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수용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사람을 보면 거부감이 들었다. 어른의 얼굴에서 아이스러운 표정을 발견할 때 불일치가 주는 불안과 그 괴리감이 싫었다.
어른답지 못한 표정과 말투.
그런 행동들은 감정 조절 못하는 가벼움으로 치부해버렸다.
그 정의는 무게감이었다.
어른이라면 필히 갖춰야 할 덕목이라 생각했다.
감정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웬만해선 요동하지 않는 강철 같은 사람.
누구나 의지하고 기댈 수 있는 존재.
내게 어른이란, 특출 난 아이언맨이었던가 보다.
나는 여기서 심한 왜곡을 발견할 수 있었다.
과연 어른의 존재가 아이언맨일 필요가 있을까?
너무 높은 이상에 어른이란 존재를 올려놓고 재단한 건 아니었을까?
그리고 스스로 그런 어른이 되기 위해 노력한 건 아니었을까?
나는 그런 인간이었다.
앙꼬 없는 붕어빵처럼 밀가루 맛만 나는 존재.
감정은 앙꼬다.
감정이 빠진 무미건조한 나는, 인생이 무겁고 재미없었다.
그 속에 넘치는 깊고도 끝없는 생각 속에 빠져 실체 없는 괴물과 싸웠다.
그렇게 거르고 걸러진 감정은 나중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무형의 언어만 남는다.
그게 정녕 나란 말인가.
나는 인간의 탈을 쓰고 인간이길 거부하며 산 건 아닌가.
인간은 아무리 깊은 사유를 한다고 해도 무슨 일을 결정할 때는 감정이 판단한다. 이성이 판단한다고 착각하지만 아주 근소한 차이로 감정이 이성을 앞선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감정은 말과 행동을 앞서게 하지만, 이성은 일단 멈추게 한다.
이성적인 사고를 많이 하는 사람은 실수나 실패의 확률은 낮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게 인간의 삶에서 전부라고 할 수는 없다. 이성적인 사람에게 비인간적인 느낌을 받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내가 감정을 몰랐을 때는 이성적인 사람이 진정한 어른이라고 여겼다. 감정적인 사람은 어린아이에서 못 벗어났다고 믿었다.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달았을 때 나는 깊은 슬픔을 느꼈다.
나는 이성적인 어른을 좇았지, 이성적인 사람도 아니었다. 제 감정에 충실한 사람은 더더욱 못됐다.
나는 어떤 사람으로 산 걸까. 정체성의 혼란이었다.
앙꼬 없는 붕어빵으로 살면서 누구보다 붕어빵인 척하며 살았던 기만 덩어리였다.
인간은 하루에 하는 생각이 95%를 차지한다. 그중에서 5%가 새롭고 긍정적이라면, 90%는 어제 했던 생각의 반복, 즉 쓸데없는 짓이다.
인간이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쓸데없는 생각을 하느라 하루를 보내는 데 있다.
생각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방해한다. 삶은 순간에 있다. 그 순간이 이어져 하루가 되고 1년이 된다.
해마다 12월이면 ‘1년 동안 뭐 하며 살았지?’ 하기를 반복한다면, 하루를 ‘오늘 뭐 하며 살았지?’ 한 것과 다를 바 없다. 1초가 1년을 결정하는 것이다.
90%인 쓸데없는 생각을 다이어트만 해도, 그래서 긍정적인 생각의 근육량이 5% 이상만 돼도 삶은 건강해질 것이다.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은 생각할 시간에 직접 해보는 것이다.
생각 빼는 연습을 하다 보니, 점점 감정이 살아나고 있다. 순간순간 느껴지는 감각을 놓치지 않으니 감정은 저절로 생생해진다.
어린아이는 감각적이다. 그래서 창의적이다.
이성은 창의력을 함몰시킨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구태의연한 사고에 머무르기 때문이다.
예술가들 중 어린아이처럼 감정 덩어리가 많은 것도 같은 이유다.
너무 예민해지는 거 아니냐고?
그건 선택과 조절의 문제다.
