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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향기 Jun 03. 2020

봄꽃, 라일락


4월이 되면 라일락 나무를 자꾸 들여다 본다. 4월 말이 되면 올망졸망 꽃망울이 맺히고, 5월이면 연보라빛 꽃송이가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매달렸다. 여리여리한 하트 모양의 연두잎과 어울려 라일락꽃 피는 봄은 싱그러웠다. 문만 열면 향기가 밀려들어 왔다. 지나가던 사람은 걸음을 멈추고 짙은 향기에 취했다. 코로나 19가 평등했듯이 라일락꽃도 사람을 가리지 않고 설레임을 선사했다. 



올해도 변함없이 따사롭고 화사한 봄이 왔다만 코로나 19로 내내 어딘가 스산했다. 한창 산책하는 사람이 많을 봄 산책길이었다. 한가하게 앉아 봄풍경을 나만 혼자 보고 있자니 문득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6.25 전쟁 중에도 이렇게 꽃이 피고 초록이 고왔을까, 인생이 얼마나 엿같았을까 싶었다. 


먼데 사는 친구가 안부를 물어 왔다. "잔인한 4월인데 잘 계시나요?"


그랬다. 4월만 되면 엘리어트의 황무지를 소환하게 된다. 골이 아파 끝까지 다 읽은 적도 없는 시였다. 언제나 시의 첫머리에 머물다 말았다. 그러나 4월만 되면, 그 시의 첫구절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인생이 뭔지도 모르는 소녀들에게도 난해한 시만큼 난해한 인생이 툭툭 건드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로 청년이 되고 중년이 되어도 그랬다. 잔인한 계절의 여운은 해마다 어김없이 찾아왔다. 또 꽃이 지면 잊혀졌다. 


엘리어트의 일생에 잔인한 달이 4월 뿐일리는 없다만 유독 4월이 잔인한 것은 그놈의 라일락 때문일지도 모른다. 라일락은 전쟁이 쓸고 간 황무지에서도 여학생의 흰 교복 블라우스처럼 청초했으리라. 


사실 엘리어트도, 황무지도 다 잊고 산 지 오래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월은 한 시대의 상징으로 존재했다. 4월이 되면 행복하면 안될 것만 같았다. 되살아나는 상처였다. 70년대의 4월은 60년대 4월을 소환하며 유인물이 뿌려졌다. 그 시절에도 밥상머리에서는 늙은 부모와 혈기 충천한 자식이 싸워댔다. 그리고 차마 입에 올릴 수 없는 그날 바다도 4월이었다. 사건 사고가 범람함에도 불구하고 그저 그렇게 평화롭게 사는 날이 살아 생전 올 줄은 몰랐다.





나는 그를 4월에 만났다. 잔인한 청춘이고 첫사랑이었다. 20대의 열병에 시달리며 인생이 허무하고 허무했고 길을 걸어도 눈물이 나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입에도 대지 않는 소주를 그때는 들이켰다. 시절이 그러했던 탓이었다. 


세월이 흘렀으니 생각해본다. 그 때 만난 사랑이 나에게 무엇이었는지. 나에게는 벼랑 끝에서 만난 탈출구 같았다. 겨울의 끝자락을 견딘 나에게 하늘이 준 선물이라 생각했다. 사람은 제멋대로 해석하는 존재니까. 선물은 무슨... 나의 어리석음 만큼 어리석은 것을 선택했고, 얻어 터지면서 조금씩 철드는 것이 인생이었다. 나에게 사랑은 허기였다. 채워지면 선물이라 칭송했고, 원하는 만큼 채워지지 않으면 인생이 허무하다 했다. 이기적인 욕망을 사랑이었다고 포장하고 싶지 않다. 


나이 들어가며 놓아야할 것을 놓았다. 그 결과 삶이 비교적 온전해졌다. 내 생애에 있어서 지금의 삶이 가장 가지런하다. 결핍을 못느끼니 채우고 싶은 사랑도 없었다. 정지용이 고향집 사철 발벗은 아내가 아무렇지도 않다 했듯이 나도 그랬다. 사랑이  아무렇지도 않을 때가 올 줄은 몰랐다. 호르몬이고 나발이고 그런 것과는 무관하다. 사람 됨됨이 만큼 사는 것이 삶이니까. 


꽃잎은 순순히 떨어지는데, 사람인 나는 떨어지는데 시간이 걸렸다.





공무원 퇴직하고 늙그막에 두 번째 직장을 가지게 되었다. 시골 병원 직원이다. 꽃밭과 산책길은 세월을 함께 보내는 좋은 친구였다. 농사꾼처럼 나도 1년의 주기 속에서 꽃이 보였다. 오늘 하루가 일년에 포함되고 일생에 포함되듯이 가장 작은 것이 가장 큰 것에 포함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새삼 알게 되었다. 


그래서 너의 모든 것이 고맙고 좋았다. 아쉬웠던 일도, 큰 일 날 뻔했던 일도 나의 인생에는 필요한 자원들이었다. 전 생애 중의 단 하루인 오늘을 살면서도 초조하지는 않다. 다 있을 만한 일이 있기 때문이다. 서산에 기우는 붉은 해가 좋다. 




# 브런치 작가 낙방


브런치 작가 신청을 했다만 똑 떨어졌다. 늙은 가슴 한 편에서 살짝 투덜댔다. "어지간히 그러시네..." 싶었다. 귀찮았다. 그러다가 "뭔 이유와 뜻이 있겠지.. "생각했다. 


나는 집요할 때도 있지만 안될 일은 빨리 포기하기도 한다. 그게 반드시 나쁜 건 아니라 생각했다. 그러나 어느 교수님은 이런 나에게 "포기가 너무 빠르다.." 충고했다. 포기가 선택과 집중이기만 했을까? 안해도 그만이고 굳이 해서 뭐할거냐는 자기논리에는 함정도 있었다. 세상의 변방에 서는 것이 편했던 비겁함이었다. 가만히 있었으면 낙방도 없었겠지.


다시 생각해본다. 포기해도 될 일을 왜 시작했을까? 사람들에게 말을 거는게 장난이었냐? 싶었다. 타인에게 말을 걸 때 그 말이 들리지 않는다면 말하는 너가 문제인 것이지. 할 말이 분명치 않았거나, 굳이 할 필요가 없는 말을 하였거나일 것이다. 


할 말을 입안에 넣고 우물거리던 여고 시절 생각이 났다. 수학 시간이었다. 선생님은 죄인처럼 우물거리는 나에게 다시 말해보라고 3번이나 기다려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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