개입하는 홀저의 미술은 미술 자체에 대한 문제보다 삶의 문제와 관련한다고 볼 수 있다.


  텍스트의 내용은 의미론적으로 언어가 가지는 이데올로기, 정치적 권력, 개인과 사회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홀저는 정치적 내용을 함의하면서도 그렇지 않은 이질적 문장들을 충돌시키는 수사법과 철저한 익명의 발화를 시도하여 어느 입장에도 치우치지 않았고, 관람자들을 정치적으로 세계를 변혁할 행위자로 고무시키는 데 목적을 두지 않았다. 그러한 목적을 두는 것 자체가 인과적 논리를 구성하게 된다. 미학적 실효성이란 작가가 관람자로 하여금 의도의 이해를 바라는 인과성을 차단하고, 관람자가 스스로의 인식을 통해 익숙한 질서로부터 새로운 감성을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함을 의미한다. 그러한 점에서 미학적 예술 체제로 파악할 수 있는 오늘날 현대예술에서 홀저의 예술을 그 실효성을 기대할 수 있는 정치적 예술이라고 보고 있다. 그 실효성이란, 불화의 전략을 통해 감각적 경험을 분할함으로써 재구조화하는 효과인 것이다.




* 참고문헌 (이탤릭체 표기는 볼드체 표기로 대신합니다.)

1. Lewitt, Sol, "Paragraphs on Conceptual Art," 1967.

2. Ranciére, Jacques, "Artistic Regimes and the Shortcomings of the Notion of Modernity," The Politics of Aesthetics: The Distribution of the Sensible, Gabriel Rockhill (trans.), New York, Continuum  2004.

3. Siegel, Jeanne, "Jenny Holzer's Language Games: Interview with Jenny Holzer," 1985.

4. 자크 랑시에르, 『미학 안의 불편함』, 주형일 (역), 고양: 인간사랑, 2008.

5. 자크 랑시에르, 『불화: 정치와 철학』, 진태원 (역), 서울: 길, 2015.

6. 자크 랑시에르, 『해방된 관객』, 양창렬 (역), 서울: 현실문화, 2016.

7. 제니 홀저, 『당신을 위하여: 제니 홀저(국립현대미술관 커미션 프로젝트)』,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국립현대미술관, 2020.

8. 최순영, 「제니 홀저(Jenny Holzer)의 사회비판적 텍스트 연구: 1970년대 후기-1990년대 전기 작품을 중심으로」, 석사학위논문, 홍익대학교, 2020.

9. 할 포스터, 『미술·스펙터클·문화정치』, 조주연 (역), 부산: 경성대학교 출판부, 2012.

10. 국제갤러리 [웹페이지]: https://www.kukjegallery.com/exhibitions/view?seq=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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