나는 둔감한 게 싫어졌다. 예민함이 없는 이성은 나의 통찰이 아닌 타인의 통찰을 빌려와 그럴싸하게 포장된 빈껍데기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진정한 통찰은 직접 경험하고 거기서 얻은 남다른 통찰력이다. 그러니 통찰은 한결같은 통계와는 다르다.
인간의 통찰은 그 사람의 성장과 함께 발전한다.
사람이 전부 감정적이기만 하다면 세상이 어떻게 될까?
질서와 체계가 무너질 것이다.
안전욕구는 인간의 본능이다. 그렇기에 세상은 감정적인 인간보다 이성적인 인간에게 더 맞춤형으로 발전해 왔다.
감정은 사적인 범주이지만, 이성은 집단적인 범주에 든다.
학교나 회사만 하더라도 개인의 감정은 질서와 체계의 명분 하에 용납되지 않는다. 감정적인 사람이 상처를 더 잘 받고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며 사회 부적응자가 많은 것도 이해가 된다.
상담하다 보면 이성적인 사람이 상담을 받으러 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개 감정적인 사람이 상담을 청한다. 가정과 학교, 사회에서 개인의 감정을 받아주지 못하니 상처가 깊은 것이다.
이성적인 사람이 상담을 청하는 경우는 번아웃이 왔을 때이다. 꾹꾹 누르고 있던 감정이 어느 날 폭발하거나, 이유를 모르겠지만 너무 지쳐서 마음이 힘들어지거나.
감정적인 사람은 금방 표라도 나지만, 이성적인 사람은 감정 표현도 하지 않으니(감정을 모르는 경우도 많고) 더욱 심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이성적이라 그저 견디는 게 미덕이라고 여긴다.
“남자가 왜 울고 그래?”는 전형적인 왜곡의 폐단이다.
‘~해야만 해.’ 또는 ‘~하면 안 돼.’라는 당위성은 왜곡이다. 그 왜곡은 공황장애나 강박 등 여러 가지 문제 현상으로 나타난다.
왜 태어났는지도 모른 채 살면서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들에 시달리다가 가는 게 인생이라면 얼마나 비참한가.
겨울이면 사 먹게 되는 붕어빵.
나는 대단한 아이언맨이 아니라 맛있는 붕어빵이 되려고 노력 중이다. 어느 날은 앙꼬가 부족해 밀가루 맛이 더 났다가, 어느 날은 앙꼬가 넘쳐서 옆구리가 터지기도 했다가.
예전엔 옆구리 안 터지려고 바득바득 거리다가, 아예 앙꼬를 빼버렸다. 겉만 멀쩡한 붕어빵이 된 것이다.
지금은 옆구리가 터지든 말든 삶이 다이내믹해지고 즐거워졌다. 감정적인 사람을 더욱 공감할 수 있게도 되었고. 또한, 나라는 인간에 대해 친근감과 사랑이 더 커졌다.
“내가 너에게 자유를 허락하노라!”
나 스스로에게 자유를 부여하자, 비로소 편안함이 찾아왔다.
수용하는 법
1. 외부세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 외부세계(상황 또는 사건)는 객관적 사실이다.
- 주관적 해석이 아닌 객관적 사실로 바라본다.
2.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 감정은 잘못이 없다. 부인하거나 억누르지 말고 그때의 감정 그대로를 인정한다.
- 마음속에서 느껴지는 감정을 몸 밖으로 꺼낸다.
- 그 감정은 어떤 모양인가?
- 색깔, 크기 등을 표현해 본다.
- 어떤 소리가 들리는가?
- 감촉은 어떤가?
- 상징물로 표현해도 좋다.
그 상징물을 보는 느낌은 어떤가?
3. 감정을 방해하는 생각은 빼기
- 생각은 감정을 온전히 느끼는 걸 방해한다.
- 계속 다른 생각이 올라오지 않도록 보고 듣고 느낌에 집중한다.
4. 그 감정을 다시 마음 안에 넣는다.
- 지금 기분은 어떤가?
5. 피드백
- 새롭게 알게 된 사실, 깨달은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