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다르고 ‘어’ 다르다.
단어 하나만 달라도 문장의 의미가 달라지듯이, 작가의 관점과 언어 표현은 경험을 녹여내는 마지막 작업이다.
그런데 어떻게 간단히 쓰고 말겠는가.
시각, 청각, 체각을 최대한 활용하면 쓸 거리가 많아진다.
몇 줄 쓰고 나면 쓸 게 없다는 분들이 계신데, 감각에 집중하면 쓸 게 많아질 뿐 아니라 글 표현도 자연스럽게 달라진다.
특히, 어떤 걸 보거나 들을 때 느낌의 변화에 주목한다. 작가의 독특한 표현은 바로 이 주관적인 느낌에 의해 갈린다.
예를 들어, 나는 강의 때 이런 표현을 썼다.
“작가님들이 내 목소리를 듣고서 각자 다른 표현을 해주셨을 때, 나는 왼쪽 어깨부터 오른쪽 어깨까지 한 줄로 찌지지직, 전기가 흐르듯 전율이 흘렀어요.”
보고 듣는 것은 나와 같은 관점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느낌은 나만 느끼고 알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을 글로 표현하면 된다.
수많은 독자들이 호평하는 책들을 유심히 보라.
지식이 난무하는 책을 읽을 때 감탄스럽긴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거의 머릿속에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책 속에 들어가 실제로 경험한 느낌일 땐 기억에 오래 남는다.
아무리 좋은 책을 읽고도 머리로는 이해했는데 삶이 변하지 않는 까닭은, 온몸으로 경험하듯 읽지 않아서다.
감각은 나를 자극하고, 감정과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그것이 강한 동기부여가 되면 행동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경험의 힘은, 그래서 강력하다.
6. 감각을 종합했을 때 어떤 감정이 드는가?
감정은 감각 다음에 오는 경험이다. 감각이 살아 있어야 제대로 감정도 느낀다.
왜곡된 감각은 왜곡된 감정을 낳고, 왜곡된 감정은 왜곡된 생각을 낳는다.
작가란 필요에 따라 의도적으로 왜곡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에세이라는 장르에서는 진정성이 관건이다.
감각을 키우기 위해선 타인의 이야기보다 내 이야기에 집중하는 게 좋다.
삶의 본질은 경험이지 통찰력이 아니다. 진짜 통찰력은 삶의 본질을 건드린다. 그리고 그 통찰력은 작가의 경험에서 나온다.
7. 경험의 마지막 단계는 생각(통찰력)과 행동이다.
내가 어떤 걸 보고 듣고 느꼈느냐에 따라 감정이 생길 수도 안 생길 수도 있다. 어떤 경험을 했느냐에 따라 생각이 만들어지기도 하고, 행동을 유발하기도 한다. 경험 안에서 통찰력이 생긴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생각은 실체가 없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통찰력을 얻었다고 하지만,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진정한 통찰이라고 하기 어렵다.
통찰력은 행동으로 이어지게 하는 강한 동기부여이기 때문이다